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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평점 :

북로드에서 출간된 혼다 데쓰야의 세뇌살인을 읽었습니다.
혼다 데쓰야 하면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부터 무사도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작가로 유명한데요. 가볍게 즐길수 있는 소설부터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기기 힘겨운 잔혹한 범죄물까지 완성도 높에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오늘 읽은 세뇌살인은 기존 북로드에서 짐승의 성으로 2016년에 출간된 작품인데요.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실제 일어난 잔혹한 범죄인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인만큼 작품내에서의 표현의 수위도 무척이나 높아 일본미스터리소설을 꾸준히 읽어 잔혹한 표현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자부하던 저도 소설을 읽다 잠시 덮어두고 기분을 전환한 후에 읽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소설은 도쿄외곽에 위치한 특별할 것 없는 선코트마치라는 이름의 맨션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은 선코트마치 403호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두 여자의 진술을 따라 이들을 세뇌해 일가족을 조종해 서로를 고문하고 살해해 시신까지 처리하게 만든 요시오를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합니다.
절단되고 해체되어 메밀국수 양념장 속에서 삶아지고, 믹서기에 돌려지고, 하수에 흘려보내졌겠죠.
소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요. 요시오를 찾기 위한 경찰의 수사파트가 그 첫번째입니다. 수사를 위해 맨션에서 살아남아 탈출한 여인의 증언이 중요한데요. 이 여인의 증언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잔혹하고 읽기 힘든 말 그대로 한글자한글자 읽어내려가는 것이 고통스러운 파트입니다.
요시오는 서서히 피해자의 정신을 세뇌해 그에게 굴복하게 만듭니다. 요시오의 403호에 감금되어 있는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탈출이 가능하지만 탈출에 대한 의지를 잃어버린채 가족이었던 서로를 고문하고 끝내는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처리합니다.
하지만 소리를 내면 더 세게 꼬집히니까 참았습니다. 아팠지만, 하지만, 제가 그렇게 당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p66
체벌이 끝나면 술자리가 시작됩니다. 이상한가요? 그러네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p99
짐승의 성이라는 제목이 요시오가 만든 참혹도였던 선코트마치의 403호를 의미했다면 세뇌살인이라는 새로운 제목은 한 층 더 범죄 그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익숙한 느낌으로는 가스라이팅을 통한 살인에 가깝습니다.
피해자들은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올라가는 물 온도에 익숙해져 결국은 물이 끓어도 탈출하지 못하고 살해당합니다.
두번째 파트는 신고와 세이코라는 20대 젊은 커플의 이야기인데요. 이 커플의 일상에 세이코의 아버지 사부로라는 의문의 남자가 등장하며 세뇌살인의 두 파트는 교차하게 됩니다.
신고는 사부로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끼게 되고 요시오를 쫓는 경찰들 역시 사부로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옵니다.
그리고 신고가 사부로를 쫓다 진상에 도달할 때 미스터리소설로서의 반전의 재미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쓰코는 이제 폭행 피해자도, 공범자도 아니고, 우메키 요시오라는 남자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요시오는 감염된다. p104
소설을 읽은 후 실제 일어났던 키타큐슈 사건에 관한 정보를 찾아 보고 나니 저자가 말한 '실화가 너무 끔찍해서 소설에 나온 것은 그 수위를 반 이상 줄인 것이다.'라는 말이 한번 더 가슴에 와닿았는데요.
인간의 악의가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세상에는 상상하는 것 조차 버거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소설 세뇌살인이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소설을 찾으면서 잔혹하고 수위높은 표현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가 읽은 일본미스터리소설 중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소설 세뇌살인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