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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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가 들어 있는 어항에 다른 물고기를 넣는 상상을 했다. 강이는 운명처럼 싸우고야 말 것이다. 강이가 죽거나, 다른 물고기가 죽거나,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강이에게 거울을 보여주지 않는 상상도 했다.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강이는 곪아갈 것이다. 곪아가고 곪아가다가 어느 날 물위에 떠오를 것이다. 강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항 속에서 혼자 살도록, 평생 거울과 함께 살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투어로 태어난 강이는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 본문 중에서


어떤 문학 작품은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작품은 독자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선의 삶』은 폭력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소녀가 의지할 것 없이 스스로 두 주먹을 움켜쥐고 두려움에 떨고있는 이 표지의 모습과 같다. 어쩐지 나는 강이가 여전히 가방 안에 칼 자루의 위치를 손으로 더듬으며 먼저 공격할 타이밍을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겨서도 안되고, 져서도 안되는 싸움 앞에서. 왜 싸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신흥 연구원들의 유입으로 형성된 대전의 전민동으로 기존 주민들과 생활 격차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어른들의 세계와는 상관없다는듯 강이와 소영, 아람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함께 무인 모텔에서 포르노를 보고 같이 소주를 마셨다. 때론 어른들에 대한 반발심에 함께 가출을 감행하고, 사람이 드문 아파트 계단에서 웅크리고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은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서로를 대체로 비슷하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 '읍내동 사는 주제에'라는 말이 모욕이 되며 이들의 생활 격차가 무리를 보이지 않게 가르고, 이겨서도 져서도 안되는 싸움에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최악의 병신이 될 희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가짜 희망들이 몸을 간질였다. 웃지 않은 것 같았는데 입이 먼저 웃었다. 병신이 된 후에도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이 진짜 병신이었다. 급식으로 특식이 나오는 날에는 기분이 나아졌고, 엎드려 잠이 들었을 때 등에 떨어지는 햇살은 포근했고, 아람이 가끔은 괜찮은 아이로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이 되는 일에도 실패한 최악의 병신이 되어갔다. 칼을 꺼낼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다시 집을 나갈 용기도 사라졌다. 학교를 박차고 떠날 용기도, 먼 밖까지 가보고 싶다는 꿈도 사라졌다. 나에게조차 나는 투명해져갔다. 그런 나를 편안해하기 시작했다. - 본문 중에서


이 작품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강이'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였다. 청소년기에는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로 성인과 달리 감정과 욕구의 조절을 편도체를 통해 하게되는데, 이 편도체는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과 연관된 체계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작품 초반에 '강이'는 소영, 아람과 어울리며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하지만 소영과의 갈등과 아람의 배신을 경험한 후 점차 마음이 굳어져 가는 과정을 보인다. 소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 상황을 회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휘한 방어기제는 모두를 밀어내고 강이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강이가 점차 이성적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부분이 '어른'이 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묘한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성장기를 겪지만 모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이 작품도 '성장 소설'이다. 그게 최선의 모습일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두 손을 꼭 움켜쥐게 되었지만. 잔혹한 성장일지라도 그게 최선이었을거다. 시간을 되돌린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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