루나의 전세역전 - 전세 사기 100% 충격 실화, 압류부터 공매까지
홍인혜 지음, 정민경 감수 / 세미콜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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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 내년쯤에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원룸이지만,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 욕심을 내자면 '부엌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1.5룸 정도는 돼야겠지?' 혹은 '좋은 의자를 두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세 계약이나 은행 대출 같은 일에 도통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마음을 먼저 다잡았다. 그래, 지금도 충분한데 욕심부리지 말자.


내 첫 주거지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역세권 청년 주택(현재 청년 안심주택)이다. 방을 보자마자 계약금을 걸었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입주했다. 첫 입주 세대였다. 원룸 옵션에 포함된 침대부터 냉장고, 세탁기까지 모두 새 제품이었고 이 건물 내에는 모두 청년만 거주했다. 특수한 경우지만, 이렇게 서투르게 계약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조건이었고, 운이 좋았다.


​"세입자는 제때 보증금을 넘겨받을 수 있을지 몰라 하루하루 뼈가 삭고 살을 잃어가지만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금이라도 전세 보증금을 낮춰 누군가를 들어오게 하느냐.’ 혹은 ‘대출이라도 받아서 내 돈을 돌려주느냐.’ 그 모든 결말이 임대인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살 구슬리는 게 맞을지 강하게 대응하는 게 맞을지 혼란스럽다. 내용증명을 보낸다거나 임차권 등기를 친다는 등의 강경한 방법은 ‘좋게 해결될 일’을 수틀리게 만드는 것만 같다. 어찌 됐든 현재 나의 전 재산이 남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인질극이다."


​독립하기 전에는 매일 왕복 세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냈다. 오가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지나다니는 곳곳에 급하게 내놓은 빌라 전셋집 전단을 자주 보았다. 오가며 유심히 보았던 전단들이 1세대 빌라왕의 매물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수없이 보도되던 전세 사기 뉴스에도 남일처럼 느껴졌지만, 곧 내 주변에서도 사기를 당하거나 당할 뻔한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 딴에 아무리 꼼꼼하게 서류를 준비하고, 전문가들이 체크해 주는 조항들을 확인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더구나 루나님처럼 집주인의 법적 문제나 세금 문제로 인해 저당이 잡혔을 때 내 재산마저 위험해진다면, 전세로 사는 내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큰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다음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봐왔다. 그 모습들이 늘 놀라웠다. 제도의 문제로 억울하게 영혼을 다친 사람들이 제도를 고쳐 불행을 자기 선에서 끝내려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는 이 일을 겪고 그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건 너무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봐서 그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고초를 겪는 이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전세 사기로 고통을 겪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임대차 보호법의 새로운 조항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겪게 되는 고통과 손실에 비해 가해자는 대부분 뻔뻔했고 되레 당당하게 보증보험을 가입했어야지 당신이 잘못했다며 피해자를 나무라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물론 선량한 집주인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묵시적 갱신’ ‘근저당’ ‘대항력’ ‘당 해체’ ‘배분’ ‘법정기일’ 같은 법률 용어나 확정일자 효력 발생 시점이나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경매 관련 정보 공개, 임대인의 세금 체납액을 열람하는 방법, 경매 매물의 감정평가액, 경매와 공매의 차이점, 공매 입찰 방법과 낙찰 후 잔금 납부, 등기필증 발급 등, 막막하고 복잡한 개념을 루나님의 경험과 함께 읽다 보면 조금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스릴러만큼이나 두렵고 어렵지만, 독립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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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를 읽는 힘
메르 지음 / 토네이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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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출근길에 경제 뉴스를 듣고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과 세상은 돈 앞에서 냉정하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뭐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그래도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를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꽤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제 지표들이 무엇인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있다면 '금리'였다. 왜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받는 거지? 나에게 금리는 그저 가입한 적금이나 대출의 이자 정도였는데, 기준 금리의 변동은 생각보다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의 장점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면,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고 그렇게 받은 원화를 달러로 바꿔서 빠져나갈 수 있다. 한국 국채의 가치가 낮아지면 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국채 금리가 올라가면 회사채 금리 등 시중금리를 낮게 둘 수 없다. 기업대출뿐만 아니라 가계대출 금리도 상승하며, 2000조 원에 다가서고 있는 가계부채를 건드리기 시작할 것이다."


『1%를 읽는 힘』은 급변하는 시장에서 스스로 투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여러 경제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네이버 블로거 경제 분야 1위로 알려져 있지만, 삼성그룹과 GE 등 글로벌 기업과 금융사 4곳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30조 원 이상의 국내외 투자를 검토하고 실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아이디어를 찾는 법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미중 무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반도체와 희토류 섹터가 왜 움직이는지, 미국이 왜 탈세계화를 선언했고, 전 세계가 어떻게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자동차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테슬라의 전기 충전소인 ‘수퍼차저’를 단순한 전기 충전소가 아니라 에너지 거래소로 만드는 것이다. 오토비더는 테슬라의 전기차를 이동식 ESS로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이다. 신재생에너지나 원전에서 버리는 전기가 발생했을 때 집에 충전기에 꼽아 놓은 테슬라 전기차가 버리는 전기를 충전하고, 자기가 필요한 분량보다 많은 전기가 충전되면 수퍼차저에서 거래하는 것이다. 버리는 전기 5만 원어치를 1만 원에 충전할 수 있다면, 테슬라의 전기차 사용자는 이것을 수퍼차저를 이용해 3만 원에 파는 구조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 Energy Storage System)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최근 테슬라의 실적 발표로 주가가 많이 하락했는데, 그 이유는 테슬라가 저가에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나 테슬라는 단순히 전기차를 많이 팔거나 시장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전기차를 최대한 보급하여 더 많은 전기 충전소와 자율 주행 데이터를 쌓기 위한 준비 과정이고, 이 과정이 당장은 실적을 저조하게 할 수 있지만 미래에 전기차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열풍이었던 2차 전지는 대부분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국내에는 아직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되지 않아 해외 판매가 대부분인 실정이다. 국내에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에는 아직 ESS 시스템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방문한 제주도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도 많고, 전기차 주유소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전기가 많이 생산되어도 전기가 보관될 곳(대형 배터리 셀)이 없어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투자를 하게 된다면 ESS 시스템 기술을 가진 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을 했을 때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 매출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4년 전인가, 바이든 주로 주목받아 매수했던 신재생 에너지 주식 수익률이 -84%를 기록했다. 곧 1달러 아래로 내려갈 것 같다... 막연히 기후 위기이니까 전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여러 경제 흐름과 과거 데이터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수출을 제지하고, 중국은 흑연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윤 대통령은 수많은 기업 총수와 사우디에 방문해 네옴시티 개발 사업에 60조 규모 계약을 수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미래에 로봇이나 AI가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궁금하다. 최근 경제 뉴스를 듣고, 흐름을 알게 되니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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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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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혹은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뜻하기도 하고, 불쾌감이나 우울함 등 정서적인 괴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고통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스콧 펙은 '삶은 고통의 바다'이며,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은 후 이 과정이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피해갈 수 있기를.


"NSTRA-14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인 감각에 중점을 둔 통증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사회적·문화적·철학적·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고통은 의학적인 문제였고,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오랜 연구 끝에 한 제약회사에서 중독성도 부작용도 없는 완벽한 진통제인 NSTRA-14를 개발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고통의 개념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러자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며 '고통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는 신흥 종교가 탄생한다. 이들은 NSTRA-14를 개발한 제약회사를 테러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후 교단 내에 끔직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온몸이 고문 흔적으로 가득하고, 체내에 다량의 약물이 검출된 피해자들은 모두 교단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소설에 중심인물은 '태'와 '경'이다. 태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이 교단의 시설에서 자랐다. 이 교단의 교리대로 고통을 섬기고, 고통만이 인간답게 한다는 신념을 따른 태는 테러를 통해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의미라고 여겼다. 결국 태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테러를 일으켰고, 이때 제약회사를 경영한 '경'의 부모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고통의 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견디는 이들이 아마도 태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반면 '경'은 오랫동안 부모의 실험 대상이었다. 많은 이들은 테러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피해자의 가족으로 여기지만, 경은 이 테러 사건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에서 놓였다. 완벽한 진통제를 만들기 위한 무수한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두고 정처 없이 떠돈다. 보통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것, 고통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과거의 기억에 수없이 도망치지만 떨쳐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반복하는 삶. 경에게는 끝없이 고통이 반복된다.


"태는 대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믿음—삶에 대한 믿음, 고통에 대한 믿음,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고."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무의미'를 잘 견디지 못한다. 걸핏하면, 이게 무슨 의미야? 사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하는 사춘기스러운 생각에 깊이 빠진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 의미 없어'라고 답한다. 처음에는 답을 몰라서 얼버무린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무의미'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어쩌면 결국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것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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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연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3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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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사회는 '자존감'이란 단어에 매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존감 지키기'가 아닐까.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어 상처받을까 늘 노심초사이다. 얼마 전 커뮤니티에 한 학원 강사가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손들고 발표하는 상황에서 자신만 답을 몰라 속상했다거나, 특정 누군가만 칭찬해서 아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항의해오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당연히 아이의 자존감이 건강하고 상처받지 않고 사랑만 받고 자란 것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지만,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건강한 성장이 맞을까?


김려령 작가의 『모두의 연수』에는 열다섯 살 연수가 등장한다. 연수는 해안 옆 오래된 가게들이 모여 미로 같은 골목을 이룬 명도단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대흥 슈퍼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 자란 연수의 엄마는 보호 종료 아동이 되면서 동생과 살기 위해 악착같이 마련한 월세방에서 홀로 연수를 낳다 세상을 떠났고, 연수는 어린 이모의 손에 남겨졌다. 보육원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경찰관이 연수와 이모에게 도움을 주며 가까이 지내다 이모부가 되었고, 이모부의 사돈어른들이 슈퍼를 운영하며 갓난아기인 연수를 데려다 키웠다. 연수에게는 부모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였기에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었다.


"이모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진짜 어른이었어." 이모부. 탯줄이 끊어지기 전의 나를 본 사람. 어린 이모에게 갓 태어난 조카를 안겨 주고 등을 보이지 않은 사람. 그것은 경찰이어서가 아니었다. 이모부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나는 이런 이모와 이모부와 같이 산다. 내가 이 부부의 자식이 아니라 조카여도 좋은 이유였다. _p.71


연수는 자신이 가진 치부에 몰두해 친구들과 거리를 두지만,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친구들에게도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영이는 할머니에게 자신을 맡기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부모님들 때문에 걱정이고, 우상이는 쌍둥이 동생들 등쌀에 힘들어하고, 차민이는 집안에 경찰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며 경찰대 입학을 밀어붙이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불행이나 상황만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지만, 한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상처받은 마음을 누군가와 소통하고, 위로받고 이겨내는 과정을 배워가는 이 시간을 '성장'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자존감은 결국 이런 과정을 무수히 겪으면서, 스스로 쌓아 올린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심각한 문제를 떠안아서 다른 애들하고는 사는 게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애들하고 있으면 내가 그냥 평범한 중2인 게 실감 나는거야. 과제를 고민하고, 그러다가도 깔깔대고 놀고, 아빠고 뭐고 일단 아이패드를 가져야겠는 거야. 나 생각처럼 되게 힘들게 지내지는 않았어. 솔직히 나는 내 친구들한테 생긴 일들이 더 걱정이었다고. 그러니까 내 걱정은 안해도 돼. _p.308


작가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선의'라고 말한다. 명도단에서 치근대는 아저씨를 만났을 때 연수는 두려워하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국밥집 아주머니가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복권방 아저씨가 남자에게로 가고, 노래방 이모가 시원하게 욕도 날렸다. 그 바람에 남자가 급히 자리를 떴다. 명도단 사람들은 내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p.143)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선의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수와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악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들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꽤 오래 마음 졸이며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해양 공원에 둘러앉아 공포 영화를 보고, 둘러앉아 큰 냄비째 끓인 라면을 나눠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일상에서 회복할 힘을 얻는다. 그래서 또다시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와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연수는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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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를 기다리며 위픽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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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스노볼 드라이브』를 통해서였다. 어느 여름부터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키고 태우지 않으면 녹지도 않는 방부제 눈이 내렸다. 이대로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예기치 않은 재난에 일상이 무너져 버리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루와 이월의 이야기였다. 경쾌하면서도 애틋한 조예은만의 디스토피아. 그 이후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와 『칵테일, 러브, 좀비』도 읽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편 소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이다. 이쯤 되면 나도 조예은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만조를 기다리며』가 반가웠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영산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죽은 자의 소지품이나 뼈를 묻으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전설이었다. 신령한 기운이 깃든 영험한 산이라 하여 영산. 우영은 늘 영산에 묻히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정해는 우영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정해는 우영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고, 20년 만에 우영의 고향인 미아도를 향한다. 어떤 의문도 미심쩍음도 남지 않도록. 우영은 죽기 전 정해에게 메시지를 쓰고 있었다. 「우리 숨바꼭질 기억해?」


미아도에서는 영산의 주인을 산주라 불렀다. 산주라는 호칭에는 단순히 소유자를 뜻하는 걸 넘어 마을의 대표이자 섬의 평안을 관장하는 제사장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대로 영산의 주인이었던 최씨 집안이 영산의 주인이자 섬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간척 사업으로 섬이 육지가 되어 인구가 줄어들었고, 와중에 산주였던 최함록이 세상을 떠나자 막내딸이었던 최양희가 새로운 산주가 되었다. 재회 소망 사랑. 최양희는 영산교라는 신흥종교를 만들어 죽은 자와 재회할 수 있다는 전설을 교리로 만들었고, 사람들의 그리움과 눈물로 덩치를 키우며 영산을 지켰다. 


"늘 바다를 배경으로 쌍둥이를 그리잖아. 하나는 너일 테고, 다른 하나는?"
열두 살 때 외할머니를 따라 미아도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정해는 우영을 만났다. 산지기의 딸이었다. "우리 숨바꼭질하자." 우영에게 백까지 세도록 시키고 정해는 갯벌을 가로질렀다. 우뚝 솟은 암석을 타고 올라 가운데 작은 굴처럼 파인 공간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정해는 사라지고 싶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외할머니와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죽음은 빠르게 목전까지 차올랐고, 살려달라는 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서서히 밀물이 들어찼고, 만조에 가까웠다. 그러나 우영은 정해를 찾아냈다.

누군가의 부고는 꽤 오래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더구나 그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남겨진 자는 죽음을 이해해야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만조를 기다리며』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재회하고 싶은 그리움에서 시작한다. 곧 조예은 월드로 초대될 독자분들을 위해 결말은 접어두고,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 작품은 전략적으로 촘촘하게 짜인 플롯이 서서히 맞춰지는 과정을 통해 독자를 즐겁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척 재밌게 읽은 소설, 조예은의 작품을 언제나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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