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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오르고 가족과도 멀어진 남자가 스스로 '변화'하고자 노력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이야기라니. 이렇게 한 줄로 설명하고 나니 더 뻔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튜브』는 순진하게 느껴질만한 성실하게 실패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에 신선한 결말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다가 문득, 내가 김성곤 안드레아구나라는 생각에 아찔한 생각이 든다. 먼 미래를 무턱대고 낙관하며 아등바등 달려가다가 지쳐버린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쉽게 상처 주고 소중히 대하지 못하는 사람, 항상 너무나 많은 것들을 신경 쓰느라 진짜 중요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 모든 것을 효용과 쓸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느라 세상을 감탄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그것은 나였다.
"엄마, 그런 말 들어도 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니까 그만 좀 하세요. 그래서 어쩌라고. 꽃이 폈어. 그래서 어쩌라고, 응? 따달라는 거야? 아니잖아. 엄마 말이 맞는다고 해야 되는거야? 매번 꽃 폈다고 중얼거릴 때마다 내가 대체 뭐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건데요?" 김성곤 안드레아는 차츰 감탄하는 법, 놀라는 법, 사물과 세상을 목적 없이 지그시 바라보는 법을 잊어갔다. 그런 걸 잊은 사람에게서 진정한 미소나 여유 같은 게 우러나올 리가 없었다. (152)
어떤 인생이 실패일까? 세상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낡은 자전거로 배달 음식을 나르는 그를 실패자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승승장구해서 돈을 많이 버는 가장이었다면 성공한 삶이었을까? 그가 불행하다고 느낀 이유는 단지 사업의 실패에만 있지 않다. 그는 삶의 감각과 감정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목표를 좇아 살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다 학원 운전기사로 일하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얼굴에 쏟아지는 비 때문에 얼굴이 잔뜩 찌푸려지는 날, 아이들이 비에 맞지 않게 분주히 바닥에 모포를 깔고 작은 비닐 통로를 만들던 남자는 아이들을 인솔하며 미소 짓고 기둥에 맺힌 빗방울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든지 한번에 한가지씩만 하는 겁니다. 밥 먹을 땐 먹기만, 걸을 땐 걷기만, 일할 땐 일만. 그렇게 매 순간 충실하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우린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느라 에너지도 감정도 너무 많이 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다보면 자꾸만 소모적인 생각이 날아들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돼요. 그러니까 생각의 스위치부터 꺼야 하죠. 낙엽은 낙엽으로 보고 전봇대는 전봇대로 보는 겁니까. 빨간 건 빨강게 노란 건 노랗게 받아들이면 되죠. 그러면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죠. 온 세상이 신기한 것 투성이고 예쁜 것 투성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146)
작가의 전작 『아몬드』에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주변인들과 소통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면, 『튜브』는 감정을 잃어버리고 무감각하게 살아온 중년이 그것을 회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성곤이 바라는 변화는 자신의 더 나은 상황과 결과의 변화가 아니라 잊어버린 감각을 되살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처럼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선정해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게 된다. 그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이었다.
삷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것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삶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른다. 인과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종종 헛된 이유는 그래서이다. 찾았다고 생각한 정답은 단기간의 해답이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 전체를 꽤뚫기 어렵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 진리는, 그것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238)
김성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실패한 사람이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성공이 뭐지? 혼돈과 불안정은 살아있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파도에 맞서야 할 땐 맞서고 그러지 않을 때는 아이의 눈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며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잠잠히 김성곤을 응원하게 된다. 나도 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