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 문예출판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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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세계가 마치 종교의 오묘한 세계 같다. 이 책을 읽고 무한한 깊이를 느끼니 기존에 읽었던 [철학, 문화를 읽다], [휘페리온] 등이 너무 쉽게 와닿을 정도이다.

나에겐 생소한 철학자 하버마스의 1970, 80년대의 현대성의 철학서이다. 철학에 무지한 나같은 이가 그냥 읽기에는 너무 버거운 책이다. 다행히도 나의 책장엔 [지도로 보는 세계 사상사]가 있어 이 책에 등장하는 하이데거와 푸코 등의 사상가들의 간략 정보는 얻었기에 망정이지...하버마스가 하이데거처럼 끔찍한 철학자는 아니길 바란다.

하버마스의 현대성의 개념을 살펴보기에 앞서 그는 여러 철학자들을 등장시킨다. 헤겔은 현대를 문제시한 최초의 철학자로 이 책의 주인공 격인 '현대'는 서양에서 1968년 학생 운동 이후 약 20여 년 간 뭇지성인들의 입에 숱하게 오르내린 낱말이라고 한다. (해설) 이 '현대'라는 개념이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게 지금은 2010년이고, 이 책의 1판은 1994년이고, 하버마스는 적어도 이 책을 1980년 이후에 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현대'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대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에서 오는 노파심은 이 책을 어느 정도 읽어감으로서 해소할 수 있었다. 이런 년도와 상관없이 하버마스가 논하고자하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게 된다.

헤겔좌파와 헤겔우파의 입장을 읽으면서는 루소의 사상을 악의 정치를 행하는데 이용한 악의 무리들이 떠올랐다. 하나를 두고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그 수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심지어는 전혀 상반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섬뜩하다. 푸코를 비롯하여 경계선을 넘는 경험들에는 동양적 세계와의 접촉과 동양적 세계로의 몰입 (쇼펜하우어), 비극적인 것과 태고적인 것의 재발견 (니체), 꿈의 영역으로의 침투 (프로이트), 태고적 금지의 영역으로의 침투 (바타이유) 등의 사상들이 더 궁금해지지만 이 이상 더 깊이 읽는 것은 나에게 무리일 것이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해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유하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오늘날 이 세계가 있기까지 인류의 정신적인 바탕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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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홍신사상신서 3
루소 지음 / 홍신문화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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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을 읽어나가며 들었던 느낌. 고등학교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우연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읽고 들었던 느낌이였다. '이렇게 유명한 책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 땐 정말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

가상의 아이 '에밀'의 성장 단계에따라 1편부터 5편까지 루소의 교육론이 담긴 [에밀]은 진정 고전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갓 어머니가 된 언니에게 에밀을 읽고 있다고했더니 [에밀]은 현대 교육서의 어머니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어떻게 수 백년전에 씌여진 루소의 교육관이 현대에서도 이렇게 딱 들어맞는가? 내가 막연히 생각해왔던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드는 고민을 총 망라시킨 것이다. 물론 프랑스와 한국, 1700년대와 지금 2010년과 비교해서 약간의 시대적 이질감이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에밀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어린 두 딸들의 소소한 많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으며 (특히 질병의 문제) 아이들이 빨리, 더 빨리 자라주었으면 하는 즐거운 조바심이 생겼다. 수 많은 주옥같은 문장을 표시하느라 책 뒷 쪽이 지저분해졌지만, 훗날 이것도 뿌듯한 추억이리라..

루소의 기본적인 교육관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끝없이 성장해도 자연성을 회복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철학이다. 인생의 선한 일과 악한 일들을 분명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루소의 교육론과 국가 이론은 비인간적인 국가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를 하며 루소의 사상을 발판으로 잔혹한 국가 테러를 감행했다 - [노크하는 악마 21page] - 루소의 정치색채는 이 책에서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해석의 차이는 만인에 따라 다르리라..)

1편은 아이의 탄생부터 유년기, 2편은 말하기를 할 때부터 12~13살까지, 3편은 소년기, 4편은 청년기, 5편은 결혼 이후로 구성된다.

루소는 아이의 탄생부터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교육론을 나타내고 있다. 산파의 할 일, 유모의 조건 - 유모의 식습관까지, 젖먹이는 엄마의 중요성. 가정교사는 재물에 넘어가지 않는 인간으로 택해야하며 시간을 아끼지 말고 아이와 소비하는 것.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는 아이와 늘 함께해야 함 등등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너무도 일치하는 수 많은 사항들이 놀라웠다.

[에밀]이 출간되자마자 학교교육을 비판하고 교회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의사들도 싫어했을 것 같다.) 파리 학부에 의해 제소당하고 루소의 체포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 시대에는 루소의 교육론을 받아들이는 관용과 여유, 학교교육의 자신감이 지금보다도 훨씬 뒤쳐졌었다보다. 시대의 해석은 늘 바뀌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수의 사람들이 긍정하면 인정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지금 루소의 교육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어머니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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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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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의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마음 속에선 여전히 마의 산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곱씹어 보곤 하고있다.

결핵에 걸린 아내를 문병했던 3주간의 토마스 만의 경험담이 약 1,500page에 걸친 대장정으로 남았는데, 그의 문장력 (전체적인 흐름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나, 어느 한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책을 덮고 상념에 잠겨야 함에 완독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으로 정말 20세기의 최고의 독일 작가인 듯 싶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을 병문안 겸 휴양을 목적으로 고산에 위치한 국제요양원을 방문하게 된다. 3주간의 일정이였지만 그에게도 (심각하지 않은) 폐에 침윤된 부분이 발견되고, 열이 있어 일정은 연기된다. 그의 지적 스승이자 교육자 세템브리니와의 숱한 논쟁을 즐기고, 전형적인 암고양이 쇼샤 부인, 그녀가 데려온 우람한 페퍼코른, 무신론적 혁명론자 나프타, 늙은 의사 베렌스 등 책의 규모에 비례해 상당한 주요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요양원에서 죽게된다.  마의 산이 토마스 만의 작품 중 제일 에로틱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쇼샤 부인과의 몇 장면 뿐 나에겐 딱히 전해지질 않았다. 동성애적 느낌도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쇼샤 부인과의 애정 관계도 한스 카스트로프의 일방적인 행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요양원에서 여행을 떠난 쇼샤 부인을 기다리며 마의 산에서 7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요양원에서 진실로 아픈지 의문스러운 사람 두 명이 쇼샤 부인과 주인공이다.)

시간.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주제이고, 나에게도 많은 의문을 던진 단어이다.
공간.
이것은 두 번째 주제이고,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사유를 깊게 만드는 마의 산. 마의 산의 공기에 허겁지겁 도망가버린 한스 카스트로프의 친척이 있는가하면, 주인공은 거기에 마법처럼 걸려들어 7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7년이란 시간은 주인공에게 365일 * 7년의 나날들이 아니다. 며칠같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단, 몇 달처럼만 느껴지는 그 시간들 속에서 결국 세계1차대전의 발발로 총알처럼 튕겨져 그곳에서 나와 전장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내가 속해있는 시간은 어떤 것인가? 눈에 보이는가? 잡히는가? 느낄 수 있는가? 나름 찬란했던 20대를 보낸 후 그 되돌아보는 10년이 10년같이 느껴지는가?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난 일 년이 진정 일 년처럼 느껴지는가? 엊그제 같았던 첫째의 산고. 그 끝에 태어난 아이의 치아는 20개가 모두 완성되었다. 그 시간들. 마의 산은 그 어떤 철학서보다 더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23살의 젊은 청년이였던 주인공은 고립된 요양원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들로 채워진, 정말 거기에서 사는게 체질인 듯한 시간, 7년을 보낸다. 지루할틈 없는 사람들과의 논쟁, 멋진 식사, 안락한 안정요양시간. 흥미로운 강연 시간. 산책 시간. 나도 거기에 동참하는 꿈을 꾸어본다.

탐구해볼만한 주요한 인물들의 특색을 느끼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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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
E.F. 슈마허 지음, 이상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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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경제 관련 서적 몇 권이 전부이긴 하지만 (대학교때 교양 강의로 들은 일반경제학 수업 빼고) 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다른 서적들과 다르다. '다르다'라는 말이 애매모호 할 수 있지만 나에겐 서정적인 경제학을 연상시키는게, 꼭, 환경주의자가 쓴 책 같기도 하고, 계몽운동을 하는 사상가가 쓴 책 같기도 하다.

하지만 E.F. 슈마허는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년전 독일에서 태어난 수재 경제학자이다. 이미 그 때 '작은 것'으로 돌아가는 회의론적인, 염세적인 경제학론 & 환경론을 주장한 경제학자. 최근에 읽은 그 어떤 경제학 서적보다 마음에 와닿고 쉽게 이해되는 책이다.

대제목으로는 그의 관심사의 다양성을 다 엿볼 수 없다. 총 19장으로 나누어진 소단락들을 읽어보면 그의 관심사와 고민들. 인간들에 대한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 알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지혜의 핵심은 영속성이다. ... 어리석은 상태에 빠지지 않고 장기간 지속될 수 없는 한,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없다.' ----- page 45

'간디가 말했듯이 "대지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page 46

그리고 물질적인 목적만을 추구한 채 정신적인 목적을 가볍게 여기는 생활이 얼마나 천박하고 근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슈마허의 날카로운 지적은 '과연 우리가 탐욕과 시기심을 버리려는 시도를 할 수나 있을까?'의 자조를 뱉어내게 한다.

그가 처음으로 세계 여행을 하면서 부국과 빈국을 여행했을 때 떠올랐다는 경제학의 첫 번째 법칙, '한 사회가 향유하는 실질적인 여가의 양은그 사회가 이용하는 노동절약적 기계의 양에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명제는 나의 생활을 반성하게 한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교회 주일말씀과도 일치하는 이 내용은 네 식구. 우리 가족에게 수반되는 이십여가지에 달하는 가전제품들을 부끄럽게 한다.

원자력의 위험성과 환경 오염.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빈곤의 문제가 수 십년전 그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지적되고 있다.

나는 첫 아이의 탄생으로 환경문제와 빈곤아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조금씩 실천하고 있지만 마음과 더불어 이 문제엔 항상 경제적인 것이 따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후퇴하자는 식의 경제학자는 아니다. 사실 '경제학'은 '부'에서 시작된 게 아니던가? (이건 나의 생각)

지속가능한 경제. 그리고 삶을 지키기위해서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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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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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는 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주인공 화자가 나에서 선생님으로 옮겨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선생님의 결말만 죽음으로 나타날 뿐 주인공, 나와 위독한 주인공, 나의 아버지의 결말은 없다. ([그 후]에서의 결말도 비슷한 식이였다.)

인간의 '선'과 '악'의 마음이 누구에게나 동전 뒤집듯 쉽진 않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날벼락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잃게 된다거나, 그 방식을 180도 바꿔버리게 하는 것 같다.

선생님. 자신은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믿었던 작은아버지에게 배신, 버림을 받고 세상과 담을 쌓지만 하숙생으로 기거하게 된 평화스러운 두 모녀에의해 마음의 장벽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다 딸을 연모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는데... 친구 K를 돕고자하는 순수한 마음에 같이 하숙을 하지만 K또한 주인집 딸을 사랑한다는 큰 고백을 듣게 된다.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포기하기도 힘든 것. 그 당시, 선생님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K에게 자신의 마음은 숨긴채 주인집 사모님께 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 사실을 주인집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K는 며칠 뒤에 자살을 하고, 이는 선생님의 은둔 생활의 시초요, 수 년후 자신도 자살을 택하게 한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던 K. 마찬가지로 상처입었던 선생님. 그 선생님을 존경했던 대학생인 주인공 나.

마음..마음..마음..
선과 악. 사랑의 마음. 위악스러운 마음, 죄스러운 마음. 뉘우치는 마음. 끝내 세상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마음.

그 시절, 선생님이 왜 솔직하게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왜..왜..그런 고민하는 마음.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이렇게 진행되는 이 작품은 내가 네 번째로 읽는 나쓰메 소세끼의 작품이다. 그리고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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