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엄마가
일리아나 잰더 지음, 안은주 옮김 / 리드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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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죽은 자로부터 편지가 배달된다는 컨셉은 사실 미스터리 장르에서 꽤 흔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사랑을 담아, 엄마가'는 그 뻔한 시작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멱살을 잡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책을 펴기 전에는 그저 부모의 편지를 통해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눈물 콧물 짜며 오해를 푸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일일 거라 넘겨짚었다. 하지만 이 책은 미스터리 명가 리드비에서 나온 책답게 그런 안일한 예상을 박살 낸다. 그 안에는 음습하고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진짜 스릴러가 도사리고 있다.

이야기는 전 세계가 사랑한 스릴러의 여왕 E.V. 렌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딸인 매켄지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무덤덤하다 못해 시니컬하다. "엄마는 죽어도 싸다"고 말할 정도로 엄마를 증오하는 매켄지의 1인칭 시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비극적이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 법도 한데, 매켄지 특유의 블랙 유머 섞인 말투 덕분에 마치 넷플릭스에서 잘 만든 미스터리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전개가 유쾌하고 리드미컬하다. 엄마의 추모식 날 배달된 의문의 편지를 시작으로 매켄지의 현재와 편지 속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되는데, 이때의 몰입감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매켄지와 함께 여러 가지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엄마는 정말 단순한 사고로 죽은 게 맞는지, 도대체 누가 이 편지를 대신 보내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인 ‘엄마의 과거는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히 소름 돋는 지점은 매켄지가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느끼는 공포다. 엄마가 생전에 쓴 그 잔인하고 섬뜩한 스릴러 소설들이 실은 상상력이 아니라, 자기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자기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의 그 서늘함이 끝내준다. 작중에서 문학계의 대가로 설정된 엄마답게, 편지 내용조차 가장 궁금한 대목에서 딱 끊어버리는 밀당 솜씨는 내 진을 다 빼놓을 정도다.


공간 묘사도 일품이다. 엄마의 고향인 네브라스카의 우울하고 황량한 분위기는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음산한 기운을 완성한다. 특히 ‘고아들이 기괴한 일을 저지르며 놀던 장소’ 같은 묘사는 머릿속에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1부 끝에서 터지는 반전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인데,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며 더욱 속도를 높인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후반부의 특정부분의 독특한 추리 구조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은 그럴싸한 거짓으로 독자를 속여 반전을 준 뒤에야 진실을 하나씩 꺼내놓는데, 이 소설은 그 순서를 비틀어버린다. 진실을 먼저 보여주고 해결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 몹시 신선했고, 그래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모든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 위로 미스터리 소설에 딱 적절한 수준의 사랑과 성장이 담긴 청춘 드라마가 묘하게 섞여 있다는 점도 좋았다. 미스터리와 휴먼드라마가 딱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들이 좋아할 비율로 섞여있어 책을 덮은 뒤 여운도 진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재미있는 스릴러 한 권을 읽은 게 아니라 완성도 높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끝까지 감상한 기분이다. 일리아나 잰더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는데, 서사를 이렇게 탄탄하게 쌓으면서 반전과 감동까지 챙기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 내공은 아니다. 스릴러 오타쿠라면 이 책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도파민의 유혹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 이름이 앞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꽤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와 반전 그리고 스릴러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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