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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평점 :
설 연휴에도 가방에 챙겨가서,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도 보게 만든 채사장의 2번째 책이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지식들을 쏟아내기에 그리 대단하게들 여기는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읽으면서 그 의문이 사라져갔다. 그가 지내온 모든 삶을 그냥 열거하기 보다, 그에게 가장 의문에 휩싸이게 된 시기들과 그 시기에서 몰입하며 연구하고 고민했던 주제들. 그리고 그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끝맺으면서 완벽한 결론을 내리지 않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게도 했다. 그가 가졌던 생각들, 그 생각을 하게 만든 이야기들, 그 중심의 인물과의 가상의 대화들. 멀게만 느껴지던 종교이야기와 철학들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삶과 죽음 사이의 '나'를 마지막으로 두었다. 그리고 어찌보면 딱딱하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술술 읽혀져서 나도 놀래기도 했던 그의 문체가 많은 이들에게 통했나보다.
그는 이 11계단을, 불편함의 계단이라며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불편함을 겪어내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문학 - 기독교 - 불교 - 철학 - 과학 - 이상 - 현실 - 삶 - 죽음 - 나 - 초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식들, 일상에서 표류하는 자신을 멈춰 세우고 깨달음으로 밀어 올리는 불편한 지식들을 만나야 한다. 그 지식들은 지혜가 되어 우리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문학 책만 읽어도 마음이 동하게 되고, 또 다른 세계들의 모습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책은 의미가 있으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헛헛한 느낌을 피할 순 없을거라 생각한다.
책 읽기의 근본을 내세우는 '잉여의 책읽기'를 그저 마음껏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헌데, 어디 그럴수만 있으랴. 책을 읽고, 내가 알던 것과 다른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하게되면, 다 덧없이 느껴지기도 할테지. 세계에 무모하게 잘못되었음을 외칠 수가 없다해도 책으로 세운 곧은 정신만은 이 세상 살아가는데 조금은 한 자락 희망으로, 위로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불편함조차도 모두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라면 그 삶은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즐기고 여행하고 놀라워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니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한계가 느껴져서, 참 보잘것없이 부끄럽게 여겨지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참 좁았구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말이다.
내가 30중반에 들어서서, 이제서야 시작하는 불편한 독서라해도 다행이다 싶기도했다. 더 늦었다면? 평생 알지 못했다면?
이 책에서 보이는 종교 이야기역시, 그리스도의 구약성서를 시작으로 싯다르타의 불교 이야기까지. 내가 지금껏 가져온 종교적인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저 같은 이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니체의 이야기와 체 게바라의 이야기. 내가 알던 지식이 또 덧대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가장, 내 기억속에 강하게 박히게 된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야기.
운 좋게도 멈춰 설 기회를 얻었으니, 뒤돌아 가서 놓고 온 것들을 챙기세요.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세요. 또 다시 허둥지둥 달려오면 안 돼요. 길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을 돌보면서 오세요. 그렇게 천천히 인생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이 당신에게 주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예요.
그 이후의 이야기는 죽음, 그 이후의 나. 초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파니샤드> 를 주문하였고, 앞 부분을 읽으면서 <공산당 선언>을 주문하였다. 전혀 내가 생각도못한 주제들의 책을 처음으로 주문하였다. 생소하고 낯설고, 알고싶지도 않았던 무지에 가까운 내 의식이 이미 그 책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또 깨트려질지 모르겠지만, 무참히 깨트려보라지 하는 오기가 섞인 생각까지 드는 건 아직도 무지한 내 의식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