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를 멀리까지 던지면서 오늘의 내가 미래의 나와 연결되어있음을 인식하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단정 짓지 말고 다음번에는 다를 수 있다고 믿기,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기, 고통에반응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자기 안의 힘을 자각하기, 권윤덕작가의 조언은 모두 한곳을 향한다. 우리 모두는 아직 끝나지 않은이야기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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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사유하는 시민 아카데미 강의를 들으며 “코즈모폴리니즘은 무엇인가-동녘”을 함께 읽었다. 이 책에서“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살아감’이다.” 자크 데리다의 이 말이 기저에 흐르는 사상이라고 말한다. 지금 세계는 평화위기, 난민문제, 세계 정의 위기, 생태 위기, 세계 경제 위기, 인권 위기, 문화들의 충돌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겪는 현재 상황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코즈모폴리턴은 지구 표면에 거하는 모든 인류에 대한 환대와 책임에서 나온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우주적이고 거시적 범주로 적용되는 정의에 관한 것이다. 코즈모폴리너티즘은 권력과 지배를 탈식민화화고 탈중심화하는 것이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불가능성에의 열정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연민에 관한 것이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무조건의 환대, 세계적 연대와 책임, 타자에 대한 환영, 타자에 대한 우주적 사랑에 관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사랑하는가" 라는 어찌 보면 매우 상투적인 종교적 물음을,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전환시킨다. 이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유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질문이란 심오한 사유 세계로의 초대장이다.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물음이라고 나는 본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첫째, 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나의 신 개념은 무엇인가. 둘째,사랑함의 의미란 무엇인가. 셋째, 신에 대한 사랑과 내가 이 세계에서사랑하는 것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 P282

 개인적 또는 집단적 자선 행위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과 정치적 제도의 문제들에 관심하는 정의 의식과 연계되지 않을 때, 타자 사랑의 담론은 낭만화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정의 의식이 부재한 자선(charity)에는 그 자신의 시혜자와 수혜자 사이에 ‘윤리적 위세가 형성된다. 자선을 베푸는 시람들이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해서 그들이 윤리적으로도 우월한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 P289

여기에서 한 사람 속에 있는 영원한 것이란죽음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태어남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네이털리티‘이다. 나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나 자신은 물론 타자가 언제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이란 생물학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다양한이에서 새로운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존재한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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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농사에 보탬이 되고자 농과대학에 입학한 스토너가 시를 만나면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부터 이 책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삶의 궤도를 바꿀만한 그런 순간이 시로 찾아오다니..
스토너는 전쟁으로 인해 친구를 잃고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시적하고 이어나간다. 그걸 견디어 내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평범해 보이기도 하다.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도 안타깝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투쟁하기보다는 그냥 참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은 생각. 가르치는 것에서는 물러섬 없다. 그 과정에서 로맥스나 워커와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서 스토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너 나은 지위로 못 올라가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죽음에 이르러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것이 멋지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선택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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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윌리엄 스토너는 젊은 동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분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무명의 존재로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다 간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선조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무표정하고 단단하고 황량한 얼굴을 보여주자는 공통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비록 스토너는 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의식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항상 단단하고 황량한 표정을 짓게 되었던 그 10년 동안, 그런 표정을 공기만큼 친숙하게 알고 있던 윌리엄 스토너는 어렸을 때부터 겪은 전반적인 절망의 징조를 보았다. 좋은사람들이 번듯한 생활에 대한 꿈이 깨어지면서 함께 망가져서 서서히 절망을 향해 스러져가는 것이 보였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도는그들의 눈은 깨진 유리조각처럼 공허했다. 그들은 스스로 처형장을향해 가는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자존심을 품고 남의 집 뒷문으로 다가와 빵을 구걸했다. 그것을 먹으면 다시 구걸에 나설 기운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한때 허리을 꼿꼿이 세우고 자신있게 걷던 이들이 이제는 부러움과 증오가 깃든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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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는 진정한 집단적 개혁과 변화는 범죄적 정치적 죄책만이 아니라,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형이상학적 죄책을 인식하기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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