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연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3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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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사회는 '자존감'이란 단어에 매몰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존감 지키기'가 아닐까. 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이 낮아질까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어 상처받을까 늘 노심초사이다. 얼마 전 커뮤니티에 한 학원 강사가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손들고 발표하는 상황에서 자신만 답을 몰라 속상했다거나, 특정 누군가만 칭찬해서 아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항의해오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당연히 아이의 자존감이 건강하고 상처받지 않고 사랑만 받고 자란 것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지만, 사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 건강한 성장이 맞을까?


김려령 작가의 『모두의 연수』에는 열다섯 살 연수가 등장한다. 연수는 해안 옆 오래된 가게들이 모여 미로 같은 골목을 이룬 명도단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대흥 슈퍼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 자란 연수의 엄마는 보호 종료 아동이 되면서 동생과 살기 위해 악착같이 마련한 월세방에서 홀로 연수를 낳다 세상을 떠났고, 연수는 어린 이모의 손에 남겨졌다. 보육원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경찰관이 연수와 이모에게 도움을 주며 가까이 지내다 이모부가 되었고, 이모부의 사돈어른들이 슈퍼를 운영하며 갓난아기인 연수를 데려다 키웠다. 연수에게는 부모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였기에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었다.


"이모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진짜 어른이었어." 이모부. 탯줄이 끊어지기 전의 나를 본 사람. 어린 이모에게 갓 태어난 조카를 안겨 주고 등을 보이지 않은 사람. 그것은 경찰이어서가 아니었다. 이모부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나는 이런 이모와 이모부와 같이 산다. 내가 이 부부의 자식이 아니라 조카여도 좋은 이유였다. _p.71


연수는 자신이 가진 치부에 몰두해 친구들과 거리를 두지만,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친구들에게도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영이는 할머니에게 자신을 맡기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부모님들 때문에 걱정이고, 우상이는 쌍둥이 동생들 등쌀에 힘들어하고, 차민이는 집안에 경찰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며 경찰대 입학을 밀어붙이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불행이나 상황만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지만, 한 걸음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상처받은 마음을 누군가와 소통하고, 위로받고 이겨내는 과정을 배워가는 이 시간을 '성장'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자존감은 결국 이런 과정을 무수히 겪으면서, 스스로 쌓아 올린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심각한 문제를 떠안아서 다른 애들하고는 사는 게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애들하고 있으면 내가 그냥 평범한 중2인 게 실감 나는거야. 과제를 고민하고, 그러다가도 깔깔대고 놀고, 아빠고 뭐고 일단 아이패드를 가져야겠는 거야. 나 생각처럼 되게 힘들게 지내지는 않았어. 솔직히 나는 내 친구들한테 생긴 일들이 더 걱정이었다고. 그러니까 내 걱정은 안해도 돼. _p.308


작가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선의'라고 말한다. 명도단에서 치근대는 아저씨를 만났을 때 연수는 두려워하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국밥집 아주머니가 나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고, 복권방 아저씨가 남자에게로 가고, 노래방 이모가 시원하게 욕도 날렸다. 그 바람에 남자가 급히 자리를 떴다. 명도단 사람들은 내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p.143)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선의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수와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악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들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꽤 오래 마음 졸이며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해양 공원에 둘러앉아 공포 영화를 보고, 둘러앉아 큰 냄비째 끓인 라면을 나눠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일상에서 회복할 힘을 얻는다. 그래서 또다시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와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연수는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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