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순전히 지대넓얕 막방에 김도인이 한 말 때문에 알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지대넓얕이 끝난 후 패널들의 향후 계획을 이야기하며 김도인이 ‘와세다 1.5평 청춘기‘에 나온 사람들처럼 B급 인생도 아니고 C급 인생을 살아가는 게 자기한테 맞는 거 같다며,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하는 말에 B급도 아니고 C급인 삶은 무슨 삶인지 궁금해졌다. 

즐겨 듣던 방송이 끝나버려 그 아쉬움을 이 책으로나마 달래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지대넓얕에서 나온 컨텐츠를 찾아보며 혼자 뒤풀이를 하고 있다. 약간은 쓸쓸해하며.

 집 근처 도서관에 들려 보존실에 고이 보존되어 있는 책을 찾아내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북플에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별로 없는 걸로 보아 널리 읽힌 책 같지는 않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았고 보존실에 보관되어 있지만 괜찮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마치 김도인이라는 사람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기도 하고.

 몇 년 남지 않은 청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모티브를 좀 얻으면 좋겠다.

 노노무라 2층의 끝자락에 위치한 다다미 석장의 1.5평 방에서 마음 가는 대로 진하게 청춘을 보낸 그가 33살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참인간‘이 되어 어른으로 살아왔을지 아니면 노노무라의 연장선이었을지. 그 중간의 어딘가일지. 

와세다 탐험부 사람들처럼 정박되어 있는 내 청춘을 어딘가로 풀어주어 마음대로 표류시키고 싶다.

밑줄, 생각

32쪽
 나중에 주인아줌마에게 물어본 바, 장남은 물건을 때려 부수는 게 아니란다.
 ˝필요 없는 카세트테이프를 산처럼 쌓아놓고 화가 나면 그걸 있는 대로 뒤집어엎는 거지. 그런 걸 효과음이라고 하나? 그 애도 다 계산해가며 성질을 부리는 거라우, 의외로 효자라니까.˝

46쪽
˝쓸 수 있는 건 쓰고, 신을 수 있는 건 신습니다!˝
 바깥 세상은 거품의 절정이었다. 절약이 악덕, 낭비가 미덕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리고 수전노는 노랑이다. 일반적으로 노랑이는 자기 돈은 아까워하면서도 남이 돈 쓰는 건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과 남의 구별을 넘어 모든 것을 아까워한다. 모든 것을 아끼고자 한다. 

51쪽
‘목표 지점 확인, 정조준 살포 엄수.‘

54쪽
폐지 수집 선반에는 주택정보 책자가 점차 쌓여갔다. 그러한 현상을 또 고이 넘기지 못한 것이 바로 주인아줌마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버리다니 아깝게스리.......˝
 아줌마는 그것을 보는 족족 노노무라 문고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자유로이 읽으시오.‘라는 글 밑에 지나간 주간주택정보 책자가 쭈욱 진열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됐다. 
 다시로 씨는 겐조 씨뿐만 아니라 이 집의 존재 자체가 참을 수 없게 됐던지 그 뒤 어딘가로 잠적해버렸다.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 후로도 변기의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발견됐다. 겐조 씨는 전에 없이 맹한 얼굴을 하고 나직이 말했다.
 ˝다카노 군, 다시로 군 짓이 아니었나 보네.......˝

58쪽
˝필요 이상 벌지 말고, 필요 이상 쓰지 말자.˝ 이것이 나의 모토였다.  

73쪽
나는 11년에 걸쳐 노노무라에 살다가 그 후 다른 집을 찾을 때 프리랜서라는 이유만으로 부동산과 집주인들에게 몇 차례나 입주를 거절당했다. 그건 분노를 넘어 어이 상실 수준이었는데, 어찌 보면 그것이 회사중심사회 일본의 실상인 것이다.

: 일본의 회사중심사회에 대해서는 아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를 읽고 조금 알게 된 부분이 있다. 

74쪽
노노무라의 주인아줌마는 통이 크다고 할까, 대범하다. 제대로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인, 사법시험 만수생인 사십 대 남자, 알바족 등 누구든 양팔 벌려 대환영이다. 직업이 없어도 걱정 없다. 걱정은커녕 ˝지금 일자리가 없어 고민입니다.˝라고 하면 그거 큰일이라며 동정을 사, 격렬한 입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79쪽
노노무라는 정해진 방에 정해진 인간이 산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잊고 사는 집이었다.

86쪽
가토 선배 덕분에 한때 탐험부가 해체될 뻔한 적도 있단다. ‘진정한 탐험‘을 추구한 결과, 가토 선배는 다음과 같이 제창했다.
 ˝현재 지구상에는 더 이상 지리적 탐험을 할 장소가 없다. 진정한 탐험이 가능한 곳은 우주뿐이다. 우주에 가기 위해서는 로켓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산과 해외 원정 따위 전면 중단하고 로켓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토 선배는 강력히 주장했고 이에 반발한 다른 선배들이 대동단결하여 동아리 탈퇴를 선언한 해프닝이었다. 

116쪽
그러나 가토 선배의 하이라이트는 거기까지였다. 막상 역영단계에 들자 도무지 속도가 붙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 다른 선수들에게 추월당하더니 막판엔 5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채 맨 꼴찌로 골인했다. 가토 선배의 말로는 자기 철학대로 기본부터 철저히 다지느라 몸 만들기와 입수 자세에만 1년이 걸렸단다. ˝딱 1년만 더 했더라면 스퍼트 내는 것도 마스터했을 텐데.......˝ 그는 몹시 안타까워했다. 

125쪽
이처럼 노노무라에서는 ‘TV비확산조약‘이라도 있는 것마냥 TV 보유자가 적다. 

131쪽
결국 이 건으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분위기 잘 타는 어리버리 인간보다 영리하고 이성적인 인간이 더 세뇌당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TV는 보급률이 너무 높으면 사람 사이의 살가운 교류를 빼앗을 우려가 있지만, 보급률이 딱 43퍼센트 정도 되면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140쪽
걱정마라, 힘내라, 친구들의 응원 소리에 어여차 힘이 과했구나
시합 후 이어지는 여흥 자리, 이제 와 승부 따져 무엇 하리

146쪽
˝그런 이에모토제도(일본은 고대부터 전통적인 기술과 기예를 특화하여 특정 집안과 일족이 독점적으로 권리를 갖고 대대로 기술을 전수하도록 함-옮긴이) 따위 다 돈벌이 수단이지. 그깟 면허증 한 장 주고 몇 만 엔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실력 없는 것들이 꼭 돈 버는 데는 약단 말씀이야. 이에모토제도가 전통음악을 망쳤어.˝

167쪽
˝다카노, 이제 그렇게 젊은 나이도 아닌데 장래를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냐?˝

200쪽
자다 지쳐 다시 잠을 자는 이른바 영구수면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25쪽
제1차 노노무라 대전. 이 얼마나 살얼음판 같고 또 얼마나 소시민적인 전쟁인가.

237쪽
˝그러게, 그랬던 때가 있었다니....... 지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 선배님은 지금도 그 시절을 살고 있는 거네요.˝
˝앞으로도 이대로 밀고 나가세요.˝
나는 혼자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다. 다들 앞으로 뛰어나가는데 나 혼자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260쪽
다시 시작된 이 공동생활은 말하자면 ‘왕정복고운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인생의 반쪽도 없이 막막증에 시달렸고, 이시카와는 방황을 거듭한 끝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지만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사람 냄새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264쪽
˝간단히 말해서 ‘경제 활성화=환경 파괴‘란 소리야.˝
 내가 결론지었다.
 ˝그렇죠. 사람들 전부 좀 더 생활 수준을 떨어트리는 것만이 인류가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이시카와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이 미덕이라는 인식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인 내가 쐐기를 박았따.
 ˝인간이 일을 하면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습니까? 환경을 지키려면 일이나 소비나 최소한의 수준으로 낮춰야 해요.˝

266쪽
˝힘차고 즐겁게 살고 싶단 말이야......˝
이시카와도 개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욕망인가 봅니다.......˝

277쪽
자, 방이 넓어지면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봤더니 물건을 사 모으게 되더라는 것이다. 

283쪽
화제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때는 정말......˝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그러고 보니 그 자식 결혼했다는 말 들었냐?˝ 하면서 늘어놓는 소문들, 그리고 직장에 대한 불만이다. 

284쪽
그들의 양복 차림이 아침 해에 눈부시다. 

285쪽
나는 친구들과 모래밭에서 신나게 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공원에 남아 있는 건 나 혼자라는 것을 알고는 막막해진 꼬마이다.  그들이 노노무라와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공원의 모래밭과 거기서 언제까지고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아이를 부러워하는 것과 심정적으로 다를 바 없다. 

293쪽
나도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입사한 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그것은 어른의 세계를 잠시 훔쳐본, 수학여행 같은 경험이었다. 그저 이태리제 양복만이 그 잔상처럼 벽에 걸려 있다. 

298쪽
아예 생계가 불가능하면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텐데, 어설프게 밥은 떠먹고 사니까 생활 개혁에 대한 의지가 불붙지 않는 것이다.

310쪽
내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었떤 것은 이 노노무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노무라의 품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한, 나느 계속 이물질을 거부하며 일생을 노노콤 남자로 종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노노무라 인생에서 처음으로 켜진 빨간 불이었다.  

348쪽
˝나, 와세다를 나오겠어.˝
˝응?˝
 내가 얼마나 와세다에 집착해왔는지 잘 아는 그 사람은 약간 놀란 듯했다. 
 ˝노노무라를 나온다고. 그리고 이 동네로 이사할게. 그럼 우리 매일 만날 수 있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 순간, 나의 길고 긴 노노무라 생활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353쪽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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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일본 제국을 뒤흔든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가네코 후미코 지음, 정애영 옮김 / 이학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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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근현대사,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본다해도 종종 영화를 통해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을 접하게 된다. 밀정에 나왔던 황옥이 그랬고 최근에 본 박열이라는 영화에서 박열이라는 인물이 그랬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박열이라는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보다 그의 연인이자 동지 역할로 나온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에게 더 관심이 갔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가네코 후미코가 쓴 옥중수기가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집 앞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어 바로 빌려 볼 수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했었고 가네코 후미코의 시선으로 본 박열이라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져 이 책을 읽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을 만난 시점에 수기를 마쳤고 그 앞의 내용은 자신이 살아내었던 일생의 불행을 적어놓았다. 영화에서는 한없이 밝고 당차게 나오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성장 스토리를 보면 그런 경험을 하고 어떻게 그런 밝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가네코 후미코의 성장기는 부모로부터의 버림, 사랑의 결핍, 가난, 학대, 자유의 상실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불행의 총집합이라고 할만할 시간이었다.

그녀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녀의 삶은 위대해 보이고 삶의 모든 행적에 불행이 놓여 있는 것 같지만 그 모든 불행을 결국엔 다 지나오면서 박열을 만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삶이 절망적이었다고만 단순히 말할 수는 없었다.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나의 불행을 무디게 하는 것을 정신승리라고 불러야 할지 마음의 위로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삶이 불행을 견뎌내고 있는 사람에게 잠깐의 힘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밑줄, 생각
20쪽
그렇지만 인생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30쪽
나는 사람의 자식이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75쪽
그렇다. 엄마는 결국 가버렸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를 두고. 이전에 아버지가 나나 엄마에게 했듯이.......  

97쪽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태어났고,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아무리 할머니가 나를 태어나지 않은 취급을 해도 나는 태어나 살아 있었던 것이다.  

149쪽
그래, 나처럼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다, 죽어서는 안 된다. 

나이도 안 찬 불쌍한 소녀가 죽음을 결심하고 죽는 데 실패했다. 어린 풀처럼 쭉쭉 뻗을 나이에 구원을 죽음에서 구하려는 것도 무섭고 부자연스럽거니와 단지 복수하려는 희망으로 살아남았다는 것도 얼마나 무섭고 또 슬픈 일인가. 

156쪽
 그렇다고 내가 이 헛간의 음침함을 싫어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가난과 고통에는 나는 매우 익숙하다. 나는 단지 그 ‘식모 방‘ 생활의 무의미함 때문에 초조함을 느꼈다.

158쪽
사랑받지 못하고 구박받았기 때문에 나는 뒤틀린 것이다.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당했기 때문에 꼬인 것이다. 

167쪽
조선에서의 나의 생활 기록이 너무 길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나로서는 적어도 이 정도 일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조선에 있던 어언 7년 사이에 어째서 이렇게까지 꼬이고 뒤틀린 사람이 되었는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라도....... 

190쪽
절 생활은 겉으로는 평화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평화만이 절대 가치는 아니다. 젊은이에게 평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221쪽
 나의 진실한 바람! 진실한 목적!
 그것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의 생명을 고양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237쪽
나에게 딱 맞는 생활을 찾아, 어딘가 그런 생활이 있으리라 믿으며 나는 위선의 집을 버렸다.
 열일곱 살(1920년)의 봄이었다.
 안녕 아버지, 이모, 동생,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 지금까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이여 안녕, 안녕,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결별할 때입니다. 

239쪽
나를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가는 곳마다 생활의 모든 범위에서 괴롭힐 만큼 괴롭혀준 나의 전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나 외삼촌 이모 집에서 아무 어려움 없이 컸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경멸하는 그런 사람들의 사상이나 성격이나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나 자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은 덕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285쪽
기독교의 가르침은 정말 옳은 것일까? 그것은 오직 사람 마음을 속이는 마취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성의나 사랑이 타인을 움직이고 그것이 인간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는 한, 그런 가르침은 결국 기만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305쪽
아 나는.................해주고 싶다. 우리 불쌍한 계급을 위해 내 전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싸우고 싶다. 

324쪽
지금까지 ‘주의자‘라는 사람은 뭔가 조금 특별하고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공상이었는지를 나는 지금 너무나 확실히 알게 된 느낌이었다. 

334쪽
˝그저 지금의 사회에서 훌륭하게 되는 데에 흥미를 잃었어요.˝

˝글쎄요. 그 일에 대해서는 요즘 계속 생각 중이에요...... 난 뭔가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어떤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고학 따위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내게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요. 그리고 난 지금 그걸 찾고 있어요......˝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을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이 아니다. 소위 훌륭한 인간만큼 하찮은 것도 없다는 것을. 남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나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 된다. 

335쪽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타인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나 많은 남자의 노리개였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갈지 않았다.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알아서 그것을 실행하고 싶다. 

336쪽
하지만 실제로 나는 결코 사회주의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는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사회의 변혁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바가 진실로 민중의 복지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다.
 ‘민중을 위하여‘라고 하며 사회주의는 동란을 일으키리라. 민중은 자신들을 위해 일어선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생사를 같이 하리라. 그리하여 사회에 하나의 변혁이 도래했을 때 아아, 그때 과연 민중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도자는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그 권력으로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세울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다시 그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권력을 대신하여 다른 권력을 가져오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340쪽
그렇다, 내가 찾고 있던 것,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그것은 확실히 그의 안에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할 일을 갖고 있다. 

352쪽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바로 함께 살아요.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겁니다. 결코 당신을 병 같은 것으로 고통받게 하지 않을 거예요. 죽을 거면 함께 죽읍시다. 우리 함께 살고 함께 죽어요.˝

353쪽
머지않아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현상으로서는 멸해도 영원의 실재 중에는 존속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361쪽
후미코는 시몬 베유처럼 많이 배우거나 체계적인 사회운동을 지도했던 엘리트 여성운동가는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아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 놓인 존재였다. 불꽃처럼 살았다기보단 아프게 살다 간 한 여인의 삶이 오롯이 수기에 새겨져 있다. 

362쪽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대역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천황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 중 23살 나이에 옥중에서 죽은 아나키스트이다. 간토대지진으로 일본 국민이 공황에 빠지자 일본 치안 당국은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따라 수천 명의 조선인이 대학살을 당하고 수많은 사회주의자가 검거된다. 그 와중에 가네코 후미코도 박열과 함께 검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폭탄 유입 계획 등이 드러나며 천황을 해치려 했다는 대역죄, 즉 메이지헌법의 가장 중죄로서 삼심제도 적용되지 않고 사형이 선고되는 대역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가네코후미코의 이 옥중 수기는 오롯이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박열을 만날 때까지의 자전이자 고난과 역경을 딛고 아나키스트로 성장해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63쪽
이 옥중 수기는 박열과 만나 생각을 같이하는 부분에서 끝난다. 

365쪽
중대한 사상이 정규 교육제도 안에서 근면한 학습을 통해서만 세워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는 누군가 대신 써준 위서처럼 보일 것이다. 누가 써주었는가 하면 일본의 국가가 쓰게 한 것이고 국가에 대해 혼자 맞선 그녀가 이 수기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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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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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고, 문단이 모여 글이 된다면 문장을 쓰는, 문장을 아주 잘 쓰는 카피라이터는 좋은 문단을 쓸 것이고 좋은 문단은 서로 어울려 좋은 글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100m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42.195km를 뛰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민철 씨의 책은 100m 단거리 달리기도 42.195km의 마라톤 경기도 아닌 산책이었다. 빨리 가기도 천천히 가기도 하는, 빨리 가도 천천히 가도 상관없는. 그냥 그가 걸었던 걸음의 속도를 내가 걸었던 걸음의 속도에 비추어보며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걸어 나갔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것이고, 좋은 사람이 읽는 책은 좋은 책일 것이기 때문에, 그가 읽은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책에 나온 책들을 적어두었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나도 이 사람처럼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결국 나는 이 책들을 다 읽지도 못할 거고 그중 몇 권을 읽는다 해도 여전히 똑같은 나일 것이 분명하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좋은 사람이 읽은 좋은 책인데. 책을 읽는 그 순간 나도 좋은 느낌을 조금이라도 받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적당한 자기방어적 체념을 가지고 그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로맹 가리 <여자의 빛 >
조르주 페렉 <사물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윌리엄 서머셋 모옴 <달과 6펜스>
빌 버포드 <앗 뜨거워 heat>
살만 루슈디, <한밤의 아이들>
김소연 <시옷의 세계>
존 버거 <A가 X에게>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중해 기행>
밀란 쿤데라 < 불멸>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페인 기행>

 what‘s your favorite? 이다음에 내가 내 동네가 아닌 어느 곳에 여행자로 가게 된다면 하루에 한 번은 꼭 저 물음을 던져야겠다. what‘s your favote?이라니. 저 질문 하나로 이 책은 최고의 여행 실용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여행자에게 줄 혜택 보다 예측 불가능한 저 질문 하나가 여행자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사할 것이다. 여행 가기 전에 네이버에서, 한국인들한테 너는 뭐가 제일 좋냐고 물어볼 것이 아니라 일상을 떠나 도착한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너가 제일 좋아하는 걸 나한테 좀 말해달라고. 

내 모든 요일의 여행과 내 모든 요일의 독서와 내 모든 요일의 일상을 기록해야겠다.

밑줄, 생각
11쪽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27쪽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28쪽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에 도착하고 싶었다. 

37쪽
트램이 섰다.
문이 열렸다.
정거장도 아닌데.

아무도 내리지 않고
아무도 차지 않는다.
그저 동네 아줌마들과
차장의 수다만
타고,
내린다.

대단한 무언가를
보기 위해 떠나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니지 않게 여기게 되는
그 마음을 만나기 위해 떠나온 것이다. 

42쪽
<사물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조르주 페렉의 이 소설에는 사물에 대한 열망에 인생을 저당 잡힌 남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들에게는 ‘파리 전체가 영원한 유혹‘이었고, 그들이 집착하는 것은 ‘소유의 기호들을 계속 늘‘리는 것이었다. 사물들에 대해 비슷한 취향을 가졌으며,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사물들을 사랑했다.

44쪽
나는 행복해야 했다. 파리에 왔으니까.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행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나는 행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48쪽
지도와 정보를 내려놓자. 우리의 취향과 우리의 시선과 우리의 속도를 찾자. 

우연한 행복을 찾아보자. 진짜 여행을 시작해보자.

57쪽
매일을 살아가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도 고향은 없다는 것을.

76쪽
잠깐 사랑했다가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한 도시를 오해하며 바라보는 짝사랑도 꽤 괜찮지 않은가?

80쪽
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 맞다. 여행도 주말이 필요하다. 5일 정도 여행했으면 토요일엔 느지막이 일어나 게으른 점심을 먹고 굼뜨게 준비를 한 뒤늦은 오후의 잠깐을 돌아보고 얼른 숙소로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토요일이 필요하다. 숙소 주변의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숙소가 위치하는 동네의 현지인 인양 어슬렁거리는 일요일이 필요하고 씻지 않고 숙소에서 예능이나 드라마만 보고 있는 휴일이 필요하다. 6일에 하루, 5일에 이틀 정도는.  

97쪽
이동하는 건 여행자만이 아니라는 걸

106쪽
what‘s your favorite?

125쪽
이곳은 다시 없다.
사람이 변하고 빛이 변하고 풍경이 변하고
무엇보다
내가 변한다.

고대 소피스트가 이미 진리를 설파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여행에 있어서는 나도 소피스트가 된다.
같은 도시에 두 번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지금을 남김없이 살아버리는 것.
다시 없을 지금, 여기.
다시 없을 내가 있다.

130쪽
어차피 이곳에 있으면서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점들이지.

138쪽
타인의 취향은 안전하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과 구글을 몇 개월간 넘나들며
핸드폰 지도앱에 수백 개의 별표를 쳤다.
맛있다는 추천에, 예쁘다는 추천에, 싸다는 추천에
얼굴도 본 적 없는 타인들의 추천에 별은 끝없이 번식했고
어느새 은하수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그만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동방박사도 아니면서
별을 따라 목적지에서 목적지로만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여행을 잃어버린 것이다.
안전한 곳만 찾아다니다 보니
모험의 즐거움을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결코 안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은하수가 아니었다.
나만의 견고한 별 하나였다.

159쪽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욕심이 있다.
그저 카를 무럭무럭 키우는 욕심이 내겐 있다.

164쪽
예감은 정확했다.

179쪽
˝우리가 영어를 썼으면 어쩔 뻔했어. 도대체 비밀 이야기가 없었을 거 아니야. 프랑스어도, 이탈리아어도 어쨌거나 알파벳 언어는 안전하지가 않아.˝ 여행지에서 한국어는 비밀스러운 암호가 되었다. 

194쪽
하지만 나를 가장 절망하게 하는 것은 피 나는 뒤꿈치가 아니라 나의 문장이다. 지금 이 글은 그 아침의 아름다움 근처에도 가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의 언어는 이토록 빈약하기에 결국 사진을 내밀어본다. 피가 나도록 뛰어다녔지만 이 사진들 역시 그 아름다움의 근처에도 가닿지 못하고 있지만.

207쪽
유명하다니까, 꼭 가야 한다니까, 뭐가 있을 것 같으니까, 바쁜 여행 중에 시간을 쪼개서 도착하는 곳들은 늘 우리에게 등 돌리는 기분이다.

213쪽
누가 크게 CD를 틀어놓은 줄 알았다. 온 집이 울리도록 크게. 그 소리가 골목까지 흘러나온 건 줄 알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사람들이 들어갈 때마다 수줍어했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실수를 연발했다. 저토록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연주가라니. 그런데 저토록 부끄러움이 많다니. 우리는 한참이나 머무르다 돌아섰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녀 연주 앞에 멈춰 선 후, 그녀의 연주가 꼬이고 있었다. 명백히 우리가 방해가 되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버스 안이었다. 아무도 없는 시골 버스 안. 그녀가 먼저 우리를 아는 체했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칭찬을 했다. 그녀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알고 보니 독일 시골에서 왔단다. 독일과 프랑스는 서울과 부산처럼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는 너무 시골에 살아서 여기까지 오는 데 열여섯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줄 모른다며 그녀는 꽤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처음 유럽여행을 떠난 한국 대학생처럼. ˝실은 오늘 처음으로 용기를 낸 거예요. 독일에서 이 무거운 기타를 여기까지 들고 왔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요. 일부러 가장 작은 도시, 가장 외진 길에 자리를 잡고 겨우 몇 곡 불렀는데 그때 저를 보신 거예요. 어느 순간 눈치를 챘죠. 제 동영상까지 찍고 있다는 걸요. 그 순간 너무 긴장이 되어서 계속해서 실수를 했고요. 음악은 좋은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자신이 없어요.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그녀에게 우리가 말했다. 진심을 다해서 말했다. 방금 전 녹음한 너의 노래를 우리는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고. 커피를 마실 때도 들었고, 맥주를 마시면서도 들었다고.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냐고. 우리는 CD를 틀어놓은 건 줄 알고, CD 소리를 따라서 갔는데 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그게 이 작은 도시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절대로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정말로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 이야기에 빨갛게 상기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놀랐다. 정말로 자기가 가진 보석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십 대의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표정. 작은 칭찬에도 놀라고,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장 모자란 표정. 내게 그런 재능이 있을 리가 없다는 표정. 보석을 가득 안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표정. 그런 표정을 그녀가 짓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칭찬을 들어보는 아이처럼. 그녀는 이미 충분했는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216쪽
그 모든 젊은엔 박수가 필요하니까.
그 모든 용기엔 팬이 필요하니까.

224쪽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 하나하나에 아저씨는 계속 설명을 덧입히고 있었다. 

233쪽
나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희망을 고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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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링 해피니스 - 재포스 CEO의 행복경영 노하우
토니 셰이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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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작게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하면서, 재포스와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밑줄, 생각

16쪽
재포스의 핵심은 기업을 일구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생활방식을 구축하는 것이 재포스의 핵심이었다.

plur Peace(평화), Love(사랑), Unity(단합), Respect(존중)

65쪽
오라클에 근무한 기간은 고작 다섯 달. 그동안 내가 이루어놓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66쪽
돈이 좋기는 하지만 지루한 것은 정말 싫었다

88쪽
이제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정리해보니 어느 경우도 돈 덕분이었단 적이 없었다. 나는 무언가를 구축하고 창조적으로 활동하며 무언가를 고안해낼 때 행복을 느꼈다. 친구와 마음를 트고 해가 뜰때까지 밤새 이야기하며 행복을 느꼈다.

우리 인간들은 사회와 문화에 길들여져 아무 생각 없이, 정날 너무나 쉽게, 더 많은 돈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자동적으로 믿어버린다. 사실 궁극적인 행복은 그저 인생을 즐길 때 느낄 뿐인데 말이다. 

89쪽
나는 돈을 좇기를 멈추고 열정을 뒤따르기로 인생의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101쪽
뒤돌아보면, 우리 회사의 성장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벽을 향해 아이디어들을 무차별로 쏘아댄 후 벽에 달라붙는 아이디어를 찾아 즉흥적으로 대처하면서 어떻게든 성공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105쪽
시장 기회의 판단
- 포커 테이블의 선택은 도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 선택한 테이블에서 이기는 것이 너무 힘들면 테이블을 바꿔도 된다.
- 경쟁자가 너무 많으면(일부는 비이성적이거나 경험 부족인 경우도 있다), 당신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더라도 이기기 매우 힘들다.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
- 강할 때는 약한 척하고, 약할 때는 강한 척하라. 허풍을 떨어야 할 시기를 파악하라.
- 도박사로서의 ‘브랜드‘가 중요하다.
-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라.

재무
- 최악의 시나리오에 항상 대비하라.
- 가장 많이 이기는 자가 장기적으로 돈을 가장 많이이 따는 자는 아니다.
- 긍정적 미래가치를 좇으라. 가장 덜 위험한 것을 좇으면 안 된다.
- 당신이 하고 있는 게임의 내용과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고려하여 항상 충분하게 재정 지원을 확보하라.
- 져도 상관없는 게임만 하라.
- 장기전임을 기억하라. 한두 판은 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결과이다.

전략
- 이해하지 못하는 게임은 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그 게임으로 돈을 많이 번다 해도 당신도 번다는 보장은 없다.
- 판돈이 크지 않을 때 부지런히 게임을 배우라.
- 속이지 말라. 사기꾼은 장기적으로 절대 이기지 못한다.
- 원칙을 고수하라.
-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의 흐름도 바뀌면 스타일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유연한 자세를 갖추라.
-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사고하라.
- 스태미너와 집중도가 높은 사람들이 이긴다.
- 스스로를 차별화하라. 테이블에 있는 나머지 도박사들과는 반대로 행동하라.
- 희망이 곧 좋은 계획은 아니다.
-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가지 내몰지 말라.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피곤하면 게임을 멈추는 것이 비용 면에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평생교육
- 공부하라. 책을 읽고 경험이 있는 자들에게 배우라.
- 실전으로 배우라. 이론은 실제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 재능이 있는 사람들 주위에 얼쩡거리라.
- 한 판을 이겼다고 하여 실력이 좋은 것이 아니다. 이번 한 번 행운이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아직도 배울 것은 많다.
- 조언을 구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

문화
- 게임을 사랑해야 한다. 정말로 능숙하게 되기 위해서는 게임의 삶을 살며 게임에 푹 빠져야 한다.
- 건방떨지 말라. 자랑하지도 말라. 당신보다 나은 사람은 항상 있다.
- 친절하게 행동하고 친구를 사귀라.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 당신이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
- 당신이 참여하는 판 이상의 기회를 노리라. 당신이 오늘 만나는 사람이 평생 친구가 되거나 새 사업 동료로 발전할 수도 있다.
- 즐기라. 돈 버는 것 이상의 성과를 위해 노력하면 게임이 훨씬 더 즐거워진다.

긍정적 미래 가치를 좇으라

120쪽
다른 많은 이들처럼 우리 또한 대학을 졸업하면서 유대감을 잃었고, ㅇ연히 다시 그 감정을 맛보기 전에는 우리가 목이 마른 상태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121쪽
링크익스체인지를 매각한 이후 나는 물질의 소유보다는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내 철학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175쪽
소중한 교훈이었다. 회사의 핵심기능을 아웃소싱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178쪽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188쪽
재포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늘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데 재포스의 목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쪽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목표를 일찍 달성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다음 세 가지 핵심부문에 시간과 자금, 자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첫째가 고객 서비스(우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입소문을 퍼뜨려준 일등공신), 둘째가 기업문화(우리의 핵심가치를 세우게 해준 일등공신), 마지막으로 직원 교육과 계발(이는 ‘파이프라인 팀‘의 개설로 이어졌다.)

208쪽
몇 년간 재포스 성장의 최고 동력은 재구매 고객들과 그들이 내준 입소문이었다. 유료광고에 쓸 돈을 대신 고객 서비스와 고객 만족에 투자하여 고객이 우리 대신 입소문으로 마케팅을 하게 하자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었다. 

210쪽
마케팅 부서들은 보통 투자수익률을 계산할 때 한 고객의 평생가치가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 생각은 다르다. 그 고객과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접촉을 통해 그 고객이 우리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준다면 그 고객의 평생가치는 계속 향상될 수 있다고 본다. 즉 고객의 평생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목표라는 것이다. 

212쪽
우리는 각각의 모든 거래에서 이윤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전화 한 통 한 통을 통해 각 고객과 평생 가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215쪽
당신 회사에 고객 서비스 정신을 심는 최고의 방법 10가지
1. 고객 서비스를 일개 부서가 아닌 회사 전체의 최우선 과제로 지정하라. 고객 서비스의 태도는 상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2. ‘와우(WOW)시키다‘라는 단어를 회사에서 매일 사용하는 동사형으로 지정하라(예: 고객을 ‘와우시키는‘서비스 등).
3. 고객 상담원들에게 권한을 주고 신뢰하라. 그들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한다고 믿으라.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고객이 상담원의 상사와 통화하고 싶어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4. 만족시킬 수 없는 고객이나 당신의 직원에게 무례한 고객은 무시해도 된다.
5. 통화시간을 재지 말고, 상담원에게 다른 제품의 판매를 시도하게 하지 말고, 스크립트를 사용하지 말라.
6. 고객과의 전화는 고객 서비스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투자이다. 절감해야 하는 비용이 아니다.
7. 회사 전체가 훌륭한 서비스를 기념하도록 하라. ‘와우‘ 경험담을 회사의 모든 직원에게 이야기하라.
8. 고객 서비스 제공에 열정을 품은 사람을 고용하라.
9. 고객, 직원, 공급업체 모두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라. 

220쪽
기업 문화가 시간을 두고 체현되는 것이 브랜드이다. 

221쪽
재포스닷컴의 경우, 그저 신발이나 의류, 또는 온라인 소매라는 단순한 것이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게 하지 않겠다고 이미 오래전에 결정한 바 있다. 우리는 최고의 고객 서비스와 최고의 고객 만족을 중심으로 우리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었다. 

222쪽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를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하자면 이것이다. 문화.

당신의 문화가 당신의 브랜드이다.

224쪽
종국에 당신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다. 문화를 제대로 이끌어간다면, 훌륭한 브랜드의 구축을 포함한 다른 것들은 저절로 해결된다는 사실이다. 

228쪽
1. 서비스를 통해 ‘와우‘ 경험을 선사한다.
2.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추진한다.
3. 재미와 약간의 희한함을 창조한다.
4. 모험정신과 독창적이며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
5. 성장과 배움을 추구한다.
6.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솔직하고 열린 관계를 구축한다.
7. 긍정적인 팀정신과 가족정신을 조성한다.
8. 좀더 적은 자원으로 좀더 많은 성과를 낸다.
9. 열정적이고 결연한 태도로 임한다.
10.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229쪽
장기적으로 가치가 있다면 (수입이나 이윤이 줄어드는 등의) 단기적 손실은 감수한다는 것이 재포스의 철학이다. 

255쪽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재포스가 일하기 좋은 직장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루를 같이 보내는 동료들이 참으로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고객 서비스에 대한 회사의 철학이 환상적이었다. 

259쪽
대체적으로 최고의 발상과 결정은 아래에서, 즉 최전선에서 고객들과 여러 문제점에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온다고 믿습니다. 관리자의 역할은 장해물을 제거하고 부하직원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최고의 리더들은 머슴이란 뜻입니다. 최고의 리더들은 자기가 이끄는 이들을 섬깁니다.
 최고의 팀원들은 문제를 발견했을 때 팀과 회사의 성공을 위하여 주도적으로 일합니다. 최고의 팀원들은 회사의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장해물이 나타날 때마다 다른 팀원들과 협의합니다. 
 최고의 팀원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냉소주의도, 부정적 상호작용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팀원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교류하는 모든 이들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최고의 팀이란 구성원들이 함께 일을 할 뿐 아니라 사무실 밖에서도 같이 어울리는 팀입니다. 회사에서 나온 최고의 발상 중 다수가 직원들이 사무실 밖에서 허물없이 어울릴 때 탄생했습니다. 

262쪽
‘좋다‘는 ‘위대하다‘의 적이며 우리의 목표는 위대한 기업이 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서비스 기업이 되는 데 있습니다.

265쪽
우리는 ˝안돼요˝ ˝해봤자 소용 없어요˝라는 대답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266쪽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회사에 열정을 느끼는가? 내 일에 열정을 느끼는가? 내 일과 내 동료를 사랑하는가? 나는 여기서 행복한가? 나는 영감을 얻는가? 나는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가는 방향을 신뢰하는가? 이곳은 나를 위한 곳인가?

269쪽
사실 당신 회사의 핵심가치가 ‘무엇‘이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핵심가치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핵심가치를 준수하겠다는 다짐이다. 

287쪽
우리의 비전은 경력직보다는 대졸 신입을 채용하되, 어느 직원이라도 5년에서 7년 사이 부장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회사가 모든 교육과 멘토 역할을 제공하는 것이다. 

296쪽
우리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신경을 써 사람들을 계속 와우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결국 언론이 알아서 찾아낸다는 좋은 교훈이었다. 

324쪽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너의 미래는 항상 순백이다.
-알려지지 않은 작가

326쪽
우리가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도달하고 싶은 곳은 하나인 것이다. ‘행복‘이란 곳.

328쪽
재포스의 핵심은 세상에 행복을 배달하는 것입니다.

331쪽
행복은 다음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결정권의 지각, 진척의 지각, 유대감(관계의 수와 깊이), 그리고 비전/의미(나 자신보다 더 큰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것).

333쪽
조너선 헤이트는 행복은 ‘내면‘에서 주로 오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고 했다. 

337쪽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절한 행복 전략은 먼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추구하며(사명의 행복이 가장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므로), 그 위에 열정의 행복을 쌓고, 마지막에 쾌락의 행복을 더하는 것이라 한다. 

341쪽
나는 매일 나의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세계의 행복에 내 존재가 매일 얼마나 기여하는가?
내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가?
무엇이 내게 영감을 주는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 회사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회사의 사명은 무엇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걷는 사람은 운명과 부딪치게 된다. 
-버티스 베리

344쪽
한 개의 초로 천 개의 초에 불을 붙일 수 있지만
그 초의 생명은 단축되지 않는다.
행복은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부처

345쪽
삶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조지 버나드 쇼

공적을 인정받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면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 -H.S. 트루먼

우리는 스스로를 비참하게도, 강인하게도 만들 수 있다. 드는 노력은 이래저래 비슷하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우리가 뒤에 남긴 것과 우리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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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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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는 누구와 투쟁을 해야 하는 거지? 라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아. 먼저, 투쟁을 하고 싶은가? 투쟁을 해야 할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건가? 라는 질문에는, 선명한 악과의 투쟁이야말로 의미 없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장 쉽고 값진 방법이기 때문에 투쟁하는 삶은 고난하지만 의미 있기에 투쟁할 대상이 있는 건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시절의 민주화운동가들은 좋았겠다, 라고 자주 생각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래도, 그들은 인생을 내던질만한 의미 있는 일이 있던 시대에 살았으니까. 그 선명한 악에 대항해 투쟁하는 데에 일말의 의심을 품을 필요도 없고 그 싸움에 인생을 내던지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사회에도 인류에게도 도움이 되는 분명하게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라 무언가 폭력을 가하는 존재는 있는 것 같은 데 그게 선명치가 못하다. 물론 지금도 청산해야 할 적폐가 수두룩하고 시선을 조금만 더 길게 던지면 아직도 선명하고 분명한 악들이 드글드글하지만, 당장의 눈앞에 잡히는 무도한 폭력이 보이질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정말로 ‘상냥한 폭력의 시대‘. 내가 저지르는 일상의 폭력이 투쟁되어야 할 제1의 악이 되는 시대. 좋은 세상이지만 한 편으로는 살아가기 더 힘든 시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렇게 존재하는 상량한 일상의 폭력에 대해 그려놓은 듯하다. 친일파가 아니고 독재에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옆을 돌아보게 하는 책.


 왜 나는 소설을 읽는 것일까? 소설이 단지 꾸며낸 이야기라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거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술자리에서 친구의 시답잖은 연애 이야기와 회사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누군가의 현실 이야기보다는 더 재미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꾸며낸 이야기를 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단지 재미있기 때문,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있으니까. 너무 지루하고 할 게 없고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이야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소설을 읽는 제일 큰 의미라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면, 소설은 시간을 재미있게 때울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다. 독서는 능동적으로 내 눈을 굴려 글을 읽어가야 하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내 눈에 박아주는 드라마나 예능이나 영화보다 수고가 많이 든다. 바로바로 이해되지 않아 머리를 써야 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시대 배경을 마주할 때는 도통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지도 않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는 가만히 앉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뭐, 분명 이야기를 영상으로 풀어가는 것과 음성으로 풀어가는 것과 글로 풀어가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재미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재미 가성비를 따진다면 독서는 그리 훌륭한 방법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시간 없고 정신없고 돈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럼 독서에는 재미가 아니라 효용이 있는 것인가? 소설을 읽는 것이 재미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읽는 것인가? 모르겠다. 왜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는. 그냥 지금 당장에는 다른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금의 내 삶에는 아무런 기승전결도 없고 대단한 사건을 예견할 복선도 없는 것 같아서. 


소설에서는 현상을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인가?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은 후로 정이현 작가의 책은 꾸준히 찾아 읽고 있다.

밑줄, 생각

41쪽
그녀는 이제 어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대에 따라 그 단계들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101쪽
돼지는 다른 돼지와 구별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구절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몹시 슬프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106쪽
나는 가끔 엄마가 딸의 몸무게가 아닌 영혼의 무게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다. 

과거의 정열과 무관하게 현재 그들의 삶은 몇 모금 마신 다음 뚜껑을 열어놓고 방치한 페트병 속 탄산수 같았다. 

119쪽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공부를 하는 목적은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결국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데, 현대의 학교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곳인지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141쪽
아주 오래전이었다.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의 교정을 맴돌며 지겹도록 천천히 늙어가는 생을 상상도 할 수 없던 때. 그런 때가 그녀에게 있었다. 

158쪽
언제고 풀리고 말 마법에 대하여 생각했다.

160쪽
최후의 문장이 누구의 것이든 애도는 남아 있는 자의 의무였다.

182쪽
차가 고속화도로를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내내 부부는 정적을 지켰다.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다. 

책(영영, 여름)의 첫 문장 : 알고 보면 돼지만큼 깔끔하고 예민한 짐승도 없다는 내용의 그림책을 오래전에 읽었다.
책(영영, 여름)의 마지막 문장 : 침묵만이 남은 미래에서 나는 암흑과 뒤섞일 때까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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