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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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펜에서는 다시 신랄한 독설이 새어 나온다. 이 신랄함은 얼마나 아둔하고 생기 없는 것인가.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 그러나 내가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문득 반들거리는 타일을 입힌 탁자 표면 너머의 그에게서 뭔가를 느꼈다. 그것은 사랑 같은 심각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아마도 불행을 함께 나누는 동지애 정도일 듯싶은 감정이었다. 내가 헨리에게 말했다. "자넨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건가?"

-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런던을 배경으로 소설가 모리스 벤드릭스와 세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헨리 마일스 세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철저한 모리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모리스와 세라의 사랑, 헨리의 사랑, 이별, 죽음, 회상을 마주하는 감정을 '모리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모리스는 헨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그의 아내 세라를 만난다. 세라는 그 이유를 알면서도, 모리스 역시 그 이유로 시작한 관계임을 알면서도 둘은 사랑이라고 믿는 순간을 경험한다. 담담하게 그들의 관계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거나 사랑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이는 세라에게 모리스는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사랑받는지 계속해서 의심한다. 그가 알게 된 그녀의 감정은 이미 그녀가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죽은 이후가 되어서야 그가 발견한 그녀의 행적에서 그는 그녀가 끊임없이 '신'을 향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려 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과거의 그때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1939년의 일을 쓸 때면 나의 모든 증오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랑이 작동시키는 분비샘과 동일한 분비샘을 작동시키는 것 같다. 심지어 사랑이 초래하는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초래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배우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이 질투 많은 유다였는지 아니면 비겁한 베드로였는지 그들의 행동만으로 알 수 있겠는가?

-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 47~48p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더 가까울 것이다"라고. 사랑이 끝나고 절망, 후회, 슬픔이 아닌 증오와 종말을 이야기한다. 왜 그는 종말을 말하는 것일까. 세라가 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로 갔고, 그녀가 죽고 나서 신부님이 찾아와 세라는 세례를 받길 원했고, 화장이 아닌 땅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끊임없이 남은 이들을 설득하려 했을까. 그녀의 사랑을 뒤늦게 확신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남자는 상실 앞에 목놓아 울지 않는다. 이제는 중년이기에 그 상실을 받아들이는 한편 세라의 남편이었던 헨리가 무너지지 않게 그 곁을 지킨다. 이상한 관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고, 더군다나 모리스가 흔쾌히 한다는 느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상실을 함께 경험해 낸다. 그러니 이것은 애도의 기록이고 상실을 경험하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증오이자 사랑의 감정인 이 기록(글)이 다시 여러 질문을 명쾌하게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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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열차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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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삶이 또다시 무너질까 두려워서 가장 겁이 나는 부분들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사는 나라가 달라졌어도 술에 대한 사랑은 달라지지 않은 아빠, 화를 내고 우울해하는 엄마, 계속되는 아빠와 엄마의 싸움. 나는 모든 게 잘 되길 바랐다. 그래서 메이지를 품에 안고 귀에 대고 속삭이며 달랬다. 어떤 새도 나의 노래하는 새, 너만큼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 메이지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그저 안도했다. 메이지는 광산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와 같았는데,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45p

나의 글은 늘 지극히 사적인 글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고, 모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게 하며 공공연하게 우리의 감정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의 감정으로 그들을 들이기 전에 늘 나는 긴장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끝내 그 노력이 소용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아픔과 슬픔 앞에 거리를 두고 싶고 초연해지고 싶은 마음인 거다. 결국은 나의 몸과 온 신경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될 것을 안다.

표지 속 아이의 뒷모습이 고아 열차에 몸이 실린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도 이 생각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불확실하지만 어쩌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건너온 비비언 데일리의 삶과 열일곱 살 소녀 몰리 에이어의 아무도 믿지 않기로 하였던 삶이 교차되며 그려진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854년부터 1929년까지 이른바 '고아 열차'라고 불리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태운 기차가 동부 도시에서 중서부의 농촌까지 운행되었다. 아이들은 어딘지 모를 역에 열차가 멈춰 서면 나란히 서서 어떤 어른들이 자신을 데려갈지 모를 운명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가족의 품으로 들어갈지, 그저 노동이 필요한 가정에 들어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큰 저택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비비언은 그 고아 열차에 몸을 실었던 한 소녀였고,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남겨주셨던 작은 목걸이에 의지하기며 차디찬 복도 위 매트리스에서 겨우 잠을 청하기도 하고, 차라리 추운 거리를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로 잔인한 삶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그녀의 삶을 지켜주려 한 사람들이 있었고, 칼날과도 같은 환희(71p)를 느꼈던 찰나의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으로 품어왔기에 지쳐 쓰러지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시간은 줄어들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아. 어떤 순간은 머릿속에 머물고 다른 순간들은 사라져버리지. 태어나서 스물세 살 때까지의 세월이 나라는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 거의 칠십 년을 살고 있다니 참 말도 안 되지. 그 칠십 년은 네가 한 질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시간인데 말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256p

외부로부터 자신을 굳게 걸어 잠그려던 소녀와 오래된 짐을 정리하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테이프를 다 감을 정도로 오래 지속되어 올수록 몰리는 알지 못할 안도감을 느낀다.

더치가 피아노로 내게 말을 걸고 있고, 나는 꿈이라도 꾸는 듯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데, 나는 과거와 단절된 채 외로움이 사무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낯선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심정을 아는, 나와 똑같은 아웃사이더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331p

비비언과 몰리의 주위에는 어른이 있었고, 그들의 존재 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계속 들여다보려고, 그리고 그것에서 시작된 노력들은 의지로 변환되어 갔다. 이방인의 삶이었고,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하던 삶이었던 그들의 삶이 만나 서로를 다정하게 연결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정함이 따뜻하고 단단해서 고아 열차라는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하던 것과 그 그늘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삶을 만나는 것이 가슴 아플지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의지'라는 단단함을 쥐어 잡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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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출간 20주년 특별판)
황선미 지음, 윤예지 그림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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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은 날개를 벌려서 다 자란 초록머리의 몸을 꼭 안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초록머리의 부드러운 깃털과 냄새를 느끼며 몸을 어루만졌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잎싹은 모든 것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야만 했다. 간직할 거라고는 기억밖에 없으니까.

-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157p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공간에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지 못하게 여겨지는 곳에서 지내는 암탉은 스스로 잎사귀가 지닌 숭고한 아름다움과 잎이 떨어지고 나서도 다시 시작되는 삶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싹'이라는 이름을 말이다. 누군가에게 불릴 희망이 있을까 싶었지만 잎싹은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를 곳에서 구해준 청둥오리 '나그네'에게 자신을 '잎싹'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그렇게나 염원하던 마당에서 살던 동물들에게 정작 그들 고유의 이름은 없었다. 그저 우두머리, 수탉, 암탉, 문지기, 나그네.. 그저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위치를 간단히 말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잎싹은 자신의 의지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두렵고 앞을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가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 생각했던 마당과 그곳의 동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잎싹은 그럼에도 내내 자신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알을 품고, 자신의 아가를 키워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마치 우연처럼 발견한 알이 운명처럼 그를 구해 준 청둥오리의 짝이 품을 수 없었던 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지만 태어난 아기 오리를 사랑으로 품는다.

그리고 다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청둥오리는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외로움으로 잎싹은 사랑, 사랑, 오로지 사랑으로 날지 못하는 날개와 약한 몸으로 최대한 큰 위협을 가하며 청둥오리를 지켜내고 안아주고 보내준다. 자신이 병아리를 품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아주 중요한 것에서 밀려났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48p)라고

잎싹이 처음 밖을 바라보며 품었던 마음들이 굳은 의지가 되어 잎싹이 세상에 자의든 타의든지 나오게 된 이후까지 되짚어본다. 비록 다시 자신의 한 몸 누일 곳이 있는 것도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지만 다시 닭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족제비의 눈을 피하고 춥고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게 될지라도 말이다. 그의 강한 의지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마지막 장까지 덮는다. 무용해 보일지 모르는 것에의 끝없는 염원이 의지가 되고 힘없이 스러질지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냈음을 안다. 슬프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그 의지와 그 애씀을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대단한 어떤 것으로 남길 수 없을지라도 누군가의 존재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에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존재를 그려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어떤 기억으로 어딘가에 새길 수 있을까를 그의 날 수 없지만 가장 강한 날갯짓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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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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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씨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폭풍(wuthering)'이라는 말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이런 높은 곳이 감당해야 하는 대기의 격동을 가리키는 이 고장의 표현이다. 이렇게 높으니 사시사철 상쾌하고 통풍은 좋겠다. 절벽 위로 불어오는 북풍의 위력은 본채 가까이에 있는 전나무 두어 그루가 미처 못 자라고 심히 기울어져 있는 것과 앙상한 관목 한 무더기가 마치 태양에게 구걸하는 거지처럼 모두 팔을 한쪽으로 뻗은 것으로도 능히 짐작된다.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1p

그렇게나 망설이고 망설이던 고전이었다. 내가 읽어낼 수 있을지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고, 함께 읽는 이가 있어서 과감하게 읽어보기로 결정하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하인인 넬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넬리 부인에게서 전해 들으며 현재의 모습은 록 우드가 직접 만나는 그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시간 순으로 보자면 폭풍의 언덕에서 살았던 언쇼 가족의 모습이 제일 먼저 비친다. 언쇼씨가 일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나있다가 돌아오면서 히스클리프를 데려오면서 모든 이야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어쩌면 '히스클리프'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그 가정에서 겨우 이어지는 평범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와르르 무너진다. 언쇼씨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오게 된 경위나 그의 과거, 그를 특히 예뻐하게 된 이유들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과거의 모습 역시 하인 넬리의 시선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가정에 굴러온 돈으로 지내 온 히스클리프는 무서우리만치 동요하는 표정이나 슬퍼하는 감정을 숨기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 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내내 이 시선이 넬리의 시선인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 역시 어딘가에는 분풀이를 하지 않았을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애정이 끊어낼 수 없는 것으로 되기까지 그들의 감정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지금 같아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0p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이제...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3p

그들의 사랑이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캐서린도 히스클리프도 알았고, 어쩌면 캐서린은 너무나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끊어진 느낌이었고, 그를 떠나게 하였고 다시 복수만이 자신 안에 가득 채워서 돌아왔다.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비뚤어진 성격의 인물들 사이에서 유독 넬리만이 현명한 자세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곧 그 시선에 갇혀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였다. 사실 넬리가 보는 것이 모든 것의 진실이라고 느끼며 우리가 그들의 삐뚤어진 욕망과 복수심과 애정들을 바라보고 똑같이 마음에 폭풍이 이는 것을 느끼는 것을 쉽게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희한하게도 우리가 책장을 덮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도리어 다시 책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분명히 악인의 모습인 히스클리프가 이사벨라 린튼이 사랑에 빠지게 만들 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캐서린의 행동을, 왜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인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내는 장소이다. 폭풍의 언덕('워더링 하이츠')와 드레스 크로스 저택, 이 상반된 곳의 사람들은 분위기만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드레스 크로스 저택에 살면서 뭔가에 끌린 듯 폭풍의 언덕으로 가고야 마는 캐서린 린튼의 모습은 억눌러져 있을 욕망을 결국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휘몰아치는 듯한 감정으로 이 책에 그대로 몰입되게 하는 글에, 적잖게 놀라며 마지막까지 읽은 후 마음을 놓고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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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지음 / 봄날의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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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는 평화로운 세상에는 늘 책이 있다. 사자와 양이 한가로이 뛰노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사랑하는 이와 느슨하게 누워 각자 보고 싶은 책을 보다가 누가 먼저 말을 꺼내면,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간헐적으로 주고받는 이미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빛과 고요가 책과 사람 곁에서 부드럽게 머무는 이미지.

- 김복희 <노래하는 복희> 147p


완도, 작은 섬에서 태어나 어쩌면 촌스럽다고 말할지 모르는 이름을 지닌 시인의 글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통통 튀고 개성이 강한 글을 끝까지 잘 읽어나가지 않으려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이 든 이들의 글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클 거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읽어 나가다가 80년대라는 것에 놀라 뒤늦게 시인의 이름은 포털사이트에 새겨 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알던 동요들이 나오고, 그녀의 글에 나는 어느새 스며들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 글마다 동요가 나오고, 동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하나의 실타래처럼 가늘게 뽑아져 나오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듯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노래로만 흥얼거리고 정작 동요의 제목을 물을 때는 대답 못하던 동요들을 만나는 재미 역시 계속되었다.)

글 속의 그녀는, 분명 솔직하고 사려 깊고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자신을 누군가가 부른다면 '복희씨'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에 이미 내 마음을 온전해 내려놓기 시작했다. 동요를 노래 부르는 시인.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에는 늘 책이 함께 있고, 돌아가며 목소리로 책을 이야기하는 모임에서도 그 목소리들이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함께하면서 홀로 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시를 쓰자고 말하지 않지만 시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건네고 있다.

마음과 능력이 부족해 쓰지 못한 노래가 많고, 지운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노래 뒤의 노래가 되어 저를 따라다니겠지요. 써버린 노래만큼이나 쓰지 못한 노래도 제 노래입니다. 누락과 손실이 제 재산입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의 재산입니다. 제가 많은 돈이 되어서,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 '나가며 노래 뒤의 노래들' 중에서

여전히 쓰지 못한 노래들에 미안함을 안고 살겠다고 말하지만 그 노래들이 언젠가 뒤이어 오다가 손잡고 함께 가게 될지도 모르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어떤 노래들을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그녀의 글에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서점을 매일 드나들던 여중생을 다시 만났고, 시가 다정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음을 인정하고 시집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인 나도 다시 만났다.

그것으로도 나에게는 의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시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도 건네고 싶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도 망설임없이 손에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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