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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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아이돌 출신의 한 연예인은 강남의 유흥업소에 들러서 놀다가 화장실에서 종업원을 성폭행 했다는 신고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또 카톡방에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 연예인은 그 이 전에 여자친구와의 동영상 촬영 혐의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시간이 지나 신고자의 번복으로 수사가 종료되었다. 사람들은 '여자가 꽃뱀이었대.' 혹은 '헤어지자고 하니 강간으로 고소한거래.'라는 말로 대중의 관심은 잊혀졌다. 그후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 사건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여성들은 강간당했다는 거짓말을 한다.’는 여성 혐오적 생각이 만연한 사회에서, 수사재판기관이 얼마나 성폭력 피해자에게 회의적이며 적대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8년 8월,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임대 아파트에 홀로 사는 18세 여성 마리는 침입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마리는 강간 신고가 허위였다고 진술을 철회했다. 결국 마리는 허위 신고죄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3년 후, 타 지역에서 진범이 잡히고 나서야 마리의 강간 신고가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마리는 잘못된 성폭력 수사 관행의 피해자였다. 경찰은 사건 당시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을 알지 못한 채 피해자에게 여러 번의 진술을 강요한다. 반복된 진술에서 나온 사소한 모순을 의심했다. 또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진술에 의존해 피해자를 취조하듯 신문했다. 결국 어린 소녀는 협박에 가까운 경찰들의 말에 겁에 질려 진술을 번복했던 것이다.


“지금 나한테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라는 말인가요?”


그녀는 이제까지 100건이 넘는 강간 사건을 담당했다. 강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많은 여성들이 입을 다물어버리기도 한다. 입을 닫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다. 그럴 때면 젊은 경찰들은 어이없어한다. 저 사람 범인 잡고 싶은 거 맞아요? 왜 더 자세히 털어놓지 않는 거죠? _p.70


우리나라는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성폭행을 당한 진위 여부를 피해자가 입증해야한다. 자신이 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고,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을 했는지, 저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폭행을 당했는지에 대해 피해자 본인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없는 반복 증언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전에는 스키니진 청바지는 강제로 벗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진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해자의 경우에는 어떨까? 가해자는 '하지 않았다.'라는 말만 반복하면 된다. 그 무엇도 입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증거가 나온다면 사실 '사귀는 사이였다' 라고 한다거나...


왜 범죄 사실에 대해 피해자가 입증해야하는 것일까? 최근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에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교수는 '여성에게 NO라는 의사표시만을 가르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는 여성에게 원하지 않는 성관계나 성희롱에 대해 NO라고 단호하게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렇기때문에 강력하게 NO라고 하지 않는다면, YES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관계를 할 의사가 있을 때 YES를 하도록 가르친다면 상황은 매우 달라진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는 YES라는 동의를 받았는지에 대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어! 반항하지 않았다고! 그럼 동의한 거 아냐?"라는 가해자의 변명은 무용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가해자 입증제도는 여러 반발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마리의 말투와 말하는 방식 때문에 마리가 실제로 강간을 당했는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목소리 톤 때문이었을까요.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어요. 마치 방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방금 저 치킨 샌드위치 하나 만들었어요.’이렇게. _p.152


올해 초 한 유튜버는 피팅모델 촬영을 하러 가서 외설스러운 사진을 요구받고 성추행을 당했으며, 이 때 촬영된 사진들이 음란 사이트에 유포된 사실을 공개하며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유튜버의 SNS에 남자친구와 여행가서 촬영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대중들은 이 사건의 진위여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피해자를 향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해자다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폭력적이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럼에도 남은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이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젖은 일상을 보내야 '진짜 피해를 입었구나'라고 믿고 주는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다움은 재판에도 영향을 끼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통받아야 하는 것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급한 사건들의 진실 여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그 고통을 감수하며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하며 ,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현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는 미국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쓴 책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사회를 구성할 때, 적어도 범죄자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해서는 긍휼하게 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동의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은연중에 그러한 시선이 있을 수 있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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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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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BOOK.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내가 태어나 자라는 오랜동안, 내 가족은 일곱 명이었다. 요즘은 어느정도 무용한 말이되었지만, 장남이었던 아빠와 결혼한 후 엄마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부모와 어렸던 아빠의 막내 동생과 함께 살았다. 나에게는 꽤나 좋은 기억이 많은 대가족이었을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이제와 더듬어보면 엄마에게는 꽤 고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영화 초반의 에피소드 중에 명절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 혼자 고군분투하며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는 장면을 보며, 그 때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던 뒷모습, 생각해보니 그 시절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대부분 뒷모습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던 엄마의 뒷모습에 감춰진 표정과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엄마는 꽤 오랜시간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고, 위암으로 돌아가셨던 할머니의 병수발까지 전부 도맡아서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들을 낳지 못한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원망을 했다.


그 시대 어른들은 대부분 그러했지만, 할머니는 나를 무척 사랑하면서도 늘 내가 아들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세 발 자전거를 사주셨던 날이 기억난다. 자전거를 탈 생각에 유치원에서 서둘러 달려왔는데, 내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울고불고 자전거를 찾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아들 손주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할머니는 내 자전거를 사촌동생에게 주고 온 것이다. 나는 그 길로 달려가 내 자전거를 타고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 참 서러웠고 어린 나이에 느꼈던 속상함은 강렬했다. 그런 일은 흔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와 내 주변에서 늘 일어났던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 단 한 번도 문제가 있다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객관화되어 바라본 김지영의 삶은 너무 익숙했고 그래서 공감되는 한 편, 큰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다. 문학 작품으로서 이 작품은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줄곧 겪어왔던 많은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식이 변화하게 된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본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문제 의식을 넘어서, 사회 구조를 바라보게 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은 쉽게 '남녀'의 문제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공유가 연기한 정대현역은 최선을 다해 지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지영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한 인식구조와 사회적 제도, 현실적인 육아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떠한 한 개인의 노력, 남편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신을 '맘충'이라고 부르는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듯,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어야한다.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인식과 변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것이어서 소통의 방법이 서툴뿐이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수많은 논란과 소음 가운데에서도 의미있는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할 수 있다고.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가 직면한 지금의 시대를 대변하는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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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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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9:30 반지와 씨름하다 어린이집에 보낸다.
AM 10:00 아침을 먹고 항암약을 먹는다
AM 11:00 대충 집을 치우고
PM 12:00 믹스 커피 한 잔을 준비해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PM 1:00 오롯이 내 시간. 나는 그림을 그린다.
PM 2:00 점심을 먹고 열심히 그림책 작업을 한다.
벌써 네 시 넘었네? 반지 데리러 가야지.

- 요즘 나는 일상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더.

BOOK. 《사기병》중에서

나는 쉽게 좌절하는 편이다. 종종 어떤 상황을 가정해두고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예를 들어 나중에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혹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보면서 나나 내 가족이 저런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이겨낼 수 있을까?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도 '나라면...' 하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결론은 비슷하다.
'나는 견딜 수 없을거야, 난 이겨낼 수 없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생각했다. '나라면..'
작가는 어느 날 위암 4기 진단을 받는다. 위를 대부분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위암 4기 환자가 5년 이상 살 확률은 7%, 이제 갓 두돌을 넘긴 아기가 있다. 힘을 내어 8차 항암 치료까지 마치고 항암 약만으로 치료를 받으며 ‘이제 좀 살만 하다.’를 느낄 때쯤, 암은 난소로 전이되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암 진단을 받고 자신처럼 블로그을 검색하며 누군가의 경험들을 찾아보고 희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책을 만들었다.

나였다며 어땠을까? 아무리 긍정적인 나의 기질을 떠올려보더라고 나는 알고 있다. 아마 진단을 받자마자 마음부터 지쳐서 자포자기했을거란걸. 살면서 병을 얻는다는 것이 어떠한 인과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라고 억울해하며 남은 시간들을 헛되게 버렸을 것이 뻔했다.

고통스런 항암이 끝나고 제 힘으로 산책을 할 수 있음에 기쁘고, 초콜릿 한 조각을 녹여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하고, 느리지만 그려왔던 그림을 마저 그릴 수 있음에 뛸듯 기뻐하는 씩씩한 모습을 보면서 그 소중한 진짜 감정들이 내 마음에도 남는다.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공평하고, 때를 알 수 없으니 현재를 소중히 하라는 말은 이제 관용구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런 일상 중 소중한 진짜 감정들을 붙잡지 못했을까 아쉽기만 하다. 어제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앉아서 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계획한 일과를 빨리 처리할 수 있어 뿌듯했고, 점심에 달콤한 크림라떼 한 잔에, 퇴근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느꼈던 것들이 왜 나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이 되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잊는다. '지겹고 당연한 하루가 또 시작되었네.'라고 여기지만 사실 진짜 소중한 것들은 그 일상에 있다는 것을 (매번 잊고) 또다시 배운다.

누구도 오늘 하루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 내일 또 살아있어 출근할 수 있음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부러 내보이는 위로보다는 훗날 출간될 작가님의 《사기병2》를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는 내가 제일 먼저 책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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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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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쳤을 때, 지난 나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내게 갑작스럽게 닥쳐온 불행이 어쩌면 내가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내 잘못으로 안하여,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주었거나,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닌가 자꾸만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끝내 억울해했다. 그때는 삶이라는 흐름이 인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내가 살아온 삶의 내력을 더듬어 내 불행과 행운을 예측하고 싶었고, 인과가 관통하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호재』는 어느 날 남편이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다는 비보가 두이에게 전해지면서 시작된다. 남편은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소주를 찻물에 타 마시면서 매물리스트를 A4 용지에 옮겨 적던 참이었다. 강도는 남편의 굽은 등을 한 차례, 꺼진 배를 두 차례 칼로 찔렀다. 두이는 울지 않았다. 그저 "강도의 칼에 찔려 죽다니요, 뭘 훔쳐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요."라고 읊조렸다. 세상만사가 순조로운 적이 없었는데 닥치는 일마다 당연하게 여겨져서 울지 않았다.


두이에게 남은 가족은 실종된 동생 두오와 조카 호재뿐이다. 이 책의 제목 『호재』는 주인공 호재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지었다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복잡한 길 위에서 행운을 불러들이는' 이름을 가진 호재의 삶에는 행운과 호재가 부재하다. 그저 삶을 묵묵히 견딜 뿐이다. 케이블 방송국의 비정규직 작가로 일하는 호재는 유난히 재수가 없던 하루를 겨우 버틴 다음 날,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고모의 전화를 받는다. 고모부가 죽었다고.


"재수 없는 날에는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호재』는 인과가 통과하지 않을 질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질문을 기어이 하고만다. 정면으로 마주한 삶의 불행에 대하여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그리고 두이와 호재의 삶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 전체는 그 질문에 대해 작가가 내놓은 답일 것이다.


두이는 '예감한 불행을 겪을 때마다 정도와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으며,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다음엔 내 차례겠구나'(18쪽) 생각했다.


이 작품에는 자신의 불행을 기꺼이 끌어안고 담담하게 삶을 버텨가는 사람들과 자신의 호의와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와도 또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찾아올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호재는 '저마다 불안과 불행을 끌어안고 사는 인간들이 자기 보호적인 면면들이 왜 나에게만 공격적이게 될까. 만만해 보여서인지, 만만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남들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추측'(67쪽)하며 자신에게 가족이 없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이 짓눌린다.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방치되고 버려져 고모의 손에 자란 호재는 스스로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나는 나쁜 아이가 아니다' 되뇌며 자신의 삶을 그럭저럭 받아들인 탓이다.


이들의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과 같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며 그럭저럭 삶을 이어가지만 그의 삶에 소소한 행복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행운을 기대하고 당연히 행복하리라 믿는 사람에게도 때론 불행이 닥쳐온다. 행운과 불행은 당신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했던 걸까, 행복하지 않았던 걸까. 그 어떤 불행도, 그 어떤 행운도 당연한 것은 없다.


사실 『호재』는 조남주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또다시 이 추천사를 읽고나니 마음에 큰 위로가 남는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두이와 호재에게도 이 소설이 위로가 될 것 같다. 이 이야기 전체가 그 이유니까.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불행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기로 했다.


성실과 호의는 성과와 예의로 돌아오지 않고, 행운과 불운은 언제나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삶은 첫 번째 경험이고 우리는 매 순간 무능하다. 태연한 얼굴로 일상을 살아 내는 당신, 사실은 가혹하고 냉정한 운명 앞에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당신, 당신의 눈물과 한숨 끝에 이 소설을 놓아 주고 싶다. ─ 조남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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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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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가 들어 있는 어항에 다른 물고기를 넣는 상상을 했다. 강이는 운명처럼 싸우고야 말 것이다. 강이가 죽거나, 다른 물고기가 죽거나,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강이에게 거울을 보여주지 않는 상상도 했다.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강이는 곪아갈 것이다. 곪아가고 곪아가다가 어느 날 물위에 떠오를 것이다. 강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항 속에서 혼자 살도록, 평생 거울과 함께 살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투어로 태어난 강이는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 본문 중에서


어떤 문학 작품은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은 독자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선의 삶』은 폭력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소녀가 의지할 것 없이 스스로 두 주먹을 움켜쥐고 두려움에 떨고있는 이 표지의 모습과 같다. 어쩐지 나는 강이가 여전히 가방 안에 칼 자루의 위치를 손으로 더듬으며 먼저 공격할 타이밍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겨서도 안되고, 져서도 안되는 싸움 앞에서. 왜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신흥 연구원들의 유입으로 형성된 대전의 전민동으로 기존 주민들과 생활 격차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어른들의 세계와는 상관없다는듯 강이와 소영, 아람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함께 무인 모텔에서 포르노를 보고 같이 소주를 마셨다. 때론 어른들에 대한 반발심에 함께 가출을 감행하고, 사람이 드문 아파트 계단에서 웅크리고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은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서로를 대체로 비슷하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읍내동 사는 주제에'라는 말이 모욕이 되며 이들의 생활 격차가 무리를 보이지 않게 가르고, 이겨서도 져서도 안되는 싸움에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최악의 병신이 될 희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가짜 희망들이 몸을 간질였다. 웃지 않은 것 같았는데 입이 먼저 웃었다. 병신이 된 후에도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병신이었다. 급식으로 특식이 나오는 날에는 기분이 나아졌고, 엎드려 잠이 들었을 때 등에 떨어지는 햇살은 포근했고, 아람이 가끔은 괜찮은 아이로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이 되는 일에도 실패한 최악의 병신이 되어갔다. 칼을 꺼낼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다시 집을 나갈 용기도 사라졌다. 학교를 박차고 떠날 용기도, 먼 밖까지 가보고 싶다는 꿈도 사라졌다. 나에게조차 나는 투명해져갔다. 그런 나를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 본문 중에서


이 작품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강이'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였다. 청소년기에는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로 성인과 달리 감정과 욕구의 조절을 편도체를 통해 하게되는데, 이 편도체는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연관된 체계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작품 초반에 '강이'는 소영, 아람과 어울리며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하지만 소영과의 갈등과 아람의 배신을 경험한 후 점차 마음이 굳어져 가는 과정을 보인다. 소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 상황을 회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휘한 방어기제는 모두를 밀어내고 강이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강이가 점차 이성적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부분이 '어른'이 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묘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성장기를 겪지만 모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성장 소설'이다. 그게 최선의 모습일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두 손을 꼭 움켜쥐게 되었지만. 잔혹한 성장일지라도 그게 최선이었을거다. 시간을 되돌린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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