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사유하는 시민 아카데미 강의를 들으며 “코즈모폴리니즘은 무엇인가-동녘”을 함께 읽었다. 이 책에서“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살아감’이다.” 자크 데리다의 이 말이 기저에 흐르는 사상이라고 말한다. 지금 세계는 평화위기, 난민문제, 세계 정의 위기, 생태 위기, 세계 경제 위기, 인권 위기, 문화들의 충돌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겪는 현재 상황에서 함께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코즈모폴리턴은 지구 표면에 거하는 모든 인류에 대한 환대와 책임에서 나온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우주적이고 거시적 범주로 적용되는 정의에 관한 것이다. 코즈모폴리너티즘은 권력과 지배를 탈식민화화고 탈중심화하는 것이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불가능성에의 열정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연민에 관한 것이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무조건의 환대, 세계적 연대와 책임, 타자에 대한 환영, 타자에 대한 우주적 사랑에 관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사랑하는가" 라는 어찌 보면 매우 상투적인 종교적 물음을,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전환시킨다. 이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유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질문이란 심오한 사유 세계로의 초대장이다. "내가 나의 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이전에 생각하지 않았던 세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물음이라고 나는 본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첫째, 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나의 신 개념은 무엇인가. 둘째,사랑함의 의미란 무엇인가. 셋째, 신에 대한 사랑과 내가 이 세계에서사랑하는 것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 P282

 개인적 또는 집단적 자선 행위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과 정치적 제도의 문제들에 관심하는 정의 의식과 연계되지 않을 때, 타자 사랑의 담론은 낭만화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정의 의식이 부재한 자선(charity)에는 그 자신의 시혜자와 수혜자 사이에 ‘윤리적 위세가 형성된다. 자선을 베푸는 시람들이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해서 그들이 윤리적으로도 우월한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 P289

여기에서 한 사람 속에 있는 영원한 것이란죽음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태어남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네이털리티‘이다. 나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나 자신은 물론 타자가 언제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이란 생물학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다양한이에서 새로운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존재한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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