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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평점 :

홀리의 첫 등장과도 관련깊은 빌 호지스의 죽음과 애증의 관계였던 그녀의 어머니 샬럿과의 관계 그리고 탐정으로서의 홀리의 성장까지 어느 페이지 하나 허투로 쓰지 않고 꼼꼼하게 채운 스릴러 문학계의 걸작이라는 평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돌아보니 제목이 소설 속의 빌런에 맞춰지지 않고 온전히 홀리에 집중한 점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소설은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라 공포, 스릴러 장르답게 첫파트에서 범인을 공개하고 시작합니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부분같은데요.
젊고 건강한 남자가 비 내리는 날 러닝을 하다 휠체어를 차에 싣지 못해 난감해하는 노부부를 돕게 됩니다. 남성이 휠체어를 밴에 싣는 순간 노파는 마취주사로 남성의 목을 찌르고 이내 휠체어에 앉아있던 노인은 멀쩡하게 일어나 젊은 남성을 차에 싣고 유유히 떠납니다.
그리고 어두운 화면에 큼지막한 붉은 색 글자로 '홀리'가 떠오릅니다.
이 소설은 코로나와 트럼프 그리고 흑인에 대한 차별을 배경으로 깔고 서사가 진행되는데요. 특히 코로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던 그 때 쓰여진 작품이라 작 중에서도 코로나의 비중이 대단합니다. 샬럿의 죽음도 코로나 때문이었고 작중 인사는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로 사용됩니다.
죽은 사람은 샬럿이었다.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딸에게 자랑스럽게 선포했다시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답게 백신을 맞지 않았고 심지어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p36
"이 코로나는 자연적으로 발생된 게 절대 아니에요. 박쥐나 새끼 악어나 중국 시장에서 파는 다른 뭔지 모를 것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게 아니라구요." p45
이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미국의 정치색과도 밀접하게 이어지는데 샬럿과 홀리 역시 이 정치문제로 모녀간의 관계가 원래도 가깝지 않았지만 한층 더 멀어지게 됩니다.
"왜요?" 토미가 묻는다. "그냥 궁금해서."
진짜다. 홀리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다. 그것이 그녀의 수사 방식이다. p110
"대부분의 사건은 달걀처럼 잘 바스러져요. 그러니까 사건을 달걀 다루듯 해요. 톡톡 금을 내고 깨서 버터와 함께 프라이팬에 풀어요. 그런 다음 그걸로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요."
홀리가 모텔 객실에서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사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p422
홀리의 수사 방식은 일본소설 속 탐정과는 많이 다른데요. 번뜩이는 영감으로 추리하는 대신 발로 뛰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선별과정을 통해 진실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진실에 도달하기 힘든 거대한 장벽이 있을 때는 세상이 동앗줄을 내려주며 장벽에 금이 가게 됩니다. 홀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죠.
에밀리가 통의 뚜껑을 열며 말한다. 통 안에는 누런 젤리 비슷한 게 들어 있다. 피터 스타인먼의 몸에는 지방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알뜰히 거두었다. p165
홀리가 에밀리와 로드니 부부의 진실에 다가가는 수사파트와 에밀리와 로드니의 범죄를 표현하는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요. 선의를 이용하는 섬뜩한 범죄의 방식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동기입니다. 소설 초중반에 기괴한 두 노인의 대화는 책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보니 레이 달은 죽었다. 홀리는 그렇다는 걸 안다. p177
그렇게 에밀리와 로드니의 범죄가 차근차근 진행되며 현재로 오게 되고 홀리의 수사도 에밀리와 로드니를 향해 집중되며 두 파트가 교차하며 스릴러 소설의 장르적 재미가 폭발합니다.
소설 홀리는 잘쓰여진 공포소설이면서 홀리의 내적 성장이야기로서의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소설을 집필하던 스티븐 킹이 느꼈을 미국내에서의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과 트럼프로 대변되는 정치성향 그리고 흑인에 대한 여러 차별까지 주요한 장치로 작용하지만 이런것들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도 될 만큼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한 재미가 압도적입니다.
읽는 동안 페이지가 줄어가는게 아쉬울 정도로 아껴가며 읽으려고 했으나 결국 단숨에 몰입해 읽어버리고 만 작품 스티븐킹의 홀리! 무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등골 서늘한 소설 홀리를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다시 보면 한 층 더 강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표지디자인 너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