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국가 간 전면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YouTube에서는 실시간으로 대규모 폭발 장면과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 행렬을 송출했다. 누군가의 불행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자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마르티나 보스셉스카/폴란드 자원봉사자 : 우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료 교통수단을 제공하려고요. 뉴스를 보고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 생각해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차역 곳곳엔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놓은 종이가 붙어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연락을 주세요.]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도시의 시민들은 당장 거주할 곳 없이 우크라이나를 떠나온 난민들을 돕고자 했다. 삼면이 바다로 막혀있어 국경의 개념이 다른 우리나라였다면, 나라면 어땠을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 집을 내어주고 돌봐줄 수 있을까?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캠프에서 구호물품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피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로세르, 전쟁이 임박해 있어. 이념과 원칙의 전쟁이 될 거야.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두 방식 사이의 전쟁이고, 나치와 파시스트와 맞선 민주주의의 전쟁이고, 자유와 권위주의가 맞선 전쟁이지." _p.185


『바다의 긴 꽃잎』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겪은 빅토르와 로세르가 파시즘을 피해 칠레로 망명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 정부와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즘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시작되어, 안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위한 혁명이었고 밖으로는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쟁은 파시스트 군부의 승리로 끝나고 프랑코의 보복을 피해 스페인을 탈출한 난민들이 냉혹한 현실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지자, 칠레는 '파블로 네루다'를 프랑스 주재 특별 영사로 파견하여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페인 난민들을 공식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인 ‘바다의 긴 꽃잎’은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언젠가 칠레」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시인과 이사벨 아옌데의 조국 칠레를 상징한다.


"네루다는 열정적으로 스페인을 사랑하고, 파시즘을 증오했다. 그는 패전한 공화주의자들의 운명을 너무나도 걱정한 나머지, 우파 정당들과 가톨릭교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새로 취임한 대통령을 설득해 공화주의자들을 칠레에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p.145


조지 오웰은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에 갔으나 혁명에 매료되어 전쟁에 뛰어들었고, 민병대원으로서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싸운 역사를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기록했다. 이 경험을 통해 조지 오웰은 '인간을 압제하는 모든 형태'를 타파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희생양을 구하고자 하는 실천적 저항으로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사벨 아옌데의 대부분의 작품에도 칠레를 관통한 정치적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데, 작가 또한 칠레에서 최초로 투표에 의해 선출된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조카이자 자신 역시 주인공처럼 피노체트 군부독재를 피해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떠나야 했던 경험이 있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의 아픔과 비극적인 역사의 상처를 더없이 생생하게 그려 낼 수 있었다.


"네 세대는 이상주의가 결핍되어 있어." _p.408


 우리 세대가 문학 작품을 통해 조지 오웰과 이사벨 아옌데가 말하는 정치적 역사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더 평등한 사회를 꿈꾸고, 인간을 압제하는 모든 형태에 저항하고, 정의롭지 못한 희생양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상주의'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러한 전쟁을 이데올로기 싸움이라고 명명하겠지만, 전쟁 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존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고 더 나은 평등을 위해 투표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이 같은 전쟁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파시즘을 피해 칠레로 망명해야 했던 2천여 명을 오로지 형제애로 환대한 칠레 국민들의 모습처럼, 지금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사람들을 조건없이 돕는 이들의 모습처럼 우리에게도 약자를 향한 인류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바다의 긴 꽃잎』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다른 책들도 살펴보게 되었고, 시인으로만 알았던 파블로 네루다가 외교관으로서 스페인 사람들을 포용하고 시를 통해 위로했음을 알게 되면서 왜 칠레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지도 깊이 알게 되었다. 꼭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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