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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충격과 유산 ㅣ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48
김영숙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5년 6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와 해냄에듀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곧이어 타이완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며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였다. 일제의 식민 통치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특수성과 더불어 일본만의 독특한 정치, 문화가 착종된 것이었다. 36년간 식민 통치를 겪은 우리민족에게 일제의 식민통치는 고통과 굴욕 그 자체였다.
일제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통해 폭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제가 점령하고 지배한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연구서이다.
한국사에서는 일제의 통치에 관해 주로 조선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제국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은 당연한 자신의 영토였고, 자신들의 세력을 점차 뻗어나가게 되었다. 즉 일제의 통치 정책은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의 관점에서 당시의 통치 제도와 일제가 추구한 목적을 살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 동안 우리 역사학계가 소홀히 하였던 제국 일본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은 총 8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대동아공영권의 위계와 질서, 일본의 동남아 침략과 대동아공영권 구상, 일제의 인도 차이나 지배, 동남아 지역에서의 전시 금융정책, 베트남 지배, 인도네시아 지배, 대동아 공영권의 붕괴와 남양군도 및 조선인 동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공부를 해보면서 늘 조선이 겪은 식민통치만을 공부했는데, 동남아시아가 겪은 일제의 통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제가 동남아시아를 지배할 시기에 이미 일제는 전쟁에 돌입한 이후였기에 수탈의 측면에서도 조선과는 달랐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의 지배에 있어서도 유럽국가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주제만 살펴보아도 이 책이 한국사학에 던지는 화두는 신선하다. 물론 한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적지만 식민지 조선과 일제의 관계도 식민지와 종주국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국 일본이 추구하고자 한 제국의 모습과 그 속에서 조선의 위치를 살벼보는 것 또한 역사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이다.
그간 한국에서는 3.1운동과 문화통치, 조선총독부와 조선의 민중,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일제의 전쟁 등 조선vs일제의 구도로서만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제에게 조선은 류큐, 타이완, 만주국과 같이 일본이라는 제국을 이루는 한 지역이었고, 이러한 전체의 틀에서 좃조선의 위치는 어떠했는지, 일제가 추구한 궁극적 목적에서 조선을 어떠한 대상으로 활용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제국주의 체제가 단순히 동북아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동남아시아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조망하고 있다. 이러한 공통의 비극적 역사 경험은 단순히 사실의 이해나 관점의 수용을 넘어 아시아의 국가들이 서로 공통된 식민 경험을 공유하고, 바람직한 아시아의 협력과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기초가 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서 파괴와 살육, 폭력과 대립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국제 사회에서 공통의 비극적 경험을 반추하고 협력과 화해의 질서를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공동체들이 구축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