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든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단지 엄마만의 삶이 아니라 3대에 걸쳐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다. 그들의 삶을 진심과 아름다운 언어로 써 갈 수 있는 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밥과 돌봄이 하찮고 사소해 보여도 사람을 살리는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내 가족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환대를 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삶이 얼머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님이지만 그 삶 속에서 꿈과 사랑의 이야기가 넘치게 이어지고 있다. 곁에 있어도 그 깊은 슬픔과 격동을 알수 없다는 쓸쓸함과 함께 자기의 삶의 파도에 맞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게 된다.

우리를 성장시킨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삶 속에서도 엄마 아버지가 잃지 않았던 예술의 즐거움이었다.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던 그때의 행복한 기억이 나를 어떤 어려움에도 주저앉지 않게 했다. - P320

이제와 돌아보면 엄마 아버지가 ‘부‘를 이루지 못한 것은 무능함의 소치이기보다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계실 때도 당신은평생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P329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면서도 수십 년째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기만 하는 주변 LH아파트와 빌라에살았다. 오로지 공동체를 선택한 때문이었다.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30년 넘게 활동가로 산 후배들의 사정은 더 어려웠다.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가난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균일하지 않았다. 위기가 닥치자 거기에 대한 반응과 대처도 달랐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지만,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다. 팬데믹으로 인한거리두기가 그런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공부방까지 닫혀서는 안 되었다. 공부방이 유일한 숨구멍이자,
품을 내어주는 따뜻한 공간이자,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인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문을 열어야 했다. - P362

숟가락 드는 법을 수시로 잊고, 때로는 음식을 거부하며입을 앙다물어 보호사님들을 힘들게 한다. 엄마가 의미 있는 말을 하든, 의미 없는 말을 하든 항상 분명하게드러나는 것은 존중받고, 사랑받고, 잊히지 않고 싶다는 바람이다. 엄마는 관계에 대한 욕구를 예전처럼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에야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느낌이다. 엄마의 뇌가 기억을 잃어가기 전에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감정들, 특히 자녀에 대한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내주는 것이 좋다. 엄마는 이제 먹고, 입고, 대소변을 가리는 일까지 갓난아기처럼 타인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 P342

공부방에는 늘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밥과 청소 같은 사소한 일들, 그 일은 누가 대신 떠맡고 싶지 않은 ‘하찮은 일, 궂은 일,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는데 밥 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공부방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환대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일을 놓지 못하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겼다. 엄마가 일 때문에 아이와 충분히 놀 수 없다면 쉬고 있는 아빠가 놀아주는 것이 당연해야 했다. 그것이 아이에게 결핍이어서는 안됐다. 아이는 부와 모가 함께 돌보는 것이니까. 그러나
‘엄마‘라는 존재에게는 어떤 상황도 면죄부가 되지 않았고, 나 또한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모든엄마가 바다와 같을 수 없고, 여성이라고 누구나 모성애가 넘칠 수 없다. - P372

밀키트를 신청해 먹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는 혼자 영차영차 주문을 된다고 생기지 않는다. 혼자인 그에게손을 내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누군가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밀키트로 조리해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 바로 공동체다. 나는 공부방 아이들뿐 아니라 딸들도 그 공동체 안에 있기를바랐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의 자리가 비는 일이 일어나도 그 자리를 메워줄 공동체가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지 않았고 든든했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우리 ‘기찻길옆작은학교‘여야 할 필요는 없다. 공동체를 경험한아이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도 좋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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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고 재미없어서 덮어두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이제는 알게 된 걸까?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227간의 인생 극한에서 살아내는 파이의 이야기에 경의를 표하며 망망대해를 살아가는 동료인간들의 존엄이 지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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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헤어리스 크리스찬스‘ (대머리 기독교도들)라고 들었고, 오랜 세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는 제대로 가르쳐주면서, 사실 그녀가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힌두교도들도 사랑의 용량에 있어서는 대머리 기독교도들과 같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모든 사물에서 신을 보는 방식이 수염 난 힌두교도와 같고, 기독교도들이 신에게 헌신하는 마음은 모자를쓴 이슬람교도와 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 P82

흰 벽으로 둘러싸인 현관홀은 말끔했다. 테이블과 벤치는 짙은 색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제는 흰 성직복을 입고 있었다단정하고 소박하고 단순했다. 나는 평온함에 휩싸였다. 내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분위기보다는, 그가 거기 있다는 열린마음으로 인내심 있게 사실이 본능적으로 이해된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그와 대화하고 싶을 경우에 대비해서 거기 있다는것. 영혼의 문제든, 무거운 마음이든, 어두운 양심이든, 무슨 말올 해도 그가 사랑으로 들어주리라는 것. 그가 맡은 일은 사랑하는 일이었고, 그는 최선을 다해서 위로해주고 길잡이가 되어줄터였다. - P85

 십자가의 신이 인간의 비극을 가장하는신이라면, 그리스도의 열정은 그리스도의 광대 짓으로 변한다.
아들의 죽음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마틴 신부는 내게 그 일이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한번 죽은 신은 계속 죽은 신이건만 부활까지 했다. 아들은 그의 입에 영원히 죽음의 맛을 간직하리라. 삼위일체도 그것에 오염되리라. 틀림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악취가 나리라. 공포는 사실이리라. 왜 신은 그런 것을 자신이 떠안으려 할까? 왜 죽음을 인간들에게 남겨두지않을까? 왜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만들고, 완벽한 것을 망칠까?
사랑 때문에, 마틴 신부의 대답은 그랬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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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서커스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동물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열등한 동물이 주인과 사귀기 위해 가장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가장 충직하고 가장 필요한 동반자임을 증명해 보인다. 주인에게 도전하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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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원의 스네이프 교수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가장 뿌리부터단어의 어원부터 가르쳤다. 전설의 강의 내용을 일부 공개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비극(tragedy)‘이란 ‘염소(tragos)‘와
‘노래(ode)‘가 합해진 형태로서, 직역하면 ‘염소의 노래‘가 된다.
웬 ‘염소‘냐 하면, 고대 제의에서 신들에게 바쳤던 제물이 보통염소나 양 같은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는 인간을바쳤다. 또 ‘노래‘는 무엇일까? ‘노래‘는 이야기, 즉 서사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 곧 ‘염소의 노래‘란 것은, 인간이신에게 더 이상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서사를, 메타포를 제물로바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사의 주인공이 실제 인간을 위하여대신 죽고 대속하는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극‘이란 번역어는 오역에 가까운 것이며, 차라리 ‘희생극‘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 할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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