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마
박중훈 지음 / 사유와공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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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신간 책추천 박중훈 에세이 후회하지마 서평 사유와공감 출간

박중훈,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살의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한 이래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한민국 영화의 한 시대를 이끌어온 배우이자 감독이다. 깜보,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 등 수많은 작품 속에서 대중은 그를 ‘유쾌한 배우’, ‘국민배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첫 에세이 '후회하지 마'는 화려한 무대 뒤, 오롯이 인간 박중훈으로서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고백록이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리고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맞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는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않는다며 살아왔던 세월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표지였다. 커다랗게 인쇄된 박중훈의 얼굴, 그 익숙하고 따뜻한 미소 속에 그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우로서 수많은 얼굴을 연기해 온 그이지만, 이번 표지의 그는 어떤 배역도 아닌 ‘그냥 박중훈’이었다. 눈가의 잔주름과 선한 웃음에서 세월의 무게와 삶의 흔적이 느껴졌고, 덕분에 이 책은 한결 더 친숙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반성은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는 미래지향적 생각이라면, 후회는 그저 가슴만 치다 마는 과거 집착적 태도라 여겨져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지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대차게 마음먹고 살았는데도 이제 와 생각하니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이 문장은 완벽을 가장한 스타가 아닌, 인간 박중훈의 진심을 보여준다. 그는 후회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껴안으며, 그것조차 자신의 일부로 인정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행운아’라는 글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평균수명 85세는 바꿔 말해서 7만 5천 시간이다. 나의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1,000만 명이 봤다면 난 2,000만 시간을 위임받은 셈인 것이다. 그 엄청난 시간을 내가 웃길 수 있었다는 게 너무 행복이고 영광이다'라며 배우로서 관객에게 받은 사랑을 겸허하게 회고한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행운아라 부르며, 그 이유를 명예나 부가 아니라 남의 시간을 웃음으로 채웠기 때문이라 한다. 배우라는 직업의 본질을 이보다 더 진심 어린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또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스타는 자존심이 세고, 사모님은 자존심이 세고, 회장님은 자존심이 센 게 아니다. 인간 자존심의 크기는 다 같다. 다만 그 자존심을 부릴 수 있는 처지인 사람과 꾹 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 대중과 업계 속에서 사람을 보고 겪어온 그가 내린 결론이다. 사람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그 속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그의 시선은 따뜻하고도 현실적이다.

책에는 그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통해 보여주는 깊은 감정선이 담겨 있다.

-촬영하는 6개월 내내 아버지 이름으로 불리며 연기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더 이상 만질 수 없지만, 아버지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 곁에 계신다.-

그는 “누군가 내게 ‘그리움’을 연기하라고 한다면, 난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고백한다. 배우로서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진하게 전해지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그가 던지는 삶의 메시지는 담담하지만 단단하다.

-나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늘 자신에게 묻는다. ‘이걸 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할 것인가?’ …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하는’ 선택을 하고 살아왔다. 후회되더라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불완전한 채로라도 행동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40년 배우 인생을 지탱해 온 신념이다.

'후회하지 마'는 유명 배우의 회고록을 넘어, 한 인간이 후회와 반성, 사랑과 그리움 속에서 자신을 단단히 세워온 과정을 그린 인생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표지 속 선한 미소처럼, 그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는 말한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자가 많고, 허점투성이인 사람이니까.”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인간의 진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대 위에서 여전히 연기를 이어가는 배우임을 깨닫게 된다. 박중훈은 그 무대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웃고, 울고, 버텨왔다. 그리고 지금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하다. “후회하지 마. 그것이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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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1
마스다 에이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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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정말 오랜만에 집어 든 만화책, 그것도 평소 즐겨보던 일본의 스릴러나 미스터리, 배틀 생존물이 아닌 러브코미디 장르의 작품이다. 바로 마스다 에이지 작가의 신작, '오늘 아침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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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58분 통학 전철.

이름도 모르는 소녀와 나…와 탑승객?!

고등학생 남녀에게서 풍기는 풋풋한 분위기에, 승객들이 안달복달하며 흥분한다!!

신감각 시추에이션 러브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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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투명인간을 만드는 방법’과 ‘사실 나는’으로 이름을 알린 마스다 에이지의 새로운 시도로, 그 자체만으로도 팬들에게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작가가 무려 일본 만화계에서 손꼽히는 실력파 무라타 유스케의 어시스트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실제로 그림체는 평범한 학원물풍이 아닌, 힘이 넘치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며, 섬세한 표정보다는 생동감과 에너지로 캐릭터를 표현한다. 이런 그림체 덕분에 작품의 러브코미디적 요소 중에서도 특히 코믹한 장면들이 더욱 살아나는 효과를 준다.


'오늘 아침도 흔들리고 있습니다'는 매일 아침 같은 전철을 타는 히코이치와 나유, 두 청춘남녀가 서로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작은 오해와 착각 속에서 웃음과 설렘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착각계 러브코미디’이지만, 이 작품의 특별함은 ‘관찰자들’의 존재에 있다. 주변 인물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며 리액션을 보여주는 구성은 마치 관객이 하나의 쇼를 보고 있는 듯한 재미를 주며, 급기야 이 ‘관객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두 사람의 진전을 함께 응원한다는 설정은 요즘 세대의 SNS 문화와도 잘 어울린다.


또한 마스다 에이지 특유의 작화 감각은 여전히 탁월하다. 인물들의 표정을 과장되게 그리면서도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출 덕분에, 두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히코이치의 어색한 미소나 나유의 수줍은 눈빛,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폭소하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독자에게 ‘순수한 설렘’과 ‘유쾌한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


현재 일본에서는 2025년 10월 기준으로 3권까지 출간되어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상 본격적인 관계 변화가 일어날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러브코미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물론이고, 오랜만에 가볍고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에게도 적극 추천할 만하다. 마스다 에이지 특유의 유머와 감성이 잘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익숙한 설정 속에서도 ‘지금 이 시대의 청춘’을 포착해내며 여운을 남긴다.


하루빨리 다음 권을 보고 싶을 만큼, 간만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정통 러브코미디. 오늘 아침도 흔들리고 있습니다는 아침 출근길의 전철 안처럼 설레고, 어딘가 익숙하지만 새로운 감정의 진동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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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복신의 환영
김이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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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김이수 작가님의 칠복신의 환영으로 무엇보다 이 작품은 도입부가 미쳤다.

비트코인의 값이 폭등하기 전, 누구도 비트코인의 가치를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일본의 한 대학교 연구센터의 학생들이 장난삼아 비트코인을 슈퍼컴퓨터로 채굴하고 코인월렛의 비밀번호를 졸업생 일곱명이서 각각의 칠복신의 목각인형에 한자리씩 적어 나눠 가지게 된다. 그리고 10년뒤 비트코인이 성공하게 되면 이 목각인형을 가지고 모이자고 장난스럽게 약속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여기서 비트코인의 미래를 아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소설에 확 몰입되며 도파민을 뿜어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비트코인의 수량이 무려 25만개로 현재 시세로 따지면 대략 38조원 정도 되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인 것!

소설 칠복신의환영은 이 코인월렛의 비밀번호가 새겨진 일곱개의 칠복신 조각상을 둘러싼 일본 경찰과 극우단체 그리고 야쿠자의 갈등과 이 갈등에 휘말려버린 한국인 킬러 영춘의 이야기를 실감나고 스릴넘치게 그린다.

한국에서 국정원의 의뢰를 받고 암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영춘은 코로나로 인해 임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상처입고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민들레상가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민들레 상가를 구하기 위해 영춘은 자연스럽게 거액의 비트코인을 둘러싼 암투에 뛰어들게 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더 밝고 유머러스한 영화 신세계나 무간도 느낌이 난다. 여기에 BGM으로 박상민이나 CAN의 노래를 틀면 딱일 것 같은 거친 남자들의 땀냄새나는 혈투와 가슴 절절해지는 순애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잔인하고 피튀기는 표현들이 가득하고 장면 하나하나가 쫀득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와중에도 영춘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소설의 완급을 훌륭히 조절해 장편소설이지만 지루해지지않고 단숨에 읽어내려 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 칠복신의 환영을 통해 김이수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나올 작품들은 물론 이미 출간된 작가님의 작품들 역시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영춘이란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물론이고 미코나 개코와 같은 조연들 역시 입체적이며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져 언젠간 이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재미있는 느와르소설로 책을 읽으며 순수하게 재미 그 자체만을 추구하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소설 칠복신의 환영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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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살해당할까
구스다 교스케 지음, 김명순 옮김 / 톰캣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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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구스다교스케의 고전추리소설 '언제 살해당할까'로 그야말로 고전걸작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먼저 이 소설의 작가인 구스다 교스케부터가 1903년생으로 까마득한 과거의 인물이며 추리소설 업계에서는 전설 그 자체인 에도가와 란포에게 '트릭의 발명가'로 인정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를 안할수가 없었다.


노란색 표지에 귀여운 분홍유령이 그려진 앙증맞은 표지와 이 작품은 꽤나 잘 어울린다. 추리소설로는 파격적인 표지 디자인인것 같은데 소설을 읽으며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 감탄했다.


소설 '언제 살해당할까'는 잘 나가는 소설가인 쓰노다가 당뇨병으로 기묘한 병실에 입원하며 시작된다. 급하게 입원한 터라 모두가 기피하는 병실에 입원한 쓰노다는 병실에서 여러 수상쩍은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고 곧 그가 입원했던 병실이 무려 한화로 치면 7억이 넘는 돈을 횡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연인이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병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 중 표현으로 당시 간호사들의 월급이 만오천엔이라고 하니 현재 물가로 계산해보면 140억 정도의 거액인 셈.

심지어 이 병실에서는 유령도 종종 출몰하고 있지만 쓰노다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유령으로 위장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횡령금을 찾기 위해 누군가가 병원을 뒤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역시 반쯤은 재미로 이 사건에 뛰어든다.


재미있는 점은 추리의 물리적인 방식이다. 병원에 입원해 거동이 불편한 쓰노다는 간단한 수사는 아내 에쓰코에게 맡기고, 본격적인 수사는 오랜 친구이자 경찰인 이시게에게 부탁하며 안락의자탐정으로 활약하게 된다.


여기서 쓰노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이시게 역시 단순히 보조 역할로만 표현되지 않고 쓰노다 못지 않은 추리력을 가진 베테랑 형사로서 독자적인 추리, 수사를 진행하며 이 소설을 단순한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 아닌 경찰추리소설로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서평의 초반부에 이 책의 표지와 책의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 표현했었는데, 이 세 등장인물들의 수사는 너무 무겁지 않고 오히려 사건의 중함에 비해 가볍고 경쾌한 대화들로 전개되어 '소년탐정 김전일'의 초반에는 가볍고 유머러스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무겁고 어두워지는 전개가 생각나기도 했다. 병실 벽에 쓰여진 낙서들은 은근 피식하게 웃게 만드는 요소였다.


무엇보다 1950년대에 쓰여진 이 작품은 읽는 것 만으로 고전 명작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한 껏 뽐내는데, 작 중 전보로 연락을 주고 받거나 아직은 발달되지 않은 과학수사 기법등은 그 시대를 직접 살아간 작가만이 줄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을 더한다. 톰캣 출판사의 이전 출간작인 범선 군함의 살인이 추리 요소 이외에도 군함에서의 생활이라는 추가적인 재미요소를 잘 살렸었는데 이번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또 다른 재미 요소로 작용한다.


치밀한 복선과 직접 노트를 펼쳐놓고 적어가며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알리바이 요소들에 지극히 실현가능하며 현실적인 트릭까지 더해져 고전 명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던 작품 '언제 살해당할까'를 일본 추리소설의 팬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명작으로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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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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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책은 내가 평소 즐겨 읽던 최신트렌드의 본격미스터리와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고전명작 추리소설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다.

보통은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들, 예를 들면 유키하루오나 시라이도모유키와 같은 젊은 소설을 즐겨 읽곤 했는데 아마도 고전은 지루하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오늘 읽은 작품,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는 내 그런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추리소설이었다.


소설은 건축 소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 교수 나카조 도모이치가 어머니의 유언으로 동생이 사고사가 아닌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유언의 진의를 가리기 위해 인적이 드물고 폐쇄된 마을, 야마쿠라로 향하며 시작된다.


여러모로 긴다이치 교스케 시리즈가 연상되는 도입부였는데, 폐쇄된 마을과 용신 연못에 전해져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전설까지, 추리소설의 팬이라면 반색할 수 밖에 없는 소재들이 가득 등장한다. 이미 이십여년은 더 지난 일이라 많은 시간이 지나며 사람은 죽고 기억은 희미해져 사건의 추적에 어려움을 더한다. 폐쇄된 마을의 분위기 표현 역시 일품이다. 마치 마을 전체가 도모이치를 배척하는 듯한 느낌은 작품을 읽으며 내내 으스스한 공포감을 더한다. 젊은 여인은 겁을 먹은 듯 말을 아끼고, 노인은 입을 다문 채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는 그를 따라 다니며 감시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요즘 소설들과 다르게 고전명작으로서 가지는 재미가 특별한데, 무려 이 소설의 작가인 가지 다쓰오가 1928년생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일본인이 겪었던 당시의 상황부터, 그 이후 60년대가 다가오며 사회가 변화하는 진통 중 하나였던 학생소요사태까지 이 모든게 생생한 경험을 담아 표현된다.


스포일러가 될까 언급이 조심스럽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나하나가 단순한 사건의 배경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세밀한 복선을 담아 모두 작품에 긴밀하게 활용된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트릭과 촘촘하게 짜인 복선에 정통 알리바이 트릭까지 모든게 하나로 맞물리자 하나의 걸작 추리소설로 완성된다.



"추리 소설로 치면 바로 지금이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모든 단서가 다 나온 시점이야." p378



'복선의 신, 깨어나다!'라는 띠지의 문구 덕분에 평상시 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작품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을 때는 뒤통수가 얼얼해질 정도로 충격을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후 작품을 한 번 더 읽고 싶게 만들며 다시 보는 작품의 도입부는 독자를 더 놀라게 만든다.


고전 명작이 무엇인지, 이 작품이 왜 추리소설의 고전 명작이라고 불리는지 제대로 알려준 작품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를 모든 추리소설의 팬들에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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