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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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혹은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뜻하기도 하고, 불쾌감이나 우울함 등 정서적인 괴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고통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스콧 펙은 '삶은 고통의 바다'이며,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은 후 이 과정이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다.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피해갈 수 있기를.


"NSTRA-14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인 감각에 중점을 둔 통증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사회적·문화적·철학적·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고통은 의학적인 문제였고,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오랜 연구 끝에 한 제약회사에서 중독성도 부작용도 없는 완벽한 진통제인 NSTRA-14를 개발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인 고통의 개념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러자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며 '고통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주장하는 신흥 종교가 탄생한다. 이들은 NSTRA-14를 개발한 제약회사를 테러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후 교단 내에 끔직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온몸이 고문 흔적으로 가득하고, 체내에 다량의 약물이 검출된 피해자들은 모두 교단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소설에 중심인물은 '태'와 '경'이다. 태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이 교단의 시설에서 자랐다. 이 교단의 교리대로 고통을 섬기고, 고통만이 인간답게 한다는 신념을 따른 태는 테러를 통해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의미라고 여겼다. 결국 태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테러를 일으켰고, 이때 제약회사를 경영한 '경'의 부모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통해 내면이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고통의 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견디는 이들이 아마도 태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반면 '경'은 오랫동안 부모의 실험 대상이었다. 많은 이들은 테러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피해자의 가족으로 여기지만, 경은 이 테러 사건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통에서 놓였다. 완벽한 진통제를 만들기 위한 무수한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두고 정처 없이 떠돈다. 보통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것, 고통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과거의 기억에 수없이 도망치지만 떨쳐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반복하는 삶. 경에게는 끝없이 고통이 반복된다.


"태는 대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믿음—삶에 대한 믿음, 고통에 대한 믿음,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고."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무의미'를 잘 견디지 못한다. 걸핏하면, 이게 무슨 의미야? 사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하는 사춘기스러운 생각에 깊이 빠진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 의미 없어'라고 답한다. 처음에는 답을 몰라서 얼버무린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무의미'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어쩌면 결국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것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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