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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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인 19세 소년 류타는 어느 날 자기 눈앞에서 손목을 그은 소녀 유리코와의 인연 덕분에 고교 야간부에 입학합니다. 류타는 또래인 다이고와 가까워지고, 그가 숙식을 해결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활용품점 겸 심부름센터 달나라에 드나듭니다. 다이고를 고용한 사장 할머니는 고집쟁이에 안하무인이지만 류타는 달나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이고와 친해지고 조금씩 은둔형 외톨이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또한 달나라에 의뢰 들어온 괴팍한 사건들을 해결하기도 하는데, 그러던 중 11년 전에 벌어진 참혹한 가족 몰살사건과 연결되고 맙니다.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 용의자로 몰렸다가 자살하고 만 한 남자의 어머니, 그리고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빠져있는 경찰을 지켜보며 류타는 이제는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은 오래 전 사건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연작단편집 소녀들은 밤을 걷는다로 처음 만나 홀딱 빠진 뒤로 어리석은 자의 독’, ‘전망탑의 라푼젤’, 그리고 밤의 소리를 듣다까지 한국에 출간된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은 모두 읽었습니다.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둡고 불길하면서도 애틋함이 녹아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서사 때문에 매번 긴 여운을 느끼며 책장을 덮곤 했습니다. 하지만 밤의 소리를 듣다는 기대했던 우사미 마코토 특유의 맛을 제대로만끽하지 못한 탓에 처음으로 평점에서 별 1개를 빼게 됐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을 지날 땐 우사미 마코토 작품에 별 3개를 줄 수밖에 없는 건가?”라는 불안함까지 들었던 게 사실인데, 중반 이후에야 기대했던 분위기와 서사가 펼쳐지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시작은 역시 우사미 마코토!”라고 할 만큼 매력적입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똑똑한데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죽음에 너무 친숙해져 버린 은둔형 외톨이 류타가 습관성 리스트 커터’, 즉 수시로 손목을 긋는 여학생 유리코와 대면하는 장면은 우사미 마코토 특유의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있어서 이후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하지만 유리코에 이끌려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교 야간부에 들어간 뒤로 류타의 행보는 그저 그런 일상 미스터리속 캐릭터가 되고 맙니다. 또한 자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다이고와 친해지고 달나라에서 소소한 미스터리들을 해결하면서 그동안 어리석게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는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물의 주인공으로도 보입니다. 사실 이 지점을 읽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저 그런 일상 미스터리들이 중반 이후에 펼쳐질 류타의 진짜 미션, 11년 전 가족 몰살사건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재료들로 밝혀지긴 하지만, 우사미 마코토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그녀의 진면목을 오해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11년 전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우사미 마코토는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운명, 악연, 악의, 회한, 죽음 등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들을 류타와 여러 조연들을 통해 진하고 농밀하게 그립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밤의 소리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여러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교묘하게 드러내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라는 출판사 소개글이 결코 과장이 아님은 바로 이 지점부터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미스터리의 클라이맥스가 다소 설명적인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 대목에서 독자의 관심은 누가 범인?”보다는 류타와 여러 조연들이 감내해야 할 가혹한 운명에 쏠려 있기 때문에 크게 거슬려 보이진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에 아쉬움도 남긴 했지만 그래도 머잖아 또다시 그녀의 새 작품 출간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이 작품이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우사미 마코토의 매력을 제대로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리석은 자의 독소녀들은 밤을 걷는다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이 10여 편에 이르지만 그녀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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