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
사쿠라이 치히메 지음, 김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쿠라이 치히메의 소설 '내가 최애를 죽이기까지'는 '최애'라는 일상적인 단어 뒤에 숨겨진 비정상적인 집착과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단순히 한 오타쿠의 선을 넘어버린 사랑 이야기를 넘어,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감춰진 음습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소설은 아이돌 생태계에 대한 묘사가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무대 위 화려함뿐만 아니라 멤버 간의 미묘한 기 싸움과 불화, 아티스트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만 보는 기획사의 냉혹한 논리가 적나라하다. 특히 인스타그램, 실시간 스트리밍, BL 문화 등 최근의 덕질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현장감이 넘친다.


전에 다이가가 나와 히로히토가 관계하는 인터넷 소설을 보여줬는데, 그 내용이 너무 역겨운 나머지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중략

제발 2.5차원에서 멈춰. 너희가 하는 망상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p66


진짜 BL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중략-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남자 친구를 사귀라고. 그런 여자중에 멀쩡한 애들은 없을 거야. 분명 못생겼겠지. p83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캐릭터의 입을 빌려 BL 문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나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는 팬덤 내부의 복잡한 시각과 갈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결핍과 결함이 뚜렷하다. 주인공 하나코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돌 이사미를 유일한 구원으로 삼지만, 그 감정은 이내 광기로 변한다. 하나코 주변 인물들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타인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 폭력성, 어린 대상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나 부적절한 만남을 통한 금전 거래, 심지어 불법 총기 개조까지 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여러 캐릭터에 분산 배치하며 사회 저변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낸다.


하나코가 믿었던 이사미의 완벽한 이미지가 깨지는 과정은 팬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공포를 자극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이 본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껍데기였음을 깨달았을 때, 팬의 마음은 배신감을 넘어 파괴적인 충동으로 이어진다. "아름답지 않은 최애는 필요 없다"는 대목은 뒤틀린 소유욕의 정점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결말이다. 하나코는 자신의 행동을 숭고한 선택이라 믿으며 나아가지만, 마지막 순간 자신과 똑같은 논리로 행동하는 타인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행한 일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타인의 같은 행동은 이해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선사한다. 인간의 자기합리화가 어디까지 비대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기심을 포장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현대 팬덤 문화의 명암과 인간의 일그러진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