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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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 내가 단숨에 이 책을 읽어낸 이유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의 절반을 읽어도, 삼분의 이 지점까지 읽어도 맥락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흥미로웠고,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54)


룰루 밀러는 아버지로부터 '넌 중요하지 않아.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는 가르침을 들으며 자랐다.(p.55)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반박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데이비스 스타 조던의 삶에 매혹된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일을 고귀하게 여겼고, 물고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의 진짜 창조 이야기를 깨닫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나자 그가 평생 수집한 표본은 모두 파괴되었고, 한순간에 모든 업적이 무너졌다. 이 정도 일을 겪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절망에 굴복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던은 어땠을까?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통해 역경의 시간을 헤치고 끝내 이겨내는 방법을, 자신의 무너진 삶의 질서를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룰루 밀러는 왜 '데이비스 스타 조던'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논픽션이 지닌 특별한 지점은 이러한 독특한 서사 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야기의 중반까지 룰루 밀러는 데이비스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언급하며 그를 칭송한다. 그러나 돌연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난다. 한국에서는 낯선 인물인 스탠퍼드 대학 총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평생을 바친 연구결과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우생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쫓아가며 연구하던 룰루 밀러는 자신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리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스 스타 조던이라는, 그것도 생물학자이자 분류학자로서 권위 있는 과학자 한 사람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칭송해왔던 과학이라는 세계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그가 한평생 연구하며 지위를 쌓았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실재 자연 세계가 인간이 설정한 대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우리가 확신하는 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250)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발혀질 것이다. (26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다양한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대가 (좋든 싫든) '기준'이 사라진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정상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만 명확하게 내려진 답이 없는 혼돈의 시기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확신하고 있던 과학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아버지가 강조하던 '무의미'에 반박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확립해나가는 룰루 밀러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 해주는 존재, 웃음의 근원,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227)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264)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단언하지 말라, 예상치 못할 놀라운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 책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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