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전히 은유 작가님의 글이 읽고싶어서, 그리고 유유출판사를 좋아해서 선택한 책이다.
결론은, 정말 만족스러울만큼 오래오래 다시 또 읽고싶은 책으로 주저하지않고 말할 수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도 서문에서부터 솔직히 작가의 유명세를 벗어나서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 엄마, 일하는 엄마.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어느것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그녀의 생각들이 그대로 전해져서. 읽으면서, 이 여자도 그렇구나 ! 이 작가님도 결국 그런 생각을 하는 '보통' 엄마이구나.

<쓰기의 말들>에서도 프롤로그부터 작가는 나를 끌어당겼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에리히 케스트너

100개가 넘는 인용구들과 그 인용구들을 둘러싼 작가의 생각들이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소박하지도 않게 그대로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적어내려갔다.
나는 글을 어딘가에 (여기서는 노트) 적고 고치고 (퇴고) 하지 않고, 바로 블로그나 워드에 적고 올린다. 지금도 역시 그러한데, 그래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조사와 부사를 신경쓰고 있다니. 문법책, 글쓰기 책을 보고 나서도 움직이지 않을 내 사고의 흐름이 이 작은 책 한권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당황했다. 착한 딸,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의 도덕에 결박당해 시들어 간 청춘, 스스로 부과한 도덕적 책무를 이고 지고 사느라 삶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 낙타 같은 날들이 스쳤다. 정확한 뜻과 맥락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구절마다 니체는 도발했다. 갈피마다 행간마다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 상징적인 잠언과 비유와 모순을 내포한 겹의 언어가 춤을 추고 있었다. 가치 전복의 말, 시대의 도덕이 아닌 네 본성에 충실하라는 생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해방의 말,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포리즘은, 그대로 시였다.

은유 작가님 덕분에, 니체의 책들을 두려움없이 무조건 읽어내야겠다며 다짐하게 된 부분이다.
나의 지금 삶을, 아니 많은 여성들의 삶을 어쩜 이리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멋지지만 쓰라린 느낌까지 동시에 주고, 고독까지 느껴진다. (나는 그렇다는 것인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글쓰기의 작업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 생활에 발을 담궜다가 뺐다가 담궜다가 빼는 연속의 작업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기심과 욕구에 이끌려서 이 글쓰기 책의 문구에 이끌려서 들어갔다가 고통스럽다는 부분에서는 또 발을 빼고마는. 참 솔직하다 하겠지만, 딱 그렇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져 자료를 추려 놓는다. 또 버스에서 시집을 보다가 관련한 단어나 괜찮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틈틈이 생각의 단초를 풀어놓는다. 문장 단위로 사고하고 단락으로 정리하며 매만진다. 마치 나무를 잘라놓고 대패질을 해 놓듯이 말이다. 그 단락들을 요리조리 배열해 놓고 잠든다. 꿈에서 사유를 불어넣는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고친다. 어느새 글 한 편 완성된다. 큰마음 먹기가 아니라 짬짬이 해 나가기의 결과다.

마감이 있기에 글을 마칠 수 밖에 없고, 끝없이 고치고 싶어서 마감이 아니었다면 끝나지 않을 글들이라고 말한다. 그 글이 되기까지, 그냥 하루의 시간들 속에서 조금씩 적고 매만지고 다시 고치고. 큰마음 먹는 것이 아닌 짬짬이 해 나가는 것이라는 이 말이 나에게조차 용기를 준다. 나도 그럴 수 있을것 같다는 마음. 큰 다이어리를 들고 다닐 필요없이, 그냥 작은 수첩과 펜만 있으면 되는 것.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그게 어느정도일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 내 글이 한번도 잘써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일까.
내가 그만큼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서겠다.

그 망설임으로 꽉찬 시간들.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거기서 막 빠져나온 나에게 그의 동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내기.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무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 기르기. 그렇네. 사는 모습도 그렇다싶다.
나 역시, 무모해보이고 의미없어보이는 일상들 속에서 적어도 예전보다는 조금 단단해지지 않았나싶으니깐. 무의미의 반복이 곧 의미를 이끌어내게 되는 필수조건으로 존재하는 것이겠지.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계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닐까?
-리베카 솔닛

플래그를 붙이면 끝이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귀접기를 해 봐도 너무 많이해서 두툼해질 것 같은 책이었다. 결국 몇 부분은 표시를 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다시 보면 또 기억에 새겨놔야겠다며 결국 표시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라는 부제에 너무나 충실하게 따라가려 하는 나다. 쓰고 싶어졌다. 공감 받지 않는다해도, 내 안의 속내를 한번 글로 써내려가고 싶어졌다. 

옆에 두고 읽을, 초록색 표지의 작은 책이 나에게 두고두고 위안의 손길을 건네 줄 것 같다.
은유 작가의 글을 빌려서 격려해줄 것 같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