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속죄 게임 - 하드보일드 스릴러 단편집
김창현 / 책보요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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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김창현 작가의 '속죄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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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접하던 김창현 작가의 하드보일드 작품들은 깡패, 건달, 킬러,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등장해 서로 죽고 죽이는 남자들의 진한 땀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이번 작품 '속죄 게임'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나쁜 놈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마치 다른 작가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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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떠보니 잔혹한 생존 게임이 시작된다. 여러 규칙이 공개되고, 목숨을 위협하는 술래가 존재하는 이 설정은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전형적인 데스게임 장르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속죄 게임'은 그보다 훨씬 묵직한 주제의식을 품고 있다. 제목 그대로 '죄를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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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막상 게임의 대상이 된 인물들의 죄를 돌아보면 '이게 이렇게까지 죽을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잊어버린 잘못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결국 별다른 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다 자부하는 나 역시, 소설 속 참가자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 내가 잊고 살던 어떤 죄를 고백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섬뜩한 상상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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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떠 중학생 시절의 죄를 고백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면, 십중팔구 납치된 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일진)'일 거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비틀기를 시도한다. 늘 당하고 맞고 살던 '피해자'가 오히려 자신의 죄를 떠올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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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 작가의 단편 작품들을 보면 정말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강렬한 인상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단편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큰 하나의 흐름이 있는 연작단편집의 형식을 하고 있다. 재미있지만 늘 짧아서 아쉽게 느껴졌던 내게는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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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재미와 깊이 있는 메시지를 모두 잡은 웰메이드 스릴러다. 데스게임 장르를 좋아하거나, 인간의 심리를 깊게 파고드는 서사를 선호하는 분들에게 김창현 작가의 '속죄 게임'을 기꺼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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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페이스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더픽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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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치넨 미키토의 본격 의학 스릴러 '리얼 페이스'다. '의사 겸 소설가'라는 작가의 압도적인 장점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난 작품이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단번에 내 최애 작가가 되어버린 치넨 미키토. 그의 작품을 워낙 즐겨 읽고 있는데, '병동' 시리즈부터 '이웃집 너스에이드', '한밤중의 마리오네트'까지 대부분의 작품에 의료인이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이야기의 몰입을 돕는데, 그러면서도 추리소설답게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반전을 숨겨두는 것이 치넨 미키토만의 시그니처다. 이제 의학 스릴러 하면 그 말고는 다른 작가를 떠올릴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이번에 출간된 '리얼 페이스'는 그야말로 치넨 미키토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 그 자체였다. 가난한 마취과 전문의 '아사기리 아스카'는 선배의 소개로 성격은 괴팍하지만 실력은 일본 최고인 천재 성형외과 의사 '히이라기 다카유키'의 클리닉에 취업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히이라기가 평범한 의사가 아니라는 것. 돈이 최고라 믿으며 스스로를 의사와 아티스트 그 사이 어디쯤으로 생각하는 자의식 과잉에, 수술비는 최소 1,000만 엔부터 시작한다. 심지어 돈만 된다면 법을 어기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다.



소설 '리얼 페이스'가 특히 재미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인물들의 입체적인 캐릭터성이다.

올곧은 성격에 미용 성형에 거부감을 지녔지만,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과 타협할 줄도 알고 법도 조금은 어길 각오가 된 '열혈 바보' 마취과 의사 아스카.


"세상의 '정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방관자의 다수결로 정해진 '정의' 같은 건, 개똥만큼의 가치도 없어." p155


말투는 가볍고 행동은 속물스러우며 돈을 밝히지만, 수술대 앞에선 한없이 진지해지는(심지어 '4년 전'의 어두운 비밀을 숨긴) 천재 의사 히이라기.

여기에 히이라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정체불명의 미녀 간호사 사나에의 과거까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조합만으로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둘째, 자연스럽게 녹아든 의학적 전문성이다. 작가는 이번에 '성형수술' 자체를 주 소재로 활용해 의사로서의 지식을 세밀하게 녹여냈다. 덕분에 미스터리 파트 외에도 수술 에피소드 자체에서 오는 색다른 재미가 상당하다. 히이라기와 아스카의 경쾌한 만담 같은 대화 속에는 성형외과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 있고, 디테일한 수술 장면 묘사는 덤이다.


셋째, 결국 '반전'으로 통하는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다.

이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경험했기에 "이번엔 어떤 통렬한 반전으로 내 뒤통수를 때릴까?"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도, 그 높은 기대치를 훌륭히 충족시킨다. 4년 전 발생한 성형미인 연쇄살인의 용의자가 잡히지 않은 가운데 유사 범죄가 다시 일어나고, '얼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계관' 안에서 과연 누가 연쇄살인마 '가구라 세이이치로'인지 직접 추리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멋지게 틀리고 작가에게 속아 넘어갔지만.)


여기에 보너스로, 이 작품이 연작 단편집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마치 '명탐정 코난'이 검은 조직을 쫓는 와중에 주변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처럼, 두 주인공은 연쇄살인마 가구라와 얽히는 동시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을 수술하며 그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힐링 미스터리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수십 세 연하의 새 부인의 얼굴을 사망한 전처의 얼굴로 성형해달라는 재벌가 노인의 에피소드는 가슴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쉽게 읽히는 필력 속에 숨겨둔 완벽한 반전 설계, 그리고 중간중간 터지는 유머 코드까지. 역시나 이제는 믿고 보는 작가라 부를 수밖에 없는 치넨 미키토의 '리얼 페이스'.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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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킥 걸
전건우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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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의 띠지에는 '괴물 잡는 괴물 소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의미로 이 띠지만큼 이 소설을 잘 표현한 문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사이킥걸은 제목 그대로 정신정인 힘만으로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사이코키네시스 여고생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 속 세계관에서는 염력 자체는 희소성을 가지지만 또 그렇다고 유일한 초능력은 아니다.


무려 인간을 잡아먹고 사는 식인귀부터 시작해서 한 때 사람의 피를 마셨으나 지금은 인공혈액을 마시며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흡혈귀까지 다양한 인외의 존재들이 함께 공존한다.


금지된 아파트라는 앤솔로지에서 전건우 작가의 이면세계를 그린 단편 괴리공간을 접했었는데 사이킥 걸은 한층 더 확장된 세계관과 케릭터로 장편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재미를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 작품, 도심 속에 존재하는 괴물들을 상대하는 판타지 장르의 도쿄 구울이나 피안도 혹은 체인소 맨이 떠오를 수 있지만 그런 작품들과의 차별점이 존재한다. 나는 이 소설을 단순 판타지소설이 아니라 SF판타지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비교적 초반에 드러나는 식인귀의 정체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식인귀들의 정체는 지구로 유배당한 외계종족의 범죄자들이었던 것! 평범한 인간은 모르는 이면세계에 존재하는 괴물의 정체를 오컬트가 아닌 SF요소로 접근하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맛있게 버무려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소년만화처럼 일종의 배틀장르로 전개된다. 염동력을 가진 소녀가 우연히 식인귀를 마주한 후 능력을 각성하고 식인귀를 처치하는 처단자로 활동하는 이능력 배틀물의 정석과도 같은 전개로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라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한다.


거기에 이능력 없이 순수한 검술로 식인귀를 제압하는 케릭터와 심지어 흡혈귀 처단자까지, 소설을 읽으며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다양한 케릭터들이 등장한다.


오늘 읽은 소설 사이킥 걸은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없이 어릴 적 만화책을 넘기던 감성으로 즐길 수 있었던 액션판타지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며 마치 만화책을 읽듯 장면 하나하나가 떠올랐고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넘긴 후에는 언젠가 이 작품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시원하게 터트리고 반으로 가르고 믹서기 처럼 갈아보이는 액션이 가득한 초능력 액션 스릴러 소설 사이킥걸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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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
사쿠라이 치히메 지음, 김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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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치히메의 소설 '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는 '최애'라는 일상적인 단어 뒤에 숨겨진 비정상적인 집착과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단순히 한 오타쿠의 선을 넘어버린 사랑 이야기를 넘어,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감춰진 음습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소설은 아이돌 생태계에 대한 묘사가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무대 위 화려함뿐만 아니라 멤버 간의 미묘한 기 싸움과 불화, 아티스트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만 보는 기획사의 냉혹한 논리가 적나라하다. 특히 인스타그램, 실시간 스트리밍, BL 문화 등 최근의 덕질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현장감이 넘친다.


전에 다이가가 나와 히로히토가 관계하는 인터넷 소설을 보여줬는데, 그 내용이 너무 역겨운 나머지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중략

제발 2.5차원에서 멈춰. 너희가 하는 망상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p66


진짜 BL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중략-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남자 친구를 사귀라고. 그런 여자중에 멀쩡한 애들은 없을 거야. 분명 못생겼겠지. p83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캐릭터의 입을 빌려 BL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나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는 팬덤 내부의 복잡한 시각과 갈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결핍과 결함이 뚜렷하다. 주인공 하나코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돌 이사미를 유일한 구원으로 삼지만, 그 감정은 이내 광기로 변한다. 하나코 주변 인물들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타인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 폭력성, 어린 대상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나 부적절한 만남을 통한 금전 거래, 심지어 불법 총기 개조까지 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여러 캐릭터에 분산 배치하며 사회 저변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낸다.


하나코가 믿었던 이사미의 완벽한 이미지가 깨지는 과정은 팬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공포를 자극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이 본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껍데기였음을 깨달았을 때, 팬의 마음은 배신감을 넘어 파괴적인 충동으로 이어진다. "아름답지 않은 최애는 필요 없다"는 대목은 뒤틀린 소유욕의 정점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결말이다. 하나코는 자신의 행동을 숭고한 선택이라 믿으며 나아가지만, 마지막 순간 자신과 똑같은 논리로 행동하는 타인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행한 일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같은 행동은 이해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인간의 자기합리화가 어디까지 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기심을 포장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현대 팬덤 문화의 명암과 인간의 일그러진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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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엄마가
일리아나 잰더 지음, 안은주 옮김 / 리드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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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죽은 자로부터 편지가 배달된다는 컨셉은 사실 미스터리 장르에서 꽤 흔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사랑을 담아, 엄마가'는 그 뻔한 시작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멱살을 잡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책을 펴기 전에는 그저 부모의 편지를 통해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눈물 콧물 짜며 오해를 푸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일일 거라 넘겨짚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미스터리 명가 리드비에서 나온 책답게 그런 안일한 예상을 박살 낸다. 그 안에는 음습하고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진짜 스릴러가 도사리고 있다.

이야기는 전 세계가 사랑한 스릴러의 여왕 E.V. 렌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딸인 매켄지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무덤덤하다 못해 시니컬하다. "엄마는 죽어도 싸다"고 말할 정도로 엄마를 증오하는 매켄지의 1인칭 시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비극적이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 법도 한데, 매켄지 특유의 블랙 유머 섞인 말투 덕분에 마치 넷플릭스에서 잘 만든 미스터리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전개가 유쾌하고 리드미컬하다. 엄마의 추모식 날 배달된 의문의 편지를 시작으로 매켄지의 현재와 편지 속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이때의 몰입감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매켄지와 함께 여러 가지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엄마는 정말 단순한 사고로 죽은 게 맞는지, 도대체 누가 이 편지를 대신 보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인 ‘엄마의 과거는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히 소름 돋는 지점은 매켄지가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느끼는 공포다. 엄마가 생전에 쓴 그 잔인하고 섬뜩한 스릴러 소설들이 실은 상상력이 아니라, 자기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자기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의 그 서늘함이 끝내준다. 작중에서 문학계의 대가로 설정된 엄마답게, 편지 내용조차 가장 궁금한 대목에서 딱 끊어버리는 밀당 솜씨는 내 진을 다 빼놓을 정도다.


공간 묘사도 일품이다. 엄마의 고향인 네브라스카의 우울하고 황량한 분위기는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음산한 기운을 완성한다. 특히 ‘고아들이 기괴한 일을 저지르며 놀던 장소’ 같은 묘사는 머릿속에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1부 끝에서 터지는 반전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인데,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며 더욱 속도를 높인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후반부의 특정부분의 독특한 추리 구조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은 그럴싸한 거짓으로 독자를 속여 반전을 준 뒤에야 진실을 하나씩 꺼내놓는데, 이 소설은 그 순서를 비틀어버린다. 진실을 먼저 보여주고 해결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 몹시 신선했고, 그래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모든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 위로 미스터리 소설에 딱 적절한 수준의 사랑과 성장이 담긴 청춘 드라마가 묘하게 섞여 있다는 점도 좋았다. 미스터리와 휴먼드라마가 딱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들이 좋아할 비율로 섞여있어 책을 덮은 뒤 여운도 진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재미있는 스릴러 한 권을 읽은 게 아니라 완성도 높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끝까지 감상한 기분이다. 일리아나 잰더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는데, 서사를 이렇게 탄탄하게 쌓으면서 반전과 감동까지 챙기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 내공은 아니다. 스릴러 오타쿠라면 이 책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도파민의 유혹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 이름이 앞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꽤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와 반전 그리고 스릴러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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