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안다고 생각했다. 좋은 그림책을 좀 읽어주는 교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책연수나 그림책 읽기 그만 배워도 되지 않을 까 생각했다. 이태숙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이백을 천천히 읽으니 내가 안다는 건 너무나 미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계속하는 공부는 대단하고 아이들과 매일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대단한 선생님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P45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나를 되돌아보고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는데, 함께 책을 읽은 사람이 질문을 해준다면 한 권의 책으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느끼고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에서 끝이 아니라 말하게 하고 그림 그리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면 책 한권으로 아이들은 감성이 풍부해지고 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P.232 유명한 작품은 읽지 않아도 책 전체를 아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
다. 나무를 심은 사람 또한 너무나 유명한 책이고 "한 사람이 화니지를 숲으로 만들었다" 라는 한 문장으로 줄거리 파악이 가능하다. 그래서 제대로 읽지 않고 빠르게 넘기며 마무리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이 책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으며 자기 목소리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화자인 젊은 여행자가 되어 노인을 관찰하기도 하고, 노인의 고된 삶을 나라면 할 수 있을지 대입해보시라. 노인처럼 인생을 걸 신념을찾을 수 있다면 행복한 책 읽기가 되지 않을까?!

P.250 나는 ‘안다‘라는 것을 그림책을 보고 되짚어볼 때가 있다. 분명 그책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책으로 읽을 수 있음을 느낄 때 .
면 이전에 내가 ‘안다‘라고 했던 것이 엉터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자 만 읽고 글자가 말하는 정보만 이해하고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말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이를 방지하는 좋은 방법이 함께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걸 나이 먹어서야 깨달았다. 독불장군처럼 책을 읽었던 시기가 지나고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니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다가오곤 한다. 내가 보는 관점은그냥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P.259 함께 사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최고목표다s. 인권을 주제로 그림책을 읽는 것은 ‘인권‘을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시키려는 목적도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다름을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삶, 그 다름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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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지음,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그림, 최정수 옮김 / 마농지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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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작품은 동물농장 밖에 읽어보지 못하고 그 시대의 정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내가 안타깝다. 그의 책을 더 읽어본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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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대기를 통제하는 에어로이드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으로 원통 안에 살 수 밖에 없는 지유와 의료용 클론으로 태어나 뇌가 생긴 노아의 이야기다. 둘 다 자유를 갖지 못했지만 자유를 꿈꾸고 서로를 돕는다. 미래의 이런 이야기 들은 끔찍하다. 그러나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도 아닌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아무도 외롭지 않은 미래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의 비 선물이 아름답다.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 세계도 좋지만,
그보다 아무도 외롭지 않은 미래를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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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소설 중 덜 기이하다. ㅎ 중학생이 되는 아들에게 읽히려고 사줬더니 재미있다고 단숨에 읽어서 나도 읽어보았다. 재미있다. 내가 알던 청기와 주유소가 정말 없어졌나싶고 만화로 표현된 부분도 재미있다. 밑줄 친 부분이 마음 아프다. 이런 외모 때문에 이런 환경 때문에 신경질도 못 내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에 씨름 내기를 혈육을 통해 물려줄 수 없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신경질이 솟구쳤다.
그냥 신경질이 아니었다. 이십몇 년 어치의 신경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제대로 신경질을 내 본 적이. 나의 무겁고 둥근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신경질을내면 모두 꼴사납다 여겼으므로,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부모가 키우지 않는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으므로…… 내가 먼저 구기고 숨기고 모른 척했던 신경질이었다.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신경질을 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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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울림을 갖는다. 한 편의 글이 메아리처럼 또 다른 글을 불러온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는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균형 감각이 발달한다. 이는 삶에 이롭다. 인간은 아는 만큼 덜 예속된다. 예를 들면 동성애자나 철도 노동자의 삶을 이해했을 때와 그 이전은 분명 다르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왜 그 직업을 욕망하는지, 밤 이고 낮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잘 산다는 기준이무엇인지 등등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글로 풀어내며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며 원하는 것들 사이에 둘러싸여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상황에서는 ‘왜‘라는 질문이필요 없이 일상이 꽉 차 있으니까요.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나는 왜,
여기, 지금을 계속 묻고 또 물을 때 사물도 세상도 예민하게 볼 수 있 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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