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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우
이다모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8월
평점 :

한국의 미쓰다 신조 탄생이라는 띠지에 홀려 아프로스미디어에서 출간된 귀우를 펼쳤습니다. 500p가 넘는 벽돌이 생각나는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첫장을 펼쳤으나 오후 다섯시쯤 시작한 독서는 중간에 저녁을 먹었음에도불구하고 저녁 9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미쓰다 신조 탄생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릴 정도로 호러와 미스터리 그리고 오컬트를 완벽한 비율로 조합한 작품이었고 도무지 이다모 작가의 첫작품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필력으로 장면하나하나를 생생하게 표현해 공포감을 압도적으로 드러낸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귀우는 미스터리 호러 장르 문학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Y출판사의 인턴으로 일하다 이제 곧 작가로 데뷔를 앞둔 주인공 토모루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 시작합니다.

이다모 작가님의 소개글을 보면 자신을 등장인물에 대입시켜 몰입하신다고 하는데 이번 작품의 몰입대상이 바로 토모루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작품으로 돌아와 토모루는 9살 때 산괴가 등장한다는 산속에서 친구들과 놀다 노란눈의 괴이를 마주하게 됩니다.
히메코의 뒷 편에 서 있던 노란 눈의 산괴를 목격한 다음날 히메코는 사망하게 되고 연이어 그날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가정에도 액운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복..며..얼.. 고..아..안..아..아..악..]
(잡음 소리) / (갑작스럽게 테이프가 늘어지며 꺼림칙한 소리가 울린다.) p72
소설의 초중반부는 전통적인 호러 오컬트 소설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드러내며 진행되는데요. 이런 공포를 글로 표현하는데 있어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소설 귀우는 이 부분을 너무 훌륭하게 이뤄냅니다.
그 마대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건, 작은 다리였다. 땅에서 이리저리 구른 듯 지저분해진 다리 두 개. 계속해서 빠져나오는 한 마대 안에 있던 건, 일말의 희망마저 불식시키는 미동도 없는 남자아이의 시체였다. p170
목이 잘려나간 인형들로 가득한 미아키의 집과 아사미가 없는 집에서 들려오는 아사미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토모루의 장면은 소설을 읽으면서도 일본 공포영화를 마치 지금 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 처럼 머리속에서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쓰러진 묘비들이 즐비한 곳에서 단 하나의 묘비만이 우뚝 서 있는 장면은 공포스러운 장면없이 너무나도 괴이하며 소름이 돋는 장면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면 미쓰다 신조 작가의 팬들에게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포스러운 장면의 표현은 이미 미쓰다 신조 그 이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특히 글씨가 기울어지며 표현되는 부분은 소설을 읽다가도 흠칫거리며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네도 생각해봐. 이게 만약 자살이라면, 40대 여성이 혼자 힘으로 도구 하나 사용하지 않고 양 발목을 비틀어 부러뜨리고, 세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액사하기 위해 란마와 장지문 사이의 기둥에 줄을 매달아 목을 걸어 허우적대다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되지." p213
이렇게 현대에서 헤이안시대를 넘나들며 현대의 민속학자와 헤이안시대의 음양사의 눈과 입을 빌려 표현되는 괴이한 일들은 소설의 중후반을 지나며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통해 순수 오컬트 호러 장르에서 미쓰다 신조의 작풍이 강하게 느껴지는 호러미스터리 장르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소설 귀우는 복멸관악의 불상과 여우요괴의 괴이를 상식으로 설명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괴이가 남아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여운을 전합니다.
한국 사람이 쓴 소설이면서도 그 어떤 소설보다 일본 오컬트 호러 미스터리를 정통하게 표현했으며 오히려 번역된 소설보다 더 술술 읽히며 이해하기 쉬웠던, 미리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한국소설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소설 귀우!
미쓰다 신조를 좋아하신다면 반드시 읽어보시길 추천드리며 혹시 호러 미스터리 장르를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도 괴이와 추리가 절묘하게 엮여가는 해당 장르의 입문작으로 귀우를 추천드립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강력추천하고 싶은 소설 '귀우'의 서평을 마칩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살인적인 고요 속에 속수무책으로 갇히고 말았다.
"무섭네."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