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말을 더듬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짧은 말을 3분 동안 덜덜 떨며 더 더 더 절며 말했다. 만,을 마마마마마마마마만, 으로 전을 저저저저저저저저전, 으로 말을 마마마마마마, 하다가 괴로워 한 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  ─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화자 ‘나’는 1급 말더듬이다. 나는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학교에서 친구도 없고 외톨이로 괴롭힘만 당한다. 그건 선생도 마찬가지다. 국어 선생은 걸핏하면 나를 지목해 책을 읽으라고 시켜 댄다. 힘들다. 어려운 단어를 비슷한 단어로 바꿀 수도 없고 주어와 동사를 바꿀 수도 없다. 첫 음이 나오는 게 어려워 앞에 에, 음, 이라고 살짝 붙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빼고 읽어 보기도 했다.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길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찾은 언어 교정원. 원장은 '말을 잘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야. 말을 하게 해 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얼굴이 빨간 남자 어른, 인상이 차가운 여자 어른,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과 항상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왜소한 남학생, 허공에 타자를 치듯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불안하게 앉아 있는 청년, 까만 뿔테안경 너머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더벅머리 아저씨가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도 하고,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는 잘해주고 싶어 사랑에 빠지는 여자다.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고 누군가 그 손을 잡아 주면 사랑이 시작된다. 엄마는 나와 닮아 최고 속도로 사랑에 빠지고 그만큼 깊이 상처받는다. 구멍이 뻥 뚫린 마음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하지만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처를 받아도 엄마는 사랑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상처를 받으려고 사랑을 하는 사람 같다. 엄마는 욕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때리는 사람도 사랑한다. 곁에만 있어 달라고 애원한다. ─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엄마는 금방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114 안내원으로 일하는 엄마는 전화 속에서는 매번 친절하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집에 오면 술만 마신다. 엄마의 친절한 목소리는 전화 상에서만 들을 수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엄마는 요즘 다시 전 애인과 다시 만나, 애인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걸핏하면 손찌검에 무시하는 최악의 남자. 그 작자를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웃어주는 사람. 말 걸어 주는 사람. 아파서 엎드려 있을 때 손을 들어 선생님에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 준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 친구들이 나를 에워싸고 괴롭힐 때 괴롭히지 마, 라고 말해 준 착한 사람. 나는 그들을 다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게 상처를 줬다. 끝까지 웃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없어.  ─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이 작품의 화자가 겪고 있는 말더듬증은 소아·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정서장애로 분류한다. 대부분 심리적 요인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고, 부모의 인성이나 양육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치료가 되기도 한다. 마음의 결핍을 언어의 결핍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라는 동안 경험한 마음의 상처에 고통을 호소한다. 가족에 대하여, 친구 관계에 대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두려워한다. 만약 자라는 동안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다면 좋을까?



엄마, 미안해. 잘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돼. 나도 그게 신기해. 안 되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런데 엄마는 아니야. 엄마는 원망하지 않아. 엄마가 내 말을 들었을까? 내 마음이 들렸을까? 엄마는 말했다. 괜찮아, 라고 했던가, 힘들어, 라고 했던가. ─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내 친구는 어릴 적 가정 학대로 두려움이 많았다. 누군가 매서운 표정만 지어도 자신감을 잃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함께 협동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나서기 두려워하고, 매번 누군가의 한 마디에 상처받아 울곤 했다. 그래서 늘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사실 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처 좀 받으면 안 되나? 누군가 상처받아야 한다면, 내가 받을게. 며칠 속상할 수 있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일 것 행복할 것 - 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홍인혜 지음 / 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지금 독립 4일차,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구로구 개봉동에 거주했는데 고등학교는 버스로 30분 거리, 대학이 있는 강북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 그리고 취업한 직장도 대부분 강남이어서 1시간 3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한 과목의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3시간을 등교하는 것이 버거워 자취를 알아보기도 했고, 2호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첫 직장에서도 독립이 간절했다. 하지만 고향이 지방인 것도 아니어서 가성비를 계산해보다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다. 왕복 3시간 거리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학교를 가며 꽤 많은 책을 읽었고, 출퇴근을 하며 꽤 재밌게 덕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에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사는 인생은 매일매일 그 맛을 바꾸며 내 감각을 일깨운다. 달았다 하면 쓰고, 썼다 하면 시다. 애초 내가 안온한 삶을 떠나 홀로서기를 갈망했던 이유, 만사가 새삼스러운 삶이 지금 여기에 있다." (p.267)


지난 3일 동안 처음 해보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도착하는 택배 박스와 비닐들을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쓰레기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처음 구입해보았다. 집에 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쓰레기봉투의 크기를 용도별로 고르는 일도, 혼자 먹을 밥을 차리고 옷가지를 세탁하는 일도 나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다. 혼자 있는데 왜 이렇게 금세 지저분해지고, 수건을 왜 이리 빨리 쌓이는지. 메뉴를 정하고 밥을 먹는 일도 일이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하루 종일 분주하다. 내 생활력이 이다지도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처참할 줄이야. 그래도 부지런히 적응해가는 과정은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과연 그럴까? 여럿이 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슬프기만 한 일일까? 동거인 하나 없이 나 혼자 산다는 건 결핍만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나는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알았다.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함께 있으면 함께 있어서 좋고, 떠나면 떠나서 좋았다. 완전무결하게 갖춰진 이 고즈넉한 생태계에서 타인의 합류는 그 왁자함으로 나를 흥나게 하곤 하지만 그들이 떠나면 '아, 이제야 갔군……' 하고 맥이 탁 풀리는 순간도 분명 존재했다. 조용한 나만의 세계로 돌아왔다고 안심하게 되는 순간, 와락 밀려드는 묘한 후련함. 드디어 모두 떠났군, 다시 혼자 되었군,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군. 이 감정은 결핍감보단 편안함에 가까웠다." (p.127)


엄마는 볶음밥과 미역국, 마른 반찬들을 가득 싸오며 딸내미 시집보낸 것 같다고 서운해했고, 동생은 잠깐 사이 손을 베인 언니를 위해 처음 온 동네의 약국을 찾아내 후시딘과 밴드를 붙여주었다. 내 독립이 그다지 외롭지 않고, 여전히 신나기만 한 이유는 지척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든 달려가 엄마 밥을 먹을 수 있고, 심심한 날 동생에게 놀러 오라고 할 수 있는 내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저 새로운 모험을 떠난 것처럼 기대된다. 행복해야지! 좌충우돌 태태의 자취 라이프!


이제 설거지 해야된다. 휴=33


너무 재밌고, 너무 바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생이 생기는 기분
이수희 글.그림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동생과 6살 터울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릴 때는 꼬물꼬물 쫓아다니는 동생이 귀여웠고,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세상 귀찮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것 같다.


나는 친구들에게 동생 자랑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내 동생은 나와 달리 무척 다정(?) 하다. 주말 오전에 같이 짜파게티도 먹어주고, 그것이 알고 싶다도 같이 봐주고, 심부름도 잘해주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면 밥은 먹었는지 꼭 물어보고 시리얼에 우유라도 부어서 가져다준다. 때로는 지쳐서 방에 콕 박혀 누워있으면 먼저 찾아와 말 걸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는 착한 동생은 내 동생밖에 없을 거다. 나는 사실 동생 없이는 집에서 물건 하나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지라, 이번에 내가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친구들이 가장 먼저 한 이야기는 "너 동생 없이 살 수 있어?"였다.


『동생이 생기는 기분』 출간 준비를 하며 어릴 때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그중에 몇 개의 에피소드를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어린 동생을 들어 올려 비행기 태워주는 장면을 카톡으로 보내줬는데, 동생은 '어릴 때 저게 제일 좋았는데'라고 했다. 아장아장 걸어와 비행기 태워달라고 조르던 모습이 (지금 말고) 엄청 귀여웠는데. 학교에 다녀와서 안아주면 내 손에서 연필 냄새가 나던 게 좋았다고 말해준다. (다정해!)





자전거를 막 배웠을 무렵에는 의기양양하게 동생을 태웠다가 떨어트리기도 하고, 뒷바퀴에 발이 끼어 다치기도 했다. 오랫동안 혹이 불룩했던 이마를 떠올리면 속상했지만, 언니도 어렸으니까 그래도 재밌었어,라고 말해주는 의젓한 동생. 나는 내 동생에게 이런 다정한 면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차가 많이 나다 보니 성장하는 동안에는 서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었다. 동생에게도 어릴 때 예뻐해 줬던 거에 비해 사춘기를 겪는 언니가 어렵고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이 처음 목을 가눴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투니버스가 재미없어 티브이도 꺼 두어 집 안이 적막했다. 배 위에 올려놓은 애기는 묵직하면서 따뜻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커다란 물고구마 같았다. 얼마 전까지는 엄마 배 속에 있었는데 이제 내 배 위에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참 신기한, 애기라는 존재.p.73?


그래도 지금은 세상에서 동생이 제일 좋다. 자매가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깊은 사랑부터 가장 못난 심술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거니까. 그것도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가족으로.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면 동생에게 얹혀살 생각이다. 동생이 지금처럼 철없는 언니를 계속 키워줬으면 좋겠다. 내일 독립하고 나면 우리 자매는 처음으로 헤어져 사는 것! 처음에는 맨날 부려먹는 언니가 없어서 신나겠지만 곧 그리워질걸? 주말에 짜파게티도 혼자 먹어야 하고, 그것이 알고 싶다고 혼자 봐야 한다고!??


당분간 동생 없이 살아갈 내가 걱정된다. 집에 가서 동생이랑 『동생이 생기는 기분』 같이 봐야지. 너 어렸을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을 자주 듣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말로, 딸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가슴 속의 말을 뒤져 할 말을 찾는다. 공부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 그러나 이 말들은 딸의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들다. 나도 그러지 못했는데.. 망설이던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너의 삶을 살아라"


나의 삶은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으며 이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과는 조금 비껴나 있어 누군가의 눈에는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라고 성장하는 중인 작가가 그림책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한다. "모험은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나를 살아보는 일이다."



아이들은 금지된 세계에 매료되고 불가능한 꿈을 꾼다. 소방차가 되겠다고 하고, 하늘을 날겠다고 하고, 커서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한다. 가지 말라는 숲으로 기어이 들어가 늑대 밥이 되었다가 구사일생하고도 실눈을 뜨고 몰래 다시 숲을 본다. 아이들은 금기를 깬다. 경계를 넘는다. 자기 세계의 울타리를 수시로 넘나들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성장한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세상 끝까지 가보겠다는 아이에게, 저 숲이 궁금하다는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까. (p.22)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처음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댁에 심부름을 갔다. 생각해보면 꽤 복잡한 길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1호선 개봉역에서 어린이 표를 구매하고, 의정부 방향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갈아타 2호선 봉천역에 내리는 코스였다. 엄마와 여러 번 가본 길이었고, 당시 나는 내가 꽤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던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면 기특해하고 장하다고 칭찬해주시는 게 참 좋았다. 나는 혼자서도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어린이였다.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p.143)


나는 어릴 때도 꽤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학 숙제는 '견학'이었다. 서울의 고궁이나 박물관을 찾아 사진을 찍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였다. 나는 도서관의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내가 가고싶은 곳들을 골랐고, 세상을 궁금해하는 나를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났던 곳들이 여전히 기억 난다.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도와주셨던 아저씨, 그 분은 자신이 경복궁 근처에 있는 조선일보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찍는 모습을 귀엽게 보시고 여러 역사적 이야기도 들려주셨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멋진 기념 사진도 찍어주셨다.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아마 사진 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은 63빌딩에 갔던 때였는데, 꽤 길을 헤맨 탓에 입장 종료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1층 데스크에서 안내를 해주시던 언니는 꽤 곤란해하다, 실망하는 우리를 보고 직접 전망대에 데려다주었고, 서울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망원경에 동전을 넣어주기도 하셨다. 나의 모험에 근심보다는 응원을 해주셨던 어른들.


그때 사진을 보면,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작고 어렸다. 아직 어린 아이인 주제에 제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를, 나라면 혼자서 쏘다니게 믿어줄 수 있을까? 내가 지하철을 타고 심부름을 갈 때, 엄마가 몰래 나를 뒤따라왔었다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야 알았다. 당시 나는 스스로 해냈다고 믿었고,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늘 세상을 잘 누비고 다녔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온 후 대견하고 기특한 딸로 칭찬받았으니까. 난 내 자신의 용감함이 자랑스러웠다.


"여행은 끝났고 남자는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나무다리는 부서져 집이 되었다. 얼핏 보면 집은 처음 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벽은 삐뚜름하고 지붕으 기울었으며 여기저기 낡고 볼품없다. 그런데 집 안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게다가 떠나기 전 무채색이었던 내부가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이것은 일종의 은유이다. 하나의 경험이 일어난 후에 한 사람의 안과 밖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p.37)


고등학교 진학을 지원할 때, 나는 갈팡질팡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선택의 기로라고 여겼다. 나는 엄마가 나를 도와주길 바랐다. 좀더 지혜로운 결정을 위해 조언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중요한 선택일수록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거야."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는 꽤 서운했지만, 사실 수많은 선택지 중 한 어떤 학교를 선택했더라도 결국은 잘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여겼던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했다는 점, 그리고 내가 선택한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다 졸업하게 된 모든 시간은 나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알려준 기회가 되었다. 어쩌면 조금 이상하고 자유로운 엄마 곁에서 진짜 '나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하스카프의 유일한 걱정은 가는 길에 사자 무리를 만나는 것이다. 아, 오해하면 안 된다. 하스카프가 사자 무리를 경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사자가 너무 좋아서 자신이 여행을 포기하고 그만 그 자리에 눌러앉을까 봐서다. 그러나 하스카프의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그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다. 타인의 시선과 내일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스스로를 믿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p.42)


삶의 많은 과정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때론 두려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을 뒤따라 가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과 내일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은 경험으로 쌓이는 마음인 것 같다. 내가 믿을만 한 사람이라는 경험, 마음 먹은 일을 끝까지 헤낸 경험, 그리고 모험을 떠나도 돌아올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경험. 아마도 나는 이런 경험으로 채워져 자라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또한 그러한 믿음이 쌓이도록 누군가를 오랜 시간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많이 든 어느 날에도, 어릴 적과 같은 호기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대해서. 스스로 씩씩하게 나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좋아하는 채소는 대충 호박, 양파, 버섯 정도이다. 그것도 늙은 호박보다는 애호박을 좋아하고, 아삭한 감이 사라질 만큼 볶아낸 양파나 버섯을 좋아한다. (표고버섯처럼 향이 강한 버섯도 먹지 못한다.) 특히나 내가 제일 먹기 어려워하는 채소는 식감이 '아삭'한 채소인데, 대표적으로 콩나물이다. 다른 채소들은 푹 익히면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데, 콩나물이나 숙주는 푹푹 익혀도 어느 정도 사각한 식감이 남아있다. 같은 이유로 샐러드처럼 생 야채를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삭함이 싫다는 것은 뭐, 채소가 다 싫다는 거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채소가 먹고 싶다. 그것도 아삭한 채소!


그린 빈스, 가지, 양파, 주키니 호박, 피망, 양송이, 영콘이 넘치도록 들어간 그린 카레를 받아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먹어보지 않아도 이 야채들이 얼마나 아삭거릴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라타투이 같은 일부러 야채를 뭉근하게 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고서야 오래 익힌 야채는 정말이지 끔찍한데, 적절하게 익힌 야채에서는 천상의 맛이 난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야채를 '적절'하게 익혔다는 것은 20% 정도 덜 익힌 거다. (p.62)


몇 년 전, 베트남의 달랏이라는 곳에 갔다. 달랏은 베트남 남부의 도시로 고도가 높아 평균 기온이 20도 정도 된다. 무척 쾌적한 날씨로 채소나 과일이 풍성하게 자란다고 하는데,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 아보카도와 아티초크를 먹었다. 국내에서도 아보카도를 먹은 적은 있지만, 조금 물큰하고 느끼하다(물기 많은 버터..?)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맛본 아보카도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그때 묵었던 호텔에서 조식으로 아보카도를 제공했는데, 아침마다 두세 개는 거뜬히 먹고도 빵에 발라 먹었다. 아직도 그 아보카도가 그리워 달랏을 가고 싶다. 한국에서 파는 아보카도.. 이 맛이 아니라고!


나는 아보카도를 그냥 먹는다. 순수하게 아보카도인 채로. 그게 가장 좋다. 칼질은 최소화하고 어떤 양념도 하지 않고 먹는다. 마치 흰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쌀의 순수한 맛에 감격하기라도 하듯이 반으로 가른 아보카도를 티스푼으로 파 먹으면서 완전무결한 초록을 느낀다.(p.46)


또 하나는 아티초크인데, 태어나서 이렇게 솔방울(?)처럼 생긴 채소는 처음 봤다. 이름도 아티초크라니. 특히 아티초크 차가 약간 달큼하면서 텁텁한 맛이 나지 않아 좋아했다. 달랏을 떠나는 날, 가방 한가득 아티초크 차를 사서 떠났는데 여행지 내내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잔씩 타주면서 맛보게 했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생 아티초크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고, 분말 형태만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먹어보고 싶었고 궁금했던 음식은 돌마데스 Dolmades였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몇몇 블로그에서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포도잎이라고 하니 와인에 절인 맛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먹어보고 싶은 음식! 그렇다면 그리스에 가봐야 하나.


'Dolmades'라는데, 돌마데스가 뭔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캔을 땄더니 퇴색한 올리브잎 같은 색의 잎사귀에 무언가가 돌돌 말려 있었다. 포도잎 쌈밥이었다. 입술에, 포도잎의 잎맥이 느껴졌다. 잎맥이 꼭 지문같아서, 포도잎이 사람 손바닥 같다고 생각하며 입에 넣었다. 포토잎 쌈밥을 깨물자 안에 있던 쌀과 향신료와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 같은 게 터지면서 포도잎과 섞였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씹으면서 그것들이 뒤섞이며 불러일으키는 효과에 집중했다. (p.50)


로메인이나 루콜라, 아삭한 양상추를 차가운 물에 씻어낸 후 먹는 싱싱함, 그 맛이 그리워진다. 나 분명 아삭한 채소 싫어하는데. 나도.. #오늘은초록 샐러드 먹을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