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독법 - 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
김민웅 지음 / 이봄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총 10편의 옛날 동화들을 풀어내며, 현실 삶을 살아갈 지혜를 조금이라도 얻어갈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껏 알고 지내온 예쁘게 포장된 동화의 모습이 아닌, 원작을 그대로 읽어내면서 그 속에 숨겨낸 속 뜻 들을 속시원하게 파헤지니. 어찌 동화가 정말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이야기, 미운오리새끼 이야기가 꽤나 깊게, 제 마음에 파고들더라구요.

지금 제 생활들에 가장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사실 매번 생각하고 연민을 가져온 동화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였어요. 어릴 때도 작은 키에 조금은 자신감도 없었던터라 속으로 매번 생각하곤 했었어요. "나도 미운오리새끼처럼 언젠가 백조가 되어서 날아갈테지." 하고 말이예요. 지금 내 모습이 여전히 초라하게 느껴졌단 말이지요. 그런데 백조가 되고서도 고개를 숙인 아기 오리라 어찌나 안쓰럽고 애잔하던지 몰라요. 어쩌면 저 역시 그런거 아닐까? 지금으로도 충분히 날개가 펼쳐졌는데 그걸 믿지 못하고 고개 숙이는 것은 아닌걸까? 여전히 내가 작은 존재같이 느껴진다고. 

그간 너무 오래 집안에만 있었다고 여긴 미운 오리 새끼는 바깥의 맑은 공기와 햇살이 그리워졌고 물위를 떠다니는 게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를 떠올렸습니다. 점차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인지를 의식하기 시작한 겁니다. 주체적인 성찰의 능력이 아주 조금은 성장하면서 강풍을 막아줄 집이 있어 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오랫동안 머물 곳은 아님을 안 거지요. 물론 또다시 위험이 닥칠 수도 있겠지만 집밖으로 나가는 편이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고양이와 암탉은 그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미운 오리 새끼는 결심합니다. "나는 저 넓은 들판으로 가고 말거야." -36p

부디 겉모습만 백조처럼 되려 하지 말고 어떤 내면을 지닌 백조가 되려는지, 그런 백조가 되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함께, 행복해지는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진정한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이런 질문을 귀찮을 정도로 자꾸 던져서 우리에게 자기 영혼을 맑은 물속에 비춰 진정한 실체를 보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그로써 절망에 빠진 이들이 그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희망의 가능성에 눈뜨도록 말입니다. 모두가 "저기를 어떻게 가?" 하면서 주저했던 울타리 너머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강하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미운 오리 새끼 백조의 모험을 우리 자신에게 기대해보면 어떨까요? -55p~56p​ 


제일 처음 나온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책을 덮을때까지도 계속 미운오리새끼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로 깊게 제 생각에 들어온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더 큰, 공동체에서의 모습을 비꼬는데 반해 이건 개인의 마음을 이야기하구요.


그리고 두 번째가 신데렐라 이야기라니요 !!

이젠 동화가 동화로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예쁘고, 착한 이들이 후에 노력과 고됨을 지나 꿀같은 열매를 받는다는 예쁜 이야기가 아닌거지요.


애초에 무도회에 보내줄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가로막는 겁니다. 그렇게 이러면 해준다, 저러면 해준다, 하는 식의 헛된 약속을 민중들은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혹시나 하고 기대하면서 이를 악물고 참아가며 권력자의 요구에 기력을 다해 응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속임수와 냉대인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이들과는 함께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는 천대받는 존재가 확인될 뿐인 거지요. 이 대목은 당대에 힘없는 이들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70p


그러니까 신데렐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리구두는 단지 신분 상승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그토록 힘들게 살면서 부당하게 모욕당하며 짓밟히며 살아온 삶을 보상해주는 마음과 힘의 상징입니다. 맑은 유리구두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발에는 지난 세월의 삶이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무도회에 오르게 하는 세상이 바로 신데렐라 이야기가 꿈꾸는 희망입니다. -86p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희망이 그냥 희망이 아니지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구두가, 그냥 예쁜 모습만을 말하진 않아요. 그 고됨을 그대로 껴안은 발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그동안 살아온 힘든 순간들이 그대로 느껴지죠. 그냥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가 아닌거예요. 그 힘듦의 시간들을 지나 보상을 받게 되디란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 생각해요. 여전히 힘든 시간들 속에 있다해도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일테니. 말도 안되는 핍박들 속에서도 견뎌내라는 거겠죠.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고. 정말 허무맹랑하게 여겨진다해도, 믿고싶은 이야기.


신데렐라 이야기 다음으로.

솔로몬의 지혜 / 인어공주 / 토끼전 /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 양치기 소년과 늑대,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 / 헨젤과 그레텔 / 바보 이반 / 바보들의 나라 켈름 / 심청전

우리가 흔히 알고, 너무 익숙하게 생각되는 동화, 우화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져요.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속 뜻도 생각해보게 되구요. 다시 저를 둘러싼 이야기들, 현실의 모습을 둘러보게 됩니다.



아침이 서서히 깨어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꽃들이 노래하는 계절의 아름다움도 자칫 놓치고, 속도의 원리에만 몸을 맡기며 주마간산의 경험에 만족하고 마는 현실이 되었어요. 보다 정밀해진 액정 화면에 고정시킨 시선으로 세상의 정보를 모두 알았다고 착각하는 기술사회의 우화가 우리의 머리를 녹슬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마음이 사막으로 변모하고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을 곧바로 달리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주류가 되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입니다.

다시 나룻배를 타고 강으로 나서니, 작열하는 태양이 은빛 물살을 출렁이게 합니다. 붉은 노을로 물든 산등성이는 어느 사이에 시가 되고 술 익는 마을의 세월이 되네요. 사는 일로 이리 채이고 저리 밀리며 낡아진 마음이 생기를 얻어 기분 좋은 기지개를 폅니다. 이 책이 그런 기운을 나누는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존재 자체가 진정한 명품이 되는 길이 그렇게 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 / 시작하며

그냥 흔한 동화를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책이 전혀 아니었어요. 정말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비판하면서도 토닥토닥거림을 느낀, 강약이 적절히 주어진 듯했구요. '여기에 이런 뜻이 숨어있었어? 이런 이야기였어?' 이러면서 순수하게 놀라면서 즐거이 읽어나가기도 했구요. 그리고 새롭게 나온 동화독법이 궁금해집니다. 이야기가 추가되었다고 하니 ^^;


딱딱하고 어려운 문체로 쓰여진 책보다, 훨씬 더 자신의 내면 모습과 현실의 모습, 우리네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음에 누구든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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