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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평점 :

요네자와호노부의 가연물은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경찰미스터리인데요. 작가 인터뷰에서도 경찰 조직이 활동하는 경찰소설이 아니라 탐정 역할을 경찰이 하게 되는 경찰 미스터리라고 구분지어 말할만큼 일반적인 경찰소설과는 다른 점을 보입니다.
소설은 경찰내부에서도 인간적으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지만 수사능력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군마 현경 수사 1과 가쓰라 경부가 겪은 다섯건의 범죄를 단편 형식으로 담고 있습니다.
현경 수사1과 가쓰라 팀 형사들은 상사가 밤사이 자기들을 제치고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가쓰라를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쓰라의 수사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p58
가쓰라는 직감이란 차곡차곡 쌓인 관찰력이 경고를 보내는 신호라고 여겼다. 직감을 맹신하는 표적 수사는 최악이지만, 근거가 직감뿐이라는 이유로 의혹을 각하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나쁘다. p220
가쓰라 경부는 유능한 탐정인 동시에 경찰입니다. 그래서 경찰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탐문과 수색, 증거를 수집하는 동시에 남들은 찾아낼 수 없는 단서들의 연결점을 혼자 아득히 추월해 알아내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래서 가쓰라 경부의 수사 1과는 뛰어난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게 가쓰라 혼자 해결한 일이며 나머지 팀원들은 오히려 실력이 발전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게 됩니다.

소설 가연물은 총 다섯편의 에피소드를 다루는데요.
낭떠러지 밑 - 눈 덮힌 스키장 외곽 절벽 아래에서 두 사람이 한 명은 살해당한 채, 한명은 큰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됩니다. 주변의 눈은 깨끗해 용의자는 부상을 입은 남자로 특정지어진 상황, 가쓰라 경부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범행의 흉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졸음 - 경찰의 수사력을 십분 활용해 강도치상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냅니다. 가쓰라경부는 용의자를 미행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마침 그 때 용의자가 교통사고를 내게 됩니다. 새벽 3시라는 시간에도 네명의 목격자가 등장하고 이 들의 목격진술은 일치하지만 가쓰라경부는 목격자들의 진술에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목숨 빚 - 개인적으로 이번 가연물에 수록된 단편중 최고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는데요. 톱으로 절단 된 시체의 한 부위가 발견되고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나머지 부위들도 연달아 나타납니다.
범인 역시 피해자의 주변인물 조사에서 쉽게 드러나는데요. 가쓰라경부는 범인보다 범행 그 자체에 이 사건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직감하고 범행동기와 '왜' 시신을 토막내어 유기했는지에 집중합니다.
가연물 - 일반 쓰레기 봉투만 태우는 방화범의 등장! 기묘하게도 화재 규모는 작아 피해는 거의 없지만 방화신고가 들어오고 건조한 겨울시기와 맞물려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사는 시작됩니다. 왜 방화범은 쉽게 타는 주변의 다른 가연물들 대신 일반쓰레기만을 태우는 것일까요?
진짜인가 - 시내 외곽의 한 식당에서 인질극이 발생합니다. 내부는 폐쇄되어 경찰은 내부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인질과의 통화를 통해 사망한 인원도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됩니다. 가쓰라 경부는 무사히 탈출한 인원들의 진술을 통해 인질극 자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알아차리고 사건의 진상에 접근합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연물에 수록된 다섯 단편은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진실없이 작가가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한 후 정말 있을 법한 사건으로 독자도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든 작가와 독자의 승부로서의 추리소설이었습니다.
경찰관은 담당 사안이 늘어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안을 다른 부서에 빼앗기는 것은 그 이상으로 싫어한다.
가쓰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p73
가연물과 졸음의 경우 단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는 사건이지만 여러명이 연달아 죽어나가는 미스터리보다 더 몰입감이 강합니다. 군마현이라는 지역적 상황과 경찰내부의 수사과정과 다양한 업무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데서 나오는 현실감이 이런 몰입감을 더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소설 가연물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닌 동기와 범행 그 자체를 추리의 대상으로 삼아 문제를 제시합니다. 흔히 보던 탐정 소설에서는 여러 검증의 과정을 거쳐 탐정이 범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경찰수사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범인을 추리로만 찾아내어야 하는 고립된 것과 같은 특수한 상황은 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은 인력을 투입해 주변의 증거나 정황을 수집하고 탐문을 통해 목격자진술을 통해 이미 용의자를 확정지은 후 수사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가쓰라는 그 수사를 조금 더 철저하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수사를 진행합니다. 다섯편의 단편에서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건 속 유력한 용의자가 진짜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원죄의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마지막 한 조각을 찾아 수사를 완성하는 것이 가쓰라경부가 제일 잘하고 또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 한 조각은 범행동기가 될 수있고 아직 찾아내지 못한 흉기일수도 있구요.
온갖 특수설정 미스터리와 본격미스터리가 범람하는 미스터리장르문학계에서 정통 형사미스터리만이 줄 수 있는 깊이있는 여운과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 가연물을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