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파워 - 부와 권력을 결정짓는 토지의 힘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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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청동기 시대 이후로 사유재산이 등장하고 계급이 출현하면서 인간은 모든 재화와 자원을 사유화하기 시작하였다. 토지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농업사회에서 토지는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가장 가치가 큰 자본이었다. 아니 어쩌면 인류에게 있어 토지는 아직까지도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하는 자본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바다나 우주에 살지 않는 이상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땅 위에서 벌어지니까 말이다.


지구의 면적 중 육지의 비율이 29%정도 밖에 된다고 해도 땅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넓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땅이 부족하다. 제한된 자원과 인간의 끝 없는 수요는 경제재로서의 가치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경제재에는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토지 권력이 탄생하게 된 이유이다.


이 책은 토지의 분배오 소유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권력 관계에 주목한다. 여러 국가와 사회에서 토지를 어떻게 분배하고 누가 소유하는가가 인간의 정치와 문화, 사회, 나아가 자연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 책이 꼽은 1500년대~1800년대까지 토지의 분배 방식은 크게 4가지이다. 토착민 토지 소유, 영주-소작농 토지 소유, 지주-소작인 토지 소유, 아시엔다, 소규모 자작농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제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역사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불균등하게 분배된 토지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불균등하게 분배된 토지는 인종간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남녀차별적 사회 구조를 강화한다. 또한 환경파괴를 이끌거나 저성장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의 본질은 동일하다. 바로 토지에 권력 관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권력관계의 현상과 해결방안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우선 저자가 말한 토지권력의 명확한 개념설정이 빠져있다. 아마 그는 푸코의 권력 개념을 토지에 적용한 듯한데, 구체적으로 그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른 권력 관계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토지 권력 즉 토지 분배 문제로 발생한 인종차별, 성차별, 저성장, 환경오염은 토지 라는 단일 요인으로만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사회 저변에 그러한 현상이 있는데 토지문제가 그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관점이다. 원래 사회 문제란 그 문제가 발생하고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심화되는 구조를 가진다. 그 과정에서 토지 권력이 어느정도로 사회 문제를 심화시키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토지와 분배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과연 동아시아적 토지 균등 분배나 사회주의적 토지 균등 분배는 이상에 불과한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지속되는 부동산 문제에서 보듯 토지를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의 공공선을 증진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을까? 토지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사회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이 책은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며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를 바라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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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신화학 - 제국의 시각을 넘어 동아시아 신화학으로
정재서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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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건 인간적인 특성일지도 모른다. 재밌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시청, 드라마 정주행이나 재미있는 소설은 현대인에게도 흔한 취미다. 비현실적 사건, 새로운 세계, 비범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우리는 잠시 괴로운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다녀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건 과거인들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전 세계 수많은 지역, 수많은 민족들은 각자 저마다의 화려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 사람들은 삶의 복잡함과 원인, 자연현상의 경이로움을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고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그리스 로마 만화책을 돌려보고, 티비에서 방영해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봤었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한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은 내가 서양사를 이해하고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좋은가? 이 책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일찍이 지적한 오리엔탈리즘은 신화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언급한다. 프로이드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단순히 신화의 영역, 서양인의 특성을 넘어 인류 전체의 무의식에 내재된 공통된 특성으로 간주된다. 이 책은 그러한 점 또한 결코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 정답은 중국신화에 있는가? 그 또한 그렇지 않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시노센트리즘은 다문화 사회 문화간의 존중과 동등성을 이해하는 또 다른 장애물로 존재한다. 또한 우리는 현대 중국의 영향으로 중국을 하나의 단일하고 고유한 역사성을 지닌 집단으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중국신화를 현대 중국인들의 역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한족 또한 단일한 민족이 아니며 중국도 단일한 국가가 아니다. 중국신화 속에는 다양한 집단들의 이야기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층위를 고발하고 분석하는데 주목한다. 결국 한국의 문화에 중국 신화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해서 굴욕적으로 여기거나 그것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반영된 다층성, 문화의 공유성을 각자의 입장에서 읽어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이 저자가 말한 제3의 신화학이다.


신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동양과 서양의 신화 속 이야기들, 신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해보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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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증보판
바트 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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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크리스트교 박해가 심해지자 사도 베드로는 순교를 피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피난길에서 베드로는 자기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예수를 만난다. 베드로가 묻는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예수는 자신이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러 로마로 간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가 결국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야기의 사실성은 확인할 수 없지만 순교를 앞둔 베드로의 고뇌와 결심, 그리고 신앙의 비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교회를 두고도 주께 기도하고 싶다. 쿠오바디스 도미네. 한국교회를 두고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극우와 손잡은 그들에게 이제 예수의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다. 부정부패와 교회세습, 탈세와 성범죄, 차별과 혐오의 언어와 마몬 숭배 등 이제 한국교회는 계시록에 나오는 큰성 바빌론,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아마 예수께서 채찍을 들고 분개하시던 예루살렘 성전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이성과 무지, 윤어게인과 부정선거론, 부동산과 맹목적 세뇌만 자리잡은 한국교회는 예수를 따르지 않는 목사,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침묵 및 동조한 목사들과 교인들에 의해 망가져버렸다.


그런데 이들도 성경을 읽는다.(읽는 것처럼 보인다.) 통독을 하고 필사를 하고 큐티를 한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는 예수를 떠나게 되었나. 이것이 나의 궁금증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신의 말씀이다. 예수께서도 말했듯이 성경은 일점일획도 뺄 수 없는 책이다. 그런데 소위 기독교인이라 자칭하는 자들이 이 성경을 근거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렇다면 정말 성경은 무오류한가? 이 책은 그러한 기독교인의 (어찌보면 잘못된) 믿음에 균열을 낸다. 


이 책에서 설명하듯 성경은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완전한 책을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다. 또한 이 성경은 다른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맥락이 스며 들어있고, 그 시대의 특수성과 한계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역사적 고전인 성경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사와 변개에 초점을 맞춘다.


애초에 성경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같은 예수의 삶을 서술하더라도 마가의 눈, 누가의 눈, 마태의 눈, 요한의 눈이 달랐기에 애초부터 성경의 단일한 원본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당연하다. 사건이 관찰자의 시선과 가치관, 기호, 문화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는 것은 텍스트의 기본 전제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인쇄 출판업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필사를 통해 성경을 복제했다. 그 과정에서 교리적 이유, 사회적 요인 등에 의해 변개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인정하고 성경을 그 시대의 사회와 역사 속에 위치시킨 이후에야 신의 뜻과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작업의 필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성경 텍스트에 오류와 변개가 있다고 해서 기독교가 허구이거나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의 세세한 잔가지들, 샤머니즘적인 요소, 구시대적인 한계를 제거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일관되게 인류를 향해 전하는 신의 뜻과 가르침을 이해해야 한다.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다. 진리를 찾는 작업에는 이성이 필요하다. 지금 기독교에서 상실한, 신이 준 이성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렸을 적 성경 무오류설을 믿는 신실한 신앙인에서 현재 행복한 불가지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의 신앙은 틀린 것일까? 그는 결국 예수의 길에서 이탈한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틀린 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의 참 뜻을 왜곡하고 남을 박해하는데 성경을 이용하며,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것보다는 겸손히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차분히 믿음의 지점을 성찰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한다. 어쩌면 거기에는 단단하지만 잘못된 확신보다 불안정한 행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 책은 한국 기독교에 그러한 이성과 성찰을 가져다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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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문기행 - 국문학자의 걸음으로 기록된 일본
이경재 지음 / 소명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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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여행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 했을 때, 그 여행의 목적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휴식을 위해, 누군가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누군가는 색다른 체험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어느 목적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가든 여행은 고생이다. 적은 돈과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많아 여행을 떠나 하루하루의 일정을 꽉꽉채우다가 문뜩 '왜 여행와서 이 고생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다. 그러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국여행 중 찾게 되었다.


영국에서 투어를 신청해서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스톤헨지로 가던 중 가이드분께서 여행의 원래 뜻을 가르쳐 주었다. 원래 여행은 근대 유럽에서 Grand Tour라고 불리며 귀족이나 그들의 자제들이 고생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럼 왜 굳이 고생스럽게 여행을 떠났을까? 그 이유는 바로 식견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다르다는 것은 불편하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는 여행자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런데 그 새로움이라는 감정은 나의 익숙한 일상과 시선 그리고 관점에 변화를 준다. 나의 삶과 생각을 타자화하고 새로운 문화와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 나의 지도교수님도 역사 연구자들은 많은 답사를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


이 책은 국문학자가 연구년동안 일본 이곳저곳을 답사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이 깨닫고 배운 내용을 담은 책이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일본 곳곳에 녹아있는 문학, 삶,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찾아다닌다. 방문 지역도 많다. 저자는 도쿄를 비롯하여 훗카이도, 오키나와, 마쓰야마, 히로시마 등을 방문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본 각 지역에 얽힌 일본의 문화, 한국과의 연결점을 간결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은 문장으로 풀어낸다.


특히나 문학 평론가의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며 장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일본의 문학가들이 살았거나 잠시 거주했던 지역, 혹은 작품에 반영된 곳을 둘러보며 문학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그 가운데에서 디아스포라와 사회적 약자, 전쟁의 피해와 기억 등의 문제를 언급한다. 역사학자가 역사 유적을 방문하여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감과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문학 평론가는 역사적 지역에서 어떠한 것을 보고 느끼는지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듯하다. 저자는 일본이라는 거울을 활용해 자신의 정체성, 식민지의 기억, 문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일본여행의 재미를 느끼거나 문학에 대해 배우는 것을 넘어 국문학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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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천재 고려 - 최강대국에 맞선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
이익주 지음 / 김영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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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주목 받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면 역시 고려시대가 아닐까 싶다. 고려왕조가 대략 500년 지속되었으니 그리 짧은 것도 아니고, 한 때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아마 중국과도 대등히 맞섰던 강성한 고구려,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우리 민족사의 아픔인 일제강점기에 비해 고려는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어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고려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시대이다. 고려는 신라에 이어 두 번째로 민족 통일을 이루었고, 통일신라 때보다도 영토는 넓어졌다. 문신들이 지배한 시기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역사에서 특이하게 무신들의 정권이 100년동안 유지된 시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고려다.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에 위치시킨 것도 고려시대 때부터이다. 이처럼 고려는 그 자체로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고려의 여러가지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외교에 중점을 둔 책이다. 고려는 우리역사상 가장 복잡한 국제관계에 직면해야만 했던 나라이다. 중국과 일원적인 외교관계를 주로 맺었던 시기들과는 다르게 고려가 성립할 즈음 북쪽에서는 한족의 송나라뿐만 아니라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이 난립하였다. 기존 중화라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도, 일원적인 조공과 책봉이라는 관계도 상당히 많이 변화하게 된다. 결국 고려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때로는 변칙적이고 때로는 실리적인 외교관계를 구축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고려는 국가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교과서에서 북방민족과의 관계를 두고 주로 취하는 침략과 대응의 관점이 아닌 외교라는 점에 주목해서 당시의 국제관계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려는 요, 금, 원 등의 국가들과 군사적인 충돌을 빚기도 했지만 그 전쟁들의 전후 과정은 결국 외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나 저자는 고려가 외교정책을 세우게 된 원인과 결과를 큰 흐름에서 분석하고, 고려 외교의 유연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으로 고려의 외교관계를 다소 탈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점도 흥미롭다. 고려의 칭제건원이라던가, 원간섭기 고려의 위상 등에 관해 당시 고려의 입장과 국제 역학관계에서 서술하고 있어 현재의 한국사 연구 경향을 충실히 반영하는 느낌이다. 내용과 문체도 어렵지 않아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대중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만약 미국이 민주주의를 포기한다면?', '만약 미국과 유럽이 전쟁을 벌인다면?' '21세기에 다시 제국주의 국가들이 등장한다면?' 과 같은 3류소설에서도 안 먹힐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하고, 국제 사회에서 가장 모범이 되는 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세계의 질서를 만들어 나갈 힘은 없다. 그렇다면 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쌓아올린 진보와 평화의 가치가 무너져가는 오늘날의 국제 현실을 과연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해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은 고려의 외교를 통해 다시 정글이 되어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역사적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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