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식 - 우리가 지나온 미래
해원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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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작가의 SF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아카식 - 우리가 지나온 미래가 텍스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소설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장르가 딱 네개 있는데요, 그 SF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네 장르중 무려 3개에 걸쳐있는 소설인만큼 바로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연상호감독님의 샤라웃까지!

소설은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한살터울의 언니 홍은희와 함께 살아가는 홍선영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천지간에 단 둘 뿐이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자매였지만 언니 은희가 KTX사고로 실종되고 선영은 무언가 개운치 않은 열차사고를 알아가다 전 세계의 운명이 걸린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아카식의 작가 해원님이 카카오웹툰의 스토리와 영화 드라마 각본가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소설의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처럼 이야기 진행의 템포가 매우 빠르게 흘러가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설을 끊어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특히 단순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연출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웹툰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중간중간 검은 페이지에 줄에 맞춰지지 않은 대사들과 그라데이션으로 표시되어 과거와 현재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장면들이 특히 인상깊었거든요.



다시 소설 아카식의 이야기로 돌아가 언니 은희가 탑승한 열차는 말 그대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탑승객 현황에 탑승한 사람은 잔뜩 있지만 생존자와 부상자 그리고 사망자가 모두 0명인 기묘한 사고보고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케테르 재단인지 뭔지가 그 여자를 고용해서... 근데 거긴 대체 뭐 하는 곳인데요?"

"<미션 임파서블> 봤습니까? 거기 나오는 악당들하고 비슷합니다." p61

그리고 이 사건의 중심에는 선영의 언니 은희가 있는데요. 선영은 그 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은희의 모습의 거의 대부분이 거짓이라는 사실에 언니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사라진 언니를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마치 미션임파서블에 나오는 악당들과 같은 포지션의 케테르제단이 등장해 선영을 위협하고 톰 크루즈에 해당하는 데미안이 선영을 지켜줍니다.

이제 케테르 제단의 해결사 올빼미와 선영을 지키는 데미안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집니다.

아카식이라는 단어는 오컬트 장르를 좋아하고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단어인데요. 다른 말로 허공록이라고도 불리는 아카식 레코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기억이 담겨 있는 정보의 기록함을 말합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면 미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인데요, 이번 소설 아카식에서는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통로로 표현됩니다.

이제 시공간을 넘어 과거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 하는 악당들을 막기 위해 선영은 언니 은희를 찾고 데미안 장과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아이들과 함께 케테르 재단의 수괴 제레미 아이즈너를 막아야 합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둡고 답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선영이 당면한 현실은 갑갑하고 숨이 막힙니다. 하지만 묘하게 밝고 즐겁고 명량하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는 선영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암울하게만은 받아들이지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부딛혀 이겨낼 수 있는, 극복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텐데요.

언니는 웹소설이라면 환장을 했다. 회귀, 빙의, 환생을 일삼으며, 주로 북부 대공이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판타지로맨스물 p115

"튜너로 태어날 확률도 희박한데, 당신은 안테나에요. 30억분의 1이라는 가능성을 뚫고 태어난 겁니다."

내가 무슨 시진핑이냐?!

그 엄청난 가능성을 뚫은 결과 시진핑은 권력과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나는 죽어라 고생만 하고 있다. 불공평한 세상 p181

"왜 말 안 했어?"

"뭘?"

"아파트!"

언니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아파트부터 튀어나오는 걸 보니, 한국인이 맞긴 맞나 보다. p211

거기에 어느 상황에서든 분위기를 전환해주는 해원작가님만의 스타일의 딥다크한 블랙 유머가 곳곳에 심어져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시공간을 넘나드는 SF장르의 재미에서 사라진 언니의 정체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 그리고 케테르 재단의 올빼미와 그림자로부터 쫓고 쫓기는 스릴러 장르의 재미까지. 3박자가 훌륭하게 맞아 떨어져 소설을 보는 시간을 말그대로 순삭시킨 재미있는 SF미스터리스릴러소설 아카식을 말 그대로 재미있고 즐거운 독서시간을 원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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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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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작가 중 가장 독보적인 색채를 지닌 사람이 바로 정유정 작가라고 생각한다.
강렬했던 작품들. 7년의 밤, 종의 기원, 28을 읽으면서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고 완전한 행복까지 그 행보를 좇게 되었다.
특히 7년의 밤을 읽었을 때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는 교실 한가운데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책 내용에 몰입해 오싹한 한기와 두려움이 몰려올 만큼 완전히 집중시켜버리는 그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정유정월드 신작 영원한 천국이 나왔을 때도 반가운 마음에 바로 찾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유정 작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키워드는 사실 싸이코패스다. 대표작들에서 다양한 형태로, 깊이 있게 다뤄졌기 때문에 사실 이런 스릴러가 아닌 에세이, 청소년 소설도 집필하였지만 나는 다시 한번 싸이코패스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정유정신작 영원한 천국은 완전한 행복에 이은 정유정월드 '욕망3부작'에 해당하지만 싸이코패스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에 정유정작가는 SF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다.

영원한 천국에는 차례에서부터 나오는 '롤라', '드림시어터'에 해당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이 등장한다.

📚롤라는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데이터이며 통합 플랫폼이다. 게임과 커뮤니티와 영상 혹은 방송 채널이 무한대로 생성되고 소비되는 곳이다. 이곳엔 지상의 동화와 지하의 신화가 동시에 구현되는 가상 세계도 존재한다. -p19

이는 마치 영화 '인셉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영원한 천국의 '롤라', '드림시어터'는 인셉션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극장이라는 툴은 롤라가 제공한다. 반드시 죽음에 이르도록 설계된다는 점 역시 같다. 롤라가 만든 극장이 공용이라면, 업자가 만든 극장은 개인용인 셈이다. 개인 극장의 정식 명칭은 '드림시어터'다. -p.21

이야기는 두 주인공 해상과 경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주가 해상에게 의뢰를 맡기게 되면서 해상이 경주를 만나러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 공간부터 매우 특이하다.
말하는 앵무새 공달과 잣나무가 등장하고 경주는 마치 공달이 자기 동생인양 의뢰를 한다고 했던 것이었다.

📚경주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해서요. 이해상씨는 드림시어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고 시조새에게 간택되려면 눈에 띄어야 하니까." -p 21

책을 읽으면서 이 1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후에 등장하는 인물들, 배경들이 1장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었는지 점점 드러나는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후 해상이 경주를 위한 드림시어터를 만들기 위해 경주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주가 어떻게 삼애원에 가게되는지, 그리고 그 곳에서 어쩌다 제이를 만났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이야기 속에서 해상의 삶도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경주와 해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되어 교차되었다가 다시 떨어져나가고 또 경주의 진짜 의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제 첫번째 요구는 삼애원 사건을 겪고 난 이후부터 30쪽을 추가해달라는 겁니다." "백지로요"
- p.388~389

경주, 해상의 삶이 롤라와 엮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굉장히 한국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데,
그러한 점에서 영원한 천국은 굉장히 현실감 있게 쓰여있으면서도 또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곧 우리도 발전된 기술을 통해 그러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유정작가가 만들어 낸 또다른 세계, 롤라. 그리고 영원한 천국. 역시나 치밀하게 짜여있었고 경주와 해상의 서사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작가는 욕망3부작 중 하나로 이 책이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경주가 보여준 '야성'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쉬고 있고 그것이 우리 삶의 무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하루만에 독파해버린 영원한 천국.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이지만 소설의 장르적 재미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으로 SF, 스릴러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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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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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에서 출간된 혼다 데쓰야의 세뇌살인을 읽었습니다.


혼다 데쓰야 하면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부터 무사도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작가로 유명한데요. 가볍게 즐길수 있는 소설부터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기기 힘겨운 잔혹한 범죄물까지 완성도 높에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오늘 읽은 세뇌살인은 기존 북로드에서 짐승의 성으로 2016년에 출간된 작품인데요.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실제 일어난 잔혹한 범죄인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인만큼 작품내에서의 표현의 수위도 무척이나 높아 일본미스터리소설을 꾸준히 읽어 잔혹한 표현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자부하던 저도 소설을 읽다 잠시 덮어두고 기분을 전환한 후에 읽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소설은 도쿄외곽에 위치한 특별할 것 없는 선코트마치라는 이름의 맨션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은 선코트마치 403호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두 여자의 진술을 따라 이들을 세뇌해 일가족을 조종해 서로를 고문하고 살해해 시신까지 처리하게 만든 요시오를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합니다.



절단되고 해체되어 메밀국수 양념장 속에서 삶아지고, 믹서기에 돌려지고, 하수에 흘려보내졌겠죠.


소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요. 요시오를 찾기 위한 경찰의 수사파트가 그 첫번째입니다. 수사를 위해 맨션에서 살아남아 탈출한 여인의 증언이 중요한데요. 이 여인의 증언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잔혹하고 읽기 힘든 말 그대로 한글자한글자 읽어내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운 파트입니다.




요시오는 서서히 피해자의 정신을 세뇌해 그에게 굴복하게 만듭니다. 요시오의 403호에 감금되어 있는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탈출이 가능하지만 탈출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채 가족이었던 서로를 고문하고 끝내는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처리합니다.





하지만 소리를 내면 더 세게 꼬집히니까 참았습니다. 아팠지만, 하지만, 제가 그렇게 당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p66


체벌이 끝나면 술자리가 시작됩니다. 이상한가요? 그러네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p99



짐승의 성이라는 제목이 요시오가 만든 참혹도였던 선코트마치의 403호를 의미했다면 세뇌살인이라는 새로운 제목은 한 층 더 범죄 그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익숙한 느낌으로는 가스라이팅을 통한 살인에 가깝습니다.

피해자들은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올라가는 물 온도에 익숙해져 결국은 물이 끓어도 탈출하지 못하고 살해당합니다.


두번째 파트는 신고와 세이코라는 20대 젊은 커플의 이야기인데요. 이 커플의 일상에 세이코의 아버지 사부로라는 의문의 남자가 등장하며 세뇌살인의 두 파트는 교차하게 됩니다.

신고는 사부로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끼게 되고 요시오를 쫓는 경찰들 역시 사부로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옵니다.


그리고 신고가 사부로를 쫓다 진상에 도달할 때 미스터리소설로서의 반전의 재미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쓰코는 이제 폭행 피해자도, 공범자도 아니고, 우메키 요시오라는 남자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요시오는 감염된다. p104


소설을 읽은 후 실제 일어났던 키타큐슈 사건에 관한 정보를 찾아 보고 나니 저자가 말한 '실화가 너무 끔찍해서 소설에 나온 것은 그 수위를 반 이상 줄인 것이다.'라는 말이 한번 더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인간의 악의가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 조차 버거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소설 세뇌살인이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소설을 찾으면서 잔혹하고 수위높은 표현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가 읽은 일본미스터리소설 중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소설 세뇌살인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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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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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호노부의 가연물은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경찰미스터리인데요. 작가 인터뷰에서도 경찰 조직이 활동하는 경찰소설이 아니라 탐정 역할을 경찰이 하게 되는 경찰 미스터리라고 구분지어 말할만큼 일반적인 경찰소설과는 다른 점을 보입니다.


소설은 경찰내부에서도 인간적으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지만 수사능력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군마 현경 수사 1과 가쓰라 경부가 겪은 다섯건의 범죄를 단편 형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현경 수사1과 가쓰라 팀 형사들은 상사가 밤사이 자기들을 제치고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가쓰라를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쓰라의 수사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p58


가쓰라는 직감이란 차곡차곡 쌓인 관찰력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직감을 맹신하는 표적 수사는 최악이지만, 근거가 직감뿐이라는 이유로 의혹을 각하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나쁘다. p220



가쓰라 경부는 유능한 탐정인 동시에 경찰입니다. 그래서 경찰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탐문과 수색, 증거를 수집하는 동시에 남들은 찾아낼 수 없는 단서들의 연결점을 혼자 아득히 추월해 알아내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래서 가쓰라 경부의 수사 1과는 뛰어난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게 가쓰라 혼자 해결한 일이며 나머지 팀원들은 오히려 실력이 발전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게 됩니다.


소설 가연물은 총 다섯편의 에피소드를 다루는데요.


낭떠러지 밑 - 눈 덮힌 스키장 외곽 절벽 아래에서 두 사람이 한 명은 살해당한 채, 한명은 큰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됩니다. 주변의 눈은 깨끗해 용의자는 부상을 입은 남자로 특정지어진 상황, 가쓰라 경부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범행의 흉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졸음 - 경찰의 수사력을 십분 활용해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냅니다. 가쓰라경부는 용의자를 미행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마침 그 때 용의자가 교통사고를 내게 됩니다. 새벽 3시라는 시간에도 네명의 목격자가 등장하고 이 들의 목격진술은 일치하지만 가쓰라경부는 목격자들의 진술에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목숨 빚 - 개인적으로 이번 가연물에 수록된 단편중 최고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는데요. 톱으로 절단 된 시체의 한 부위가 발견되고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나머지 부위들도 연달아 나타납니다.

범인 역시 피해자의 주변인물 조사에서 쉽게 드러나는데요. 가쓰라경부는 범인보다 범행 그 자체에 이 사건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직감하고 범행동기와 '왜' 시신을 토막내어 유기했는지에 집중합니다.


가연물 - 일반 쓰레기 봉투만 태우는 방화범의 등장! 기묘하게도 화재 규모는 작아 피해는 거의 없지만 방화신고가 들어오고 건조한 겨울시기와 맞물려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사는 시작됩니다. 왜 방화범은 쉽게 타는 주변의 다른 가연물들 대신 일반쓰레기만을 태우는 것일까요?


진짜인가 - 시내 외곽의 한 식당에서 인질극이 발생합니다. 내부는 폐쇄되어 경찰은 내부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인질과의 통화를 통해 사망한 인원도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가쓰라 경부는 무사히 탈출한 인원들의 진술을 통해 인질극 자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알아차리고 사건의 진상에 접근합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연물에 수록된 다섯 단편은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진실없이 작가가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한 후 정말 있을 법한 사건으로 독자도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든 작가와 독자의 승부로서의 추리소설이었습니다.


경찰관은 담당 사안이 늘어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안을 다른 부서에 빼앗기는 것은 그 이상으로 싫어한다.

가쓰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p73


가연물과 졸음의 경우 단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는 사건이지만 여러명이 연달아 죽어나가는 미스터리보다 더 몰입감이 강합니다. 군마현이라는 지역적 상황과 경찰내부의 수사과정과 다양한 업무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데서 나오는 현실감이 이런 몰입감을 더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소설 가연물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닌 동기와 범행 그 자체를 추리의 대상으로 삼아 문제를 제시합니다. 흔히 보던 탐정 소설에서는 여러 검증의 과정을 거쳐 탐정이 범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경찰수사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범인을 추리로만 찾아내어야 하는 고립된 것과 같은 특수한 상황은 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은 인력을 투입해 주변의 증거나 정황을 수집하고 탐문을 통해 목격자진술을 통해 이미 용의자를 확정지은 후 수사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가쓰라는 그 수사를 조금 더 철저하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수사를 진행합니다. 다섯편의 단편에서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건 속 유력한 용의자가 진짜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원죄의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마지막 한 조각을 찾아 수사를 완성하는 것이 가쓰라경부가 제일 잘하고 또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 한 조각은 범행동기가 될 수있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흉기일수도 있구요.


온갖 특수설정 미스터리와 본격미스터리가 범람하는 미스터리장르문학계에서 정통 형사미스터리만이 줄 수 있는 깊이있는 여운과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 가연물을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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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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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의 첫 등장과도 관련깊은 빌 호지스의 죽음과 애증의 관계였던 그녀의 어머니 샬럿과의 관계 그리고 탐정으로서의 홀리의 성장까지 어느 페이지 하나 허투로 쓰지 않고 꼼꼼하게 채운 스릴러 문학계의 걸작이라는 평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돌아보니 제목이 소설 속의 빌런에 맞춰지지 않고 온전히 홀리에 집중한 점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소설은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라 공포, 스릴러 장르답게 첫파트에서 범인을 공개하고 시작합니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부분같은데요.


젊고 건강한 남자가 비 내리는 날 러닝을 하다 휠체어를 차에 싣지 못해 난감해하는 노부부를 돕게 됩니다. 남성이 휠체어를 밴에 싣는 순간 노파는 마취주사로 남성의 목을 찌르고 이내 휠체어에 앉아있던 노인은 멀쩡하게 일어나 젊은 남성을 차에 싣고 유유히 떠납니다.


그리고 어두운 화면에 큼지막한 붉은 색 글자로 '홀리'가 떠오릅니다.




이 소설은 코로나와 트럼프 그리고 흑인에 대한 차별을 배경으로 깔고 서사가 진행되는데요. 특히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던 그 때 쓰여진 작품이라 작 중에서도 코로나의 비중이 대단합니다. 샬럿의 죽음도 코로나 때문이었고 작중 인사는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로 사용됩니다. 




죽은 사람은 샬럿이었다.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딸에게 자랑스럽게 선포했다시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답게 백신을 맞지 않았고 심지어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p36


"이 코로나는 자연적으로 발생된 게 절대 아니에요. 박쥐나 새끼 악어나 중국 시장에서 파는 다른 뭔지 모를 것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게 아니라구요." p45


이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미국의 정치색과도 밀접하게 이어지는데 샬럿과 홀리 역시 이 정치문제로 모녀간의 관계가 원래도 가깝지 않았지만 한층 더 멀어지게 됩니다.





"왜요?" 토미가 묻는다. "그냥 궁금해서."

진짜다. 홀리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다. 그것이 그녀의 수사 방식이다. p110


"대부분의 사건은 달걀처럼 잘 바스러져요. 그러니까 사건을 달걀 다루듯 해요. 톡톡 금을 내고 깨서 버터와 함께 프라이팬에 풀어요. 그런 다음 그걸로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요."

홀리가 모텔 객실에서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사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p422


홀리의 수사 방식은 일본소설 속 탐정과는 많이 다른데요. 번뜩이는 영감으로 추리하는 대신 발로 뛰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선별과정을 통해 진실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진실에 도달하기 힘든 거대한 장벽이 있을 때는 세상이 동앗줄을 내려주며 장벽에 금이 가게 됩니다. 홀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죠.




에밀리가 통의 뚜껑을 열며 말한다. 통 안에는 누런 젤리 비슷한 게 들어 있다. 피터 스타인먼의 몸에는 지방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알뜰히 거두었다. p165


홀리가 에밀리와 로드니 부부의 진실에 다가가는 수사파트와 에밀리와 로드니의 범죄를 표현하는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요. 선의를 이용하는 섬뜩한 범죄의 방식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동기입니다. 소설 초중반에 기괴한 두 노인의 대화는 책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보니 레이 달은 죽었다. 홀리는 그렇다는 걸 안다. p177


그렇게 에밀리와 로드니의 범죄가 차근차근 진행되며 현재로 오게 되고 홀리의 수사도 에밀리와 로드니를 향해 집중되며 두 파트가 교차하며 스릴러 소설의 장르적 재미가 폭발합니다.




소설 홀리는 잘쓰여진 공포소설이면서 홀리의 내적 성장이야기로서의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소설을 집필하던 스티븐 킹이 느꼈을 미국내에서의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과 트럼프로 대변되는 정치성향 그리고 흑인에 대한 여러 차별까지 주요한 장치로 작용하지만 이런것들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도 될 만큼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한 재미가 압도적입니다.


읽는 동안 페이지가 줄어가는게 아쉬울 정도로 아껴가며 읽으려고 했으나 결국 단숨에 몰입해 읽어버리고 만 작품 스티븐킹의 홀리! 무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등골 서늘한 소설 홀리를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다시 보면 한 층 더 강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표지디자인 너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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