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로 그 시점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게 당연한 일입니다.

나코시 환자와 저도 이런데 환자의 가족과 환자 사이에서는 더 직접적이랄까,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환자의 가족은 정신적으로 지친 환자를 ‘이해해주어야만 한다"고자신을 몰아붙입니다. 가족이니까 서로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거지요. 서로의 관계가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텁고 가까우니까요. 훨씬 까다롭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내보내는 사인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아, 무조건 따른다는 게 복종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되 억지로 듣지는 않는, 어느 정도는 단순한 위치 설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위치 설정이 어렵다는 사람도 많지요. 알고는있지만 실행하기는 힘드니까요.

요로 바꿔 말하자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바람직하지요. 일단 알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한 건 좋지않아요. 별로 좋을게 없습니다. 알려 하지 않는 편이 나아요. 알았다손 쳐도 별로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 P11

나코시 달라지지 않지요. 오히려 상대방이 ‘나를 알아줄 것이다‘라고 기대하면 알아주지 못할 때 쓸데없는 마음의풍파가 일어납니다. 사실 알아주지도 못하고요. - P12

모르는 부분은모르는 채로 존중하는 게교양입니다. 서로 전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하나를 논쟁해봤자 10년이지나도 일치점을 찾을 수 없지요.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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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문제를 풀 때 "이건 나만의 정답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정답은 누구에게나 같으니까요. 모두가 웃을 때 혼자만 우는 친구가 있다면 "왜 그래?"라고 말을 걸겠죠. 합당한 이유로 운 것이라면 걱정이나동정을 할 수 있지만, 이상한 대답이 돌아온다면 한번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테지요.
즉 감정도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친구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친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게 우정입니다. 자기만의 감정은 대인관계에서는 무의미해요.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의 논리는 의미가 없어요. 요컨대 마음이라는 건 상대와 공통이 아니면의미가 없죠. 공통이란 서로 같은 것이고, 개성이란 같은게 없는 것입니다. - P108

의식은 머릿속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바꾸는 건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세계‘밖에 없어요. 공부도 일도,
하다 지치면 집 밖을 한바퀴돌고 오잖아요. 그거예요.
밖에서 들어오는 감각이 머리를 새롭게 환기시켜주거든요. 가령 어딘가 갔을 때, 사람은 그 장소에 뭐가 있었는지 전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의식으로 세계를 파악해서특정한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의식은 마치 스포트라이트 같은 거예요. 빛이 닿는 부분 말고는 보이지 않게됩니다. - P113

유용한 것이 훌륭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 P128

분명히 말해 요즘 사람들은 바보 같습니다. 몸을 머리로 걱정하니까요. 몸과 머리, 어느 쪽을 믿을 수 있나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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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세상이기에 더더욱 편한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편하게만 지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명백하죠. 스스로 배우지 못합니다. 차만 타면 못 걷게 되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 P87

요컨대 환자의 정보가 필요하지 환자 본인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CT나 MRI 검사를 하잖아요. 그 검사에서는 엑스레이 투과도가 수치로 나옵니다. 즉 환자의 몸을 정보로 바꾼 거죠. 숫자를 그대로 보여줘봤자 의사는 모르니까 영상으로 나타낸 거예요. - P90

그렇다면 인간 자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러분의 실물은 ‘노이즈입니다. 본인이 노이즈가 되는 세계에서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건 당연하죠. 그러니 여러분, ‘아, 나는 노이즈구나‘
생각해두면 됩니다. 컴퓨터 중심의 세계는 그런 곳이에요. 한마디로 ‘당신은 필요 없다‘죠.
- P91

아이가 늘지 않는 건 근본적으로 도시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도시는 의식의 세계고, 의식은 불확정 요소가 많은 자연을 싫어합니다. 인공적인 세계는 그야말로부자연스러운 세계예요. 그런데 아이는 자연이잖아요.
생각대로 되지 않죠. 예정대로 되지 않고요. 설계도도 없어요. 하자 있는 물건이니 교환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의식‘은 그런 존재를 싫어해요. 의식의 세계에서는 - P94

모든 게 ‘이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라는 알고리즘에 따라움직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되지 않아요. 자연 그 자체니까요. 고생해서 키워봤자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모르죠.
잘하면 연예인이 될 수도 있지만, 범죄자가 될 가능성도있습니다. 그런 위험한 존재와 얽히지 않는 편이 무난하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가 줄어드는 게 당연하죠. 그런위험한 존재를 누가 낳을까보냐‘ 하고요. 고양이가 마음편하죠. 아이만큼 힘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지금은 자식을 대신해 키우기도 하지요. 인간 아이는 좀 부담스러우니 고양이가 자식보다는 책임질 것이 없어 좋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자연과 마주서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생각합니다. 어째서 잊었는가. 의미로 가득한 의식의 세계에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 P95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된‘ 사람은 얼마든지있잖아요. 결혼한 뒤로 무언가에 대한 의견이 바뀐 사람,
아이를 낳은 뒤로 사고방식이 변한 사람, 떠오르는 경우는 여럿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늘 변하는 중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의식은 언제까지나 같은 ‘나‘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실제로 변하는 ‘나‘가 있는 한편, 내내 변하지 않는
‘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정보예요.
생년월일, 키와 몸무게, 가족 구성, 학력 등 누구나 자신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요. 정보는 변하지 않습니다. - P105

다. 그러니 언제든 나는 나라고 인식하는 거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째서 나는 나라고 인식할 수있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세요. 눈을 뜨면 동시에 의식은 ‘나‘라는 정보를 꺼내옵니다. 만약 그 정보가 없으면어떻게 될까요. ‘나는 누구지? 여기는 어디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릴 테죠. 그래서 누구나 ‘나‘라는 정보를 계속 보존하는 겁니다.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건 ‘나는 정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보화 사회란 IT기술이 발달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죠. 당치도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정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예요.
자신이 정보라고 생각한다는 건,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정보는 불변이니까요. 그로써 가장 곤란한 건 교육 아닐까요. 인간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무언가를 안다는 건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게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이 변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 P106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죠. 만약 변한다는 걸 알면, 아이가 변하는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있겠냐며 야단법석을 떨겠지요. 아이도 아이대로 ‘변하지 않는 나‘를개성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개성이란 건 대체 뭘까요. 나한테는 그게뭔지 명확합니다. 사람을 보면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체형을 하고 있잖아요. 혈액형도 그렇고요. 그건 틀림없는개성이 아닌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개성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개성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즉 개성은 바로 의식에 있다고 믿는 거죠. 개성이란 나만의 생각과기억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없어요.
개성이 마음이나 머릿속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의사 면허를 딴 뒤 정신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음의 개성이 뭔지 통절히 깨달았죠. 병실의흰벽에 자기 똥으로 이름을 쓰는 환자가 있었던 거예요. 그게 마음의 개성입니다. 인상적이었어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봤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 P107

"남의 마음을 아는 마음을 교양이라고 한다." 대학생시절 은사님의 잊을 수 없는 말입니다. 지식이 많은 것보다 타인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무턱대고 "개성을 키워"라고 말하면서 이런교양은 등한시하는 게 아닐까요. 이러다 오히려 남의 마음은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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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의 재미! 그래서 나는 책을 읽나보다.


를 구분할 줄 알게 되면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것입니다.
차이를 발견하는 비결은 ‘숙련‘이에요. 이 숙련으로 ‘안
‘목‘이 생기는 거죠. 이건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종류라거나, 이건 달라 보이지만 같은 종류라거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차이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골동품 감정도 마찬가지잖아요.
차이를 알게 되는 것, 그것은 요컨대 ‘발견‘입니다. 왜여든이 넘어서도 질리지 않고 곤충을 보고 있냐고요? 돈도 전혀 안 되고 존경도 못 받지만 이 ‘발견‘이 있어서랍니다.
여러분은 발견이란 무언가를 찾아내는 거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니에요. 이를테면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같은 종류라고 생각했던 곤충이 실은 다른 종류라는걸 깨달았다고 칩시다. 그건 ‘차이를 몰랐던 자신‘이 ‘차이를 아는 자신‘으로 변했다는 뜻이죠.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 셈입니다. 즉 ‘발견‘이란 바로 ‘내가 변하는 것‘이에요. 내가 변한 순간, 세계도 변합니다.
발견이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실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곤충을 봅니다. 이것도 다른 - P60

‘이렇게 될 거야‘라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전혀 아닌경우도 있는 것이 자연의 재미있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는 ‘이렇게 하면 그렇게 되는‘ 일로 가득해서 결론이 미리 보이잖아요. 그러니 전혀 재미있지도 우습지도 않아요. - P64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잡는지도 일절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건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 즉삶의 방식을 발견해나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식을 발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는 뭘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거예요. 보통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지요. 생각하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됩니다. 직장인이 ‘나는 뭘 위해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겠죠. 하지만 그건 때때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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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여간해서는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아요. - P44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남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인사를하는 것도 아주 서툴렀습니다. 어머니는 개업의였으니발이 넓고 사교적이었지요. 길을 가던 사람이 나한테도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자주 무시하고 지나가서어머니에게 만날 혼났죠.
그 이유를 아버지가 죽고 30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가 인사에 서툰 것이아버지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아버지가 죽었다‘ 하고 실감했지요. 그랬더니 갑자기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인사를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직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직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어, 그러니 아버지랑 헤어진 게 아니야,
하고 생각했던 거죠.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때도 아버지의 죽음을 완전히 해석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거의 다 해석했다고 생각한 것이 마 - P45

흔이 넘어서였고,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건 쉰 살이 넘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뭐든 간단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 P46

그 체험을 뒤집으면, 그럼 믿을 수 있는 건 뭘까 하고생각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신용할 수 있는 건
‘행동‘이지 ‘말‘이 아니구나, 하고요.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고있으면 됩니다.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죠.
- P48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논리적으로말해 신앙은 자기 부정의 반대입니다. 믿는다는 행위와신이라는 존재는 거의 동급이에요. 신은 정체를 알 수없으므로, 신을 믿는 건 요컨대 ‘믿는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더 말하자면 자기 자신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나마찬가지예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 따위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어지간히 체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 P50

내가 이렇게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나는 80여 년 동안 내내 의심해왔으니까요. 그렇잖아요. 위화감을 못 느끼면 의심도 못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의심하다 보면그게 훈련이 돼요. 선생님이 하는 말이라도, 신문에 쓰여있는 내용이라도, ‘실상은 어떨까?‘ 일일이 생각하죠.
의심하거나 생각하는 건 매일 운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근육이 생깁니다. 편하게 있으면 체력은 절대길러지지 않아요. 그래서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을 보면화가 납니다. 의심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며,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 P51

세상이 뒤집어지는 변화를 체험하면, 다른 누군가를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스스로 생각을하게 됩니다. 직접 판단하는 수밖에 없구나, 하고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가질 기회가 없으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는 거겠지요.
여러분, 본인이 무엇을 믿는지 알고 있나요. 돈 같은건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에요. 내 손에 있는 만 엔을쓸 수 있는 이유는, 돈을 받은 상대가 그걸 또 다른 곳에서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돈이 아니게 됩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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