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되살아난다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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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추리소설추천 나카야마시치리 최초의 장편소설 마녀는되살아난다 서평 블루홀식스 출간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신작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를 비롯해 '비웃는 숙녀 시리즈',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 빠지게 된 '표정 없는 검사 시리즈'와 '이누카이 하야토 시리즈'까지, 이렇게나 다작을 하는데도 각각의 시리즈가 그 색채가 명확하고 각기 다른 재미를 준다는 점은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를 믿고 보는 작가로 꼽을 수 있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모든 재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반전의 제왕'이란 수식어 답게 임팩트 있는 결말의 반전 때문일 것이고.


오늘 읽은 책은 이렇게 수많은 작품들을 성공시킨 나카야마 시치리 월드의 시작점, 최초의 장편 미스터리 '마녀는 되살아난다'로 무려 제 6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최종 심사 후보작이라고 한다.


소설 '마녀는 되살아난다'는 문을 닫고 폐쇄된 제약회사 스턴버그의 일본 지사의 부지 근처에서 제약회사의 직원이 충격적인 모습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되며 시작한다. 소설은 시체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는데 지뢰를 밟은 것 처럼 혹은 지하철로 뛰어든 사람처럼, 단순한 토막이 아닌 저며낸 것 처럼 수십조각으로 나뉘어 살해당한 사체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지대한 복선이 숨겨져 있었음을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야 깨닫게 되며 다시 한 번 전율하게 된다.


소설은 작중 최고의 배후이자 거악인 독일계 제약회사 스턴버그의 정체를 미리 알려주고 진행되는데, 마치 731부대를 연상케하는 유대인들에게 인체실험을 서슴없이 일삼던 나치의 밑에서 이익을 도모하던 스턴버그의 존재를 통해 추리의 실마리를 던지는 동시에 작품의 몰입을 돕는다.


스턴버그에서 개발된 각성제를 통한 무차별 살인이 수차례 벌어지며, 제약사의 직원은 살해당하고 근처 마을에서는 4개월된 영아를 비롯해 작은 소동물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소설이 필력의 대가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단순히 이야기가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건을 둘러싼 등장인물, 형사 마키하타와 구조는 저마다 가슴속에 어두운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그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러한 입체적인 케릭터 표현은 최근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이 한방의 강력한 반전을 위해 작위적인 케릭터를 사용하는 추세와 다르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바닥부터 다져올린 탄탄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은 할 수 없지만 작품의 후반부에 밝혀지는 사건의 배후와 범인의 정체는 충격 그 자체.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왜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가 후에 '반전의 제왕'으로 불리는지 단박에 알게되는 말 그대로 경악으로 가득한 결말이였다.


결국 미스터리 소설은 읽는 동안 다음페이지가 궁금해지고, 결말의 반전이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숨돌릴 틈 없이 마지막페이지 까지 읽고 기분좋은 결말의 배신감으로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미스터리 소설 '마녀는 되살아난다'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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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의 어둠
사와무라 이치 지음, 김진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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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사와무라 이치 작가의 초단편 괴담집 '한치앞의 어둠'.

무려 그 사와무라 이치 작가의 초 단편 괴담집이라니 기대가 안될 수 없는 조합이다.


내가 일본 호러 소설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사와무라 이치 작가인데 그 이유는 정통 호러 소설의 공포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딱 좋을 정도의 추리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고 시시리바의 집에 와서는 소년만화 라노벨 스타일까지 녹여내 장르적 변주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무려 히가 자매 시리즈의 세계관의 귀신은 미사일까지 막아낼 수 있다는, 여타 다른 공포소설의 세계관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독특함도 사와무라 이치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다.


다시 한 치 앞의 어둠으로 돌아와 이 작품은 그간 비교적 장편으로 더 익숙하게 느껴졌던 사와무라 이치 작가의 초단편 괴담집이라 더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공포소설의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면 그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미스터리 추리 요소등을 더하는 등의 변주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초단편이라는 분량에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등골 서늘한 공포감과 여운을 줄 수 있기 때문. 일반 단편도 아닌 초단편 괴담집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번 신간 '한 치 앞의 어둠'에는 무려 315페이지에 21편의 단편을 가득채워 넣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괴담 하나에 속표지를 포함해 평균 15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선생님, 있잖아요'와 같은 작품은 단 세페이지만으로 여운 가득한 괴담으로 완성된다.


한 치 앞의 어둠의 리뷰를 작성하며 스물한편의 괴담들에 대해 모두 소개할 순 없으나 정말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이 모여 있는 것이 마치 이 많은 괴담중에 네 취향에 맞는 것 몇개쯤은 있겠지~ 하는 작가의 자신감이 보이는 듯 하다.


'명소'와 같은 요즘의 트렌드에 딱 어울리는 기승전결이 명확하며 충격적인 반전까지 갖춘 단편괴담이 있는가하면 '다리아래'나 '수로', '기미지마군'같은 전통적인 이미지의 일본 괴담처럼 끝맛이 씁쓸하며 알 수 없는 찝찝함을 안겨주는 괴담도 있었다. 단 세 페이지로 완성되는 '선생님, 있잖아요'는 이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괴담의 유형도 다양했다. 오직 가정통신문의 형태로 나폴리탄 괴담 스타일로 진행되는 '가정통신문'을 비롯해 오래된 호텔 벽의 낙서로 진행되는 괴담도 존재했다. 말 그대로 사와무라 이치 작가의 아이디어를 무한정 쏟아내는 것 같아 괴담매니아라면 정말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만원 전철'과 '다리 아래'였는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어디까지인지 놀라울 정도로 영상을 보는 듯한 감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일본 호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오래된 일본의 드라마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를 재밌게 시청했다면 싫어할 수 없는, 호러 오컬트 매니아들을 위한 초단편괴담집 '한 치 앞의 어둠'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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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이모션
이서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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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모션 sf미스터리소설 이서현지음 해피북스투유 출간 서평


이서현 작가의 소설 노 이모션은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 위에 본격적인 추리 미스터리를 촘촘하게 얹은 작품이다. 이 소설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이라는 요소를 기술로 통제하는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소설 노 이모션의 세계에서 인류는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가장 쓸모없다고 판단된 요소인 ‘감정’을 제거하는 시술을 개발한다. 성공 확률 70%의 위험한 감정 제거 시술을 통과한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고, 감정의 유무는 곧 능력과 신분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감정을 제거한 사람과 감정을 가진 사람은 거주 지역부터 수익 구조까지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간다.


주인공 강하리는 감정 제거자와 감정 보유자 사이에서 태어난 ‘감정 무소유자’다. 감정 무소유자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갖지 않은 존재로, 성장 과정에서 대부분 감정 관련 뉴런이 복구되며 감정을 얻게 된다. 하지만 강하리는 예외적인 존재다. 감정이 생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나이인 30세를 앞두고도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며, 인류 최초의 ‘영구적 감정 무소유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강하리는 최초의 감정 제거자 어스가 지배하는 초거대 기업 노이모션랜드의 차세대 아이콘으로 주목받는다. 감정이 없는 직원들로만 구성된 이 기업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강하리는 그 상징적 존재가 될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강하리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엽서가 도착하고, 동시에 그녀의 옆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추리 국면으로 접어든다.


소설은 카드의 발신자, 살인 사건의 배후, 그리고 감정을 둘러싼 인물들의 숨겨진 정체를 하나씩 드러내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감정을 제거한 자, 감정을 가진 자, 감정을 제거했다가 다시 돌아온 자,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없던 자, 그리고 스스로 감정을 복구한 자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끝까지 의심하게 된다.


노 이모션은 SF적 설정을 단순한 배경 장치로 소비하지 않고, 미스터리의 핵심 장치로 적극 활용한다. 감정의 유무가 단서가 되고, 감정을 숨기는 행위 자체가 트릭이 되는 전개는 마치 특수 설정 미스터리를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반전과 사건의 연결 방식 또한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탄탄하게 구축된 세계관 위에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추리, 그리고 설정을 끝까지 활용하는 장르적 완성도 덕분에 노 이모션은 SF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감정이 신분이 되는 세계라는 독특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장르 소설로서의 재미가 분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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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쓸모 - 하루 1%의 축적이 만든 압도적 차이
억만장자 메신저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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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자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서태웅이 눈 부상을 당한 뒤, 눈을 감고 자유투를 던지는 순간이다. 시야는 가려졌지만 공은 정확히 골대를 가른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서태웅이 천재라서가 아니다. 그가 수만 번 반복한 자유투가 몸에 각인되어 감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니라, 의지가 아니라, 이미 축적된 반복이 그를 움직인다.

억만장자 메신저의 에세이 '반복의 쓸모'를 읽으며 나는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 역시 같다. 보이지 않는 반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은 화려한 성공담이나 즉각적인 동기부여를 팔지 않는다. 오히려 방황, 고독, 실패, 무력감 같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시간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터닝 포인트일 수 있다고.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읽다 보면 위로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그 말을 직접 거쳐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1장과 2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황과 고독에 대한 태도다. 우리는 방황을 실패로, 고독을 결핍으로 쉽게 규정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의 시선을 제시한다. 방황은 탐색이고, 고독은 설계의 시간이라는 관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성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사실은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쌓고 있다는 사실. 이 대목을 읽으며, 괜히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나 자신을 조급하게 몰아붙였을까하고.

3장 ‘운은 노력이라는 단어 위에 쌓인다’는 이 책의 심장이다. 저자는 “노력할수록 운이 좋아진다”는 말을 낭만적인 문장이 아니라, 구조적인 설명으로 풀어낸다. 반복은 감각을 만들고, 감각은 기회를 알아보는 눈을 만든다. 운이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연습해온 사람 앞에 왔을 때 비로소 ‘운’이라는 이름으로 인식된다는 말이다. 다시 서태웅의 자유투 장면으로 돌아가면, 그 공은 기적이 아니라 연습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 책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언어에 대한 집요한 태도다. 4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쓰는 말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라고 말한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는 사소한 언어 습관 하나가 사고의 방향을 바꾼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실패를 설명할 때조차 스스로를 제한하는 언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 이 책은 그런 언어들을 하나씩 걷어내며, 생각의 공간을 넓혀준다.

5장에 이르러서는 삶의 태도가 한층 성숙해진다. 특히 ‘호감을 얻으려는 마음이 인간의 약점’이라는 메시지는 오래 남는다. 잘 보이려다 나를 잃고, 인정받으려다 방향을 잃는 순간들. 저자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많이 흘려보내는 기회라고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 오해받을 용기, 그리고 고독할 용기. 이 세 가지는 사실 같은 말처럼 느껴졌다. 나답게 살기 위한 용기라는 점에서.

'반복의 쓸모'는 책장을 덮는 순간 이제 뭐라도 당장 해내야지라고 등을 떠미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이 느린 반복이 틀리지 않았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삶이 흔들릴 때, 성과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아마 이 책의 문장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눈을 감고도 자유투를 던질 수 있을 만큼,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연습을 하는 사람처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복'의 힘을 믿을 수 있게 한다. 반복으로 인해 축적이 시작되고 의미가 생겨가고 있다고. 비록 지금 하루가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뭔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고. 삶에 지치고 고된 하루에 지친 모두에게 조금의 위로로 다가오는 책 '반복의 쓸모'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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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셔로 1 - 특별하게 평범한 동네 슈퍼히어로
team befar 지음 / 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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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셔로'는 내가 알고 있던 슈퍼히어로물의 문법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뒤집는 작품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를 먼저 보고 난 뒤 원작 만화를 읽었기 때문에 두 매체를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 더 깊은 여운과 재미를 준 것은 단연 만화 '캐셔로'였다. 드라마가 ‘능력을 쓰면 돈이 실제로 소모된다’는 설정을 통해 긴장감과 현실성을 강조했다면, 원작 웹툰은 그 설정을 유머로 승화시키며 작품 전체의 결을 훨씬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원작에서 현금은 힘의 척도이지만, 능력을 쓴다고 해서 돈이 실제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점이 처음에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캐셔로'는 돈이라는 소재를 비극이나 교훈으로 몰아가지 않고 삶의 아이러니로 활용한다. 가난한 상웅과 상안 남매는 여전히 늘 돈이 부족하고, 그래서 늘 선택 앞에서 망설인다. 능력을 쓰는 데 돈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 자체가 이미 ‘여유 없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히어로로서의 행동은 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이 미묘한 간극이 작품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고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캐셔로'에 악당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 이 만화에는 화재, 빈곤, 노동, 우울, 절망 같은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마주하지만 쉽게 외면해 버리는 현실이 등장한다. 캐셔로의 히어로들은 거대한 정의를 외치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해결되지 않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몸을 움직인다. 이 태도는 거창한 영웅 서사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영웅은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는 누군가의 곁에 잠깐 서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컷 만화라는 형식 또한 '캐셔로'의 메시지와 잘 어울린다. 짧은 호흡 속에서 웃음을 주고, 마지막 컷에서 조용히 마음을 건드린다. 과장되지 않은 그림체와 담담한 대사는 주인공들의 삶을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드라마가 서사를 확장하며 감정을 설명했다면, 만화는 여백을 남김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감정을 채우게 한다. 그래서 읽고 난 뒤에도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캐셔로'는 “왜 사람은 사람을 돕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을 삶의 한가운데에 놓아둔다. 가난하고, 지치고, 각자의 사정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돕는 선택을 하는 모습은, 나 역시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지 되묻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한 히어로, 그 평범함이야말로 '캐셔로'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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