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드디어 읽었네. 그리고, 읽길 잘했다. 참 잘했다. 어디에서도 듣지 못할 지혜의 조언들을 기꺼이 받아들임에 기뻤던 시간들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표지에서도 보이듯이 이미 '철학'에 대한 내용을 담은 것이니 어찌보면 나에겐 먼 생각들이고 감히 범접할 수 없을거란 생각까지 들게도 했다. 헌데 생각보다 술술 읽혀졌고 조금 더 생각의 시선이 확장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실제로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철학 강의를 묶어낸 책이었고, 전제의 내용은 우리 나라는 '철학 수입국'으로 살아왔기에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함이었고 사회적인 모든 이슈들이 그로 인한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개인이 사유의 깊이가 달라지면 따르는 이들이 생기고 그것이 확대되면 공동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철학하는, 깊이 사유하는 것이 비단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명원이 무엇을 하는 곳? 최진석 교수님은 어떤 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궁금해서 찾아보고, 책들을 찾아보니 나도 모르게 주문해 두었던 최진석 교수님의 책이 있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230802/1


올해 2월자 기사인데, 건명원을 바탕으로 한 책이 이 책이기에 기사의 내용도 이 책의 내용과 아주 다르진 않아서, 조금 정리가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읽어가는 시기에 나온 기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158955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생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헌데, 너무 좋다.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들을 키워가겠다는 것.
어른들도 꿈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

어떤 시도도 실패로만 마무리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성공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것이 실패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동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된 동력은 실패의 암울한 풍경 속에서도 꿈꾸는 자들을 더 심층적이고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꿈을 꾸지 않는 일입니다. 시도하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를 넘어서려는 그 어떤 시도라도 감행해야만 합니다.

실패가 두려운 것이라는 편견을 너무 일찍부터 갖는 아이들이 그저 안타까울뿐이다. 나조차도 실패하지 않으려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쉬이 도전하지 못해왔었다. 이미 있는 것들을 따라하면 그 편안함과 쉬움을 포기하기가 싫은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것에서 또 느껴지는 권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헌데 그 과정을 동력이라고 표현한다. 무제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라고. 뒤늦게 꿈을 쫓는 나조차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다. 나도 여러 생각과 고민을 한참 하고나서야 불확실해 보이더라도 이루려 노력하는 것 뿐인데. 현재에 안주하지 마시길. (너무 막막한 조언같이 들리기도 하네)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일상의 잡다함이나 자질구레함 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결정하고 지배할 더 높고 큰 단계에서의 결정을 감행할 수 있는 높이가 바로 철학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 : Philosophy
필로소피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의 학문'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철학 [philosophy, 哲學] (두산백과)

왜 우리나라에선 유독, 철학원, 도. 이런 허무맹랑한 느낌으로 치부되고 마는 것인지. 그 생각들이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돈이 되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것인지. (난 사실 철학학과를 가고 싶어했었다는 것. 나도 허망한 시선으로 감히 도전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자라 지금 어른이 되어 철학은 어렵다고 발을 담글 생각도 하지 않고 애써 고개를 저어버린다. 얼마나 흥미로운 분야인데. 물론 너무 방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이어진 걸 보고 있노라면 흥미로운 순간이 꼭 생기는데 말이다. 편견을 거두어 주시길. 지혜를 구하고자하는 그런 의지로 봐주면 안될지.

지성의 높이에 따라 그 사회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수학은 지성을 고도로 발휘해 수나 도형이나 대수를 가지고 세계와 관계하지만, 철학은 '수'나 '도형'대신 '관념'을 사용해서 그 일을 합니다. 우리가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을 갖는 것이 현실적인 지배력까지 보장해주는 이유는 세계를 그만큼 더 넓고 높은 데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의 높이를 철학의 단계까지 끌어오린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세계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능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보는 시선을 더 넓고 더 높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한정되어서 좁은 식견으로 사회를 보고 내게 주어진 일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이제 그만 두고 싶어진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 앉아 거기에 머물려 하지 마라.
(공성이불거)

역사를 끌고 밀고 나아가야 하는 영웅은 공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는 시대를 건너가려는 꿈을 꾸기보다는 각자의 틀로만 무장하여 싸우느라 앞을 보는 눈과 진정한 용기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런 형국입니다.

자기 삶을 영위할 때도 자기 삶 속에 온전히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삶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이것이 자기로부터의 이탈입니다.

익숙한 자기는 집단적인 관습이나 보편적인 이념을 공유하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자기입니다. 종속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집단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은 단독자로 고립을 자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고립을 허용하지 않으면 그 안에 몰입되어 세계의 진실을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고립을 자초한 후, 고독에 빠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짧은 글로는 모든 걸 정리하려니 오히려 길어지니. 아직도 부족한 나의 내공이 느껴진다. 플래그가 따닥따닥 붙어있고, 줄 그은 모든 곳이 또 새롭게 와 닿으니. 이 책은 다시 재독을 해야하는 책이 분명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또 어떤 생각으로 마무리 지어질지.

결국, 이 책은 내가 궁리하고 도전하고 몰입하는 모든 것의 이유를 설명하여준다. 내가 이리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해주고 싶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찾아두었으니 바로 이어서 읽어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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