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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한정현의 『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를 읽는 동안, 우연히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김복준의 사건의뢰>에서 1920년대 일어난 '김정필 사건'을 다루었다. 김정필은 192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살해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다. 당시 언론에는 김정필이 자기 남편 김호철의 얼굴이 곱지 못하고 무식하며 성질이 우둔한 것을 비관하여 번민을 느껴오던 중 남편을 없애고 이상적 남편과 살아보고자 주먹밥에 랏도링(쥐약)을 넣고 먹여 사망케 하였다고 발표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의사 구도 다케키는 조선 특유의 범죄 형태를 총독부 통계 자료를 분석해 『조선특유의 범죄 : 남편 살해범에 대한 부인과학적 고찰』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당시 서대문형무소 살인범의 성비는 100명당 남성이 53명, 여성이 47명으로 여성 대부분은 남편 살해범이라고 한다. 당시 조혼이나 억지 결혼으로 남편, 시댁과 갈등을 빚는 여성들이 많았음을 감안해도 매우 놀라운 통계라고 느껴진다. 물론 역사 기록 그대로 당시 여성이 처한 여러 상황에 비추어 타국에 비해 남편 살해가 많았던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강자에 의해 쓰인 기록이 아니던가.
"윤박 교수는 미군이 들어오면서 주장한 공창제 폐지에 힘을 싣고 있었다. 그는 신문에 여러 차례 사설을 실어 여성 권익 향상에 앞장서고 있었다. 물론 그 사설의 말미에 항상 '사실 여성들도 남성들에게 전적으로 기대어 살았기에 일어난 문제이니만큼 독립적 성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를 갖다 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미군정 이후 커지는 여성의 목소리에 남성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_p.82
『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에서 살해된 윤박 교수는 미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해방 후 귀국한 엘리트 남성으로, 동료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나 양준수 형사와 미군정 조사관인 이든 대위는 윤박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미군정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하여, 다른 자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한다. 그 희생양으로 떠오른 세 명의 여성 용의자는 『모던조선』의 편집장 선주혜, 현재는 가정 주부이지만과거 윤박의 집 식모이자 성 판매 여성이었던 윤선자, 그리고 윤박의 제자이자 자살한 신인 여성 소설가 현초의다.
"나라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이나 변태 성욕자, 길거리 노동자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 _p.148
"여성들이 저에게 잘 보이려고 화장하고 그러는 것이 별로여서요. 특히 일본 여성이나 조선 여성들은 과하게 순응적이죠." 이든은 미소를 지었지만 운서와 가성의 표정은 동시에 어두워졌다. 순응하지 않으면 죽이잖아요. _p.85
역사적 기록은 누가 범인이고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가가 중요했을지 몰라도, 한정현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그 사이의 누락된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정필은 어떨까? 김정필은 재판 당시 랏도링을 구매한 것은 맞지만 남편에게 먹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시댁에서는 시집 온 며느리가 아들에게 독약을 먹여 살해했다고 고발했고, 경찰은 체포 당시 김정필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죄를 인정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물론 그가 진짜 범인일 수도 있다.)
1920년대 본부(남편) 살해가 많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 보자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남편을 죽였을 수 있다. 혹은 남성이 누군가를 살해했을 때 이해하고 용납해 줄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여성은 작은 모함에도 상황을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생 아내를 폭행해 온 남편이 그날도 폭행을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아내가 사망해서 감형이 될 수 있지만, 평생 맞아온 아내가 저항하다 남편이 죽인 경우에는 계획범죄로 가중 처벌을 받는 지금과 비슷한 것이다.
사실 내가 범죄에 치중해서 리뷰를 썼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윤박 교수의 살해도, 이 사건의 범인도 아니다. 한정현은 이러한 사회 구조적인 약자들이 착취당하고 위협을 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려고 애쓰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p.183) 지워진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도 약자인 당신을 구해내기 위해 누군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낙관할 수 있음을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사랑이, 선의가 우리를 구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