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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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부 콘월의 외딴섬에 있는 오래된 저택 시글라스에 홀로 살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비어트리스 다커는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아 온가족을 초대합니다. 만조가 되면 8시간 동안 외부와 고립되는 시글라스에 모인 다커 가족은 모두 8명. 거의 절연하다시피 지내던 이들이 10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막대한 재산의 상속 계획을 담은 비어트리스의 유언장 공개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어트리스는 누구도 예상 못한 충격적인 유언을 발표했고, 가족 대부분은 격분한 채 8시간 후 바닷길이 열리는 대로 저택을 떠나려 합니다. 그런데 그 8시간 동안 시글라스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연속살인의 무대로 탈바꿈합니다.



2018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원래 내 것이었던’ 이후 두 번째로 만난 앨리스 피니의 작품입니다. 그때 쓴 서평을 찾아보니 ‘막판 반전과 정교한 설계라는 매력’과 ‘다소 지루한 심리묘사 및 모호한 미스터리에 대한 아쉬움’을 딱 절반 정도씩 느꼈다고 적혀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데이지 다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고, 아무래도 앨리스 피니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작가임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야기의 화자는 비어트리스의 막내 손녀이자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이미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긴 29살의 데이지 다커입니다. 데이지에겐 할머니 비어트리스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애초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악연이자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악몽의 원천입니다. 20여 년 전 이혼한 부모 프랭크와 낸시는 두 언니 로즈와 릴리에게만 애정을 쏟았고, 언제라도 심장이 멈출 수 있는 자신에겐 최소한의 도리만 했을 뿐입니다. 어려서부터 악의로 가득 찬 공격을 퍼부었던 릴리와 맏언니임에도 그런 상황들을 방치했던 로즈 역시 데이지에게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상대들이었습니다. 다만 릴리의 15살 딸인 조카 트릭시만큼은 유일하게 데이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줘서 시글라스에서의 끔찍한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줍니다.

이날 시글라스에 초대된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다커 가족이 아닌 코너 케네디는 데이지의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절대 잊히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긴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그와 재회했지만 데이지의 심경은 복잡하고 불편할 따름입니다. 


만조로 인해 8시간 동안 외부와 고립된 공간, 때마침 배를 띄울 수 없을 정도로 시글라스를 덮친 폭풍우, 유무선 통신이 모두 단절된 상황, 그리고 비어트리스의 충격적인 유언 발표 후 서로에게 날선 태도와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가족들. 그야말로 영국 스타일의 비극적인 미스터리를 위한 무대와 인물들이 제대로 세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세팅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살인은 등장인물들이 완전히 또는 거의 남남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족들 간의 연속살인이란 설정이 무척 낯설어보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깊고 지독한 악의를 품었기에 부모 혹은 자식 혹은 자매를 연이어 살해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시글라스에서의 연속살인과 병행하여 다커 가족의 과거사가 전개되며 그 의문을 아주 조금씩 풀어줍니다.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진범의 정체 및 살해동기와 함께 다커 가족이 오랜 시간 감춰온 비밀은 물론 데이지가 이야기의 화자가 된 이유가 공개되며 뜻밖의 반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


‘데이지 다커’의 반전은 독자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받을 여지가 많습니다. 누군가는 이 작품만의 특별한 매력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게 뭐야?”라고 황당해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진범의 정체는 놀라웠지만 범행동기나 방법은 리얼리티가 모호했고, 데이지가 화자가 된 이유도 설득력이 부족했으며, 장르물의 규칙이 편의적으로 사용된 대목 역시 논란거리로 보였습니다. 전작인 ‘원래 내 것이었던’의 반전도 이런 반응을 얻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데이지 다커’는 그보다 찬반 또는 호오의 간극이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외딴섬에 자리 한 저택 시글라스의 풍광과 한없이 일그러지고 이기적인 인물들, 그리고 고전미와 함께 수려하지만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 찬 문장들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스타일의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연속살인 미스터리와는 전혀 다른 결의 맛과 미덕을 품고 있습니다. 혹평까진 아니어도 대체로 비판적인 톤의 서평을 쓰고 말았는데, 취향이 맞는 독자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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