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비꽃 세계 고전문학 71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쪽 멀리서 바람이 나지막이 흐느끼고, 기다란 풀잎은 폭풍이 달려오는 느낌에 고개를 숙였어. 쌩쌩 소리가 매섭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풀밭에 가득한 풀이 한 방향으로 굽이치는 거야.

L. 프랭크 바움 / 오즈의 마법사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은, 순식간에 작은 집을 덥치고맙니다.

미처 아래 지하실로 피신하지 못한 도로시는 작은 강아지 토토와 함께 바람에 휩쓸려 어디론가로 날려가버리면서 모험은 시작되죠.

 

오즈의 마법사라면, 도로시가 귀여운 (왜 저는 귀엽다고 기억하고 있을까요?) 구두를 신고, 허수아비, 사자, 깡통 로봇( 사실은 나무꾼이죠)과 모험을 떠나고 어디서든 포기하지 않고 길을 나가는 것을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회오리 바람에 집 한 채가 둥실 떠올라서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장면까지도요. 많은 기억들은 조각 조각나서 연결이 되지도 않고, 조금의 잘못된 기억도 있겠지만 여전히 좋아했던 동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하게, 어른의 모습들. 시선들을 모른 체 할 수가 없게 되었네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할만큼 희망도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이 왜 어린 시절 속에 존재하는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지워져 있는 걸까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평안함을 느낀 도로시와 토토는, 잠까지 들어버리고 마는 모습도 어딘가 모르게 애처롭기도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그 순간을 떠나면서 들었던 두려움보다 잠시 동안의 평안함이 어린 아이에겐 오히려 더 안도감을 안겨주었던 걸까요. 그래도 도로시는, 그 곳이 희망이 불투명하게 보인다고 해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을 헤쳐나갑니다.

 

함께하는 친구들은 또 어떤가요? 처음으로 동행하게 되는 친구인 허수아비는 자신은 두뇌가 없다고 하지만 이미 친구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적재 적소에 알맞은 해결법을 찾아내고 이끌어 냅니다. 양철 나무꾼은 또 어떤가요. 심장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다정함으로 가득찬 그에게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힘을 이용합니다. 겁쟁이 사자는 또 어떤가요. 자신은 용기가 없다고 하지만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크고 날렵한 몸으로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한낱 사람에 불과했던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이 친구들이 원하는 것들을 말할때마다 이미 그대들은 그것들이 필요없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현명한 대처로 그들이 더 큰 힘을, 희망을 갖게 했기에 마음의 힘을 얻게 했다고 해야할까요. 도로시가 마지막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친구들은 언제나 함께합니다.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이들처럼 말이죠.

 

"그럼 언제 출발할까?"

허수아비가 묻자,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어.

"너도 가게?"

"당연하지. 도로시가 아니면 나는 두뇌를 절대로 못 구했어. 옥수수밭 장대에서 내려주고 에메랄드 도시까지 데려온 게 바로 도로시라고. 나한테 행운이 쏠린 건 모두 도로시 덕분이야. 도로시가 캔자스로 떠나기 전까진 그 곁을 절대로 안 떠나."

L. 프랭크 바움 / 오즈의 마법사

그들은 유형의 무언가를 위해 길을 떠났지만 이미 더 본질적인 무형의 무언가를 모두 가슴에 품게 되었고, 도로시는 무사히 캔자스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도로시는 엠 숙모를 만나며, 기쁘다고 말하지만 표정은 우울함을 이야기하였죠.

자신이 떠났던 그 길에서 만난, 다시 만날 수 없을 친구들을 평생 그리워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작품 해설에서, 이 당시의 세계 시대를 여기에 녹여냈다고 말하더군요.

각 등장한 이들이 의미하는 모습이 그 시대의 노동자라든가 대통령 후보를 풍자하여 그려냈다거나,

남쪽, 북쪽..등 지역이 나온 것도 그 당시의 지역을 이야기했노라고. 마법사의 의미 역시도.

 

그래요.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저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은 본질을 찾아 떠나고 무엇에도 포기하지 않는 힘과 희망을 그릴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너무 잘 쓰여진 동화라고 생각했고 잘 읽어내려갔습니다만, 작품 해설에서 작가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이런 시대를 그렸다는 이야기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라는 제목 역시 사실은 '놀라운 마법사 오즈' 혹은 '오즈라는 놀라운 마법사'라는 것이 맞다고 하며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책역시 이 '유감스러운 이야기'에 그대로 따른 것은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옛 기억을 소환하며, 정말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저 역시 내가 잊고 지내고 있던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마지막까지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작품 해설에서 저의 마음이 와르르 깨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네이버에 찾아보면 나올 수 있는 '또 하나의 해석'에 불과한 이야기를 3페이지로 굳이 싫어놓은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작품 해설을 보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오즈의 마법사>는,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동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