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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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곡을 자주 듣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말로, 딸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가슴 속의 말을 뒤져 할 말을 찾는다. 공부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 그러나 이 말들은 딸의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들다. 나도 그러지 못했는데.. 망설이던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너의 삶을 살아라"


나의 삶은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으며 이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과는 조금 비껴나 있어 누군가의 눈에는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라고 성장하는 중인 작가가 그림책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삶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한다. "모험은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나를 살아보는 일이다."



아이들은 금지된 세계에 매료되고 불가능한 꿈을 꾼다. 소방차가 되겠다고 하고, 하늘을 날겠다고 하고, 커서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한다. 가지 말라는 숲으로 기어이 들어가 늑대 밥이 되었다가 구사일생하고도 실눈을 뜨고 몰래 다시 숲을 본다. 아이들은 금기를 깬다. 경계를 넘는다. 자기 세계의 울타리를 수시로 넘나들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성장한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세상 끝까지 가보겠다는 아이에게, 저 숲이 궁금하다는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까. (p.22)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처음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댁에 심부름을 갔다. 생각해보면 꽤 복잡한 길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1호선 개봉역에서 어린이 표를 구매하고, 의정부 방향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갈아타 2호선 봉천역에 내리는 코스였다. 엄마와 여러 번 가본 길이었고, 당시 나는 내가 꽤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던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면 기특해하고 장하다고 칭찬해주시는 게 참 좋았다. 나는 혼자서도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어린이였다.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p.143)


나는 어릴 때도 꽤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학 숙제는 '견학'이었다. 서울의 고궁이나 박물관을 찾아 사진을 찍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였다. 나는 도서관의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내가 가고싶은 곳들을 골랐고, 세상을 궁금해하는 나를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났던 곳들이 여전히 기억 난다. 경복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도와주셨던 아저씨, 그 분은 자신이 경복궁 근처에 있는 조선일보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찍는 모습을 귀엽게 보시고 여러 역사적 이야기도 들려주셨고 광화문을 배경으로 멋진 기념 사진도 찍어주셨다.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아마 사진 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은 63빌딩에 갔던 때였는데, 꽤 길을 헤맨 탓에 입장 종료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1층 데스크에서 안내를 해주시던 언니는 꽤 곤란해하다, 실망하는 우리를 보고 직접 전망대에 데려다주었고, 서울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망원경에 동전을 넣어주기도 하셨다. 나의 모험에 근심보다는 응원을 해주셨던 어른들.


그때 사진을 보면,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작고 어렸다. 아직 어린 아이인 주제에 제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를, 나라면 혼자서 쏘다니게 믿어줄 수 있을까? 내가 지하철을 타고 심부름을 갈 때, 엄마가 몰래 나를 뒤따라왔었다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야 알았다. 당시 나는 스스로 해냈다고 믿었고,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늘 세상을 잘 누비고 다녔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온 후 대견하고 기특한 딸로 칭찬받았으니까. 난 내 자신의 용감함이 자랑스러웠다.


"여행은 끝났고 남자는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나무다리는 부서져 집이 되었다. 얼핏 보면 집은 처음 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벽은 삐뚜름하고 지붕으 기울었으며 여기저기 낡고 볼품없다. 그런데 집 안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게다가 떠나기 전 무채색이었던 내부가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이것은 일종의 은유이다. 하나의 경험이 일어난 후에 한 사람의 안과 밖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p.37)


고등학교 진학을 지원할 때, 나는 갈팡질팡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선택의 기로라고 여겼다. 나는 엄마가 나를 도와주길 바랐다. 좀더 지혜로운 결정을 위해 조언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중요한 선택일수록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거야."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는 꽤 서운했지만, 사실 수많은 선택지 중 한 어떤 학교를 선택했더라도 결국은 잘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여겼던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했다는 점, 그리고 내가 선택한 학교에서 즐겁게 지내다 졸업하게 된 모든 시간은 나에게 선택의 즐거움을 알려준 기회가 되었다. 어쩌면 조금 이상하고 자유로운 엄마 곁에서 진짜 '나의 삶'을 사는 법을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운데 하스카프의 유일한 걱정은 가는 길에 사자 무리를 만나는 것이다. 아, 오해하면 안 된다. 하스카프가 사자 무리를 경계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사자가 너무 좋아서 자신이 여행을 포기하고 그만 그 자리에 눌러앉을까 봐서다. 그러나 하스카프의 놀라운 점은 따로 있다. 그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다. 타인의 시선과 내일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스스로를 믿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p.42)


삶의 많은 과정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때론 두려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고, 때로는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을 뒤따라 가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과 내일의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은 경험으로 쌓이는 마음인 것 같다. 내가 믿을만 한 사람이라는 경험, 마음 먹은 일을 끝까지 헤낸 경험, 그리고 모험을 떠나도 돌아올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경험. 아마도 나는 이런 경험으로 채워져 자라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또한 그러한 믿음이 쌓이도록 누군가를 오랜 시간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많이 든 어느 날에도, 어릴 적과 같은 호기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대해서. 스스로 씩씩하게 나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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