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세상이기에 더더욱 편한 것만 해서는 안 됩니다. 편하게만 지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명백하죠. 스스로 배우지 못합니다. 차만 타면 못 걷게 되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 P87
요컨대 환자의 정보가 필요하지 환자 본인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CT나 MRI 검사를 하잖아요. 그 검사에서는 엑스레이 투과도가 수치로 나옵니다. 즉 환자의 몸을 정보로 바꾼 거죠. 숫자를 그대로 보여줘봤자 의사는 모르니까 영상으로 나타낸 거예요. - P90
그렇다면 인간 자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러분의 실물은 ‘노이즈입니다. 본인이 노이즈가 되는 세계에서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건 당연하죠. 그러니 여러분, ‘아, 나는 노이즈구나‘ 생각해두면 됩니다. 컴퓨터 중심의 세계는 그런 곳이에요. 한마디로 ‘당신은 필요 없다‘죠. - P91
아이가 늘지 않는 건 근본적으로 도시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도시는 의식의 세계고, 의식은 불확정 요소가 많은 자연을 싫어합니다. 인공적인 세계는 그야말로부자연스러운 세계예요. 그런데 아이는 자연이잖아요. 생각대로 되지 않죠. 예정대로 되지 않고요. 설계도도 없어요. 하자 있는 물건이니 교환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의식‘은 그런 존재를 싫어해요. 의식의 세계에서는 - P94
모든 게 ‘이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라는 알고리즘에 따라움직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되지 않아요. 자연 그 자체니까요. 고생해서 키워봤자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모르죠. 잘하면 연예인이 될 수도 있지만, 범죄자가 될 가능성도있습니다. 그런 위험한 존재와 얽히지 않는 편이 무난하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가 줄어드는 게 당연하죠. 그런위험한 존재를 누가 낳을까보냐‘ 하고요. 고양이가 마음편하죠. 아이만큼 힘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지금은 자식을 대신해 키우기도 하지요. 인간 아이는 좀 부담스러우니 고양이가 자식보다는 책임질 것이 없어 좋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자연과 마주서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생각합니다. 어째서 잊었는가. 의미로 가득한 의식의 세계에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 P95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된‘ 사람은 얼마든지있잖아요. 결혼한 뒤로 무언가에 대한 의견이 바뀐 사람, 아이를 낳은 뒤로 사고방식이 변한 사람, 떠오르는 경우는 여럿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늘 변하는 중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의식은 언제까지나 같은 ‘나‘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실제로 변하는 ‘나‘가 있는 한편, 내내 변하지 않는 ‘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정보예요. 생년월일, 키와 몸무게, 가족 구성, 학력 등 누구나 자신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요. 정보는 변하지 않습니다. - P105
다. 그러니 언제든 나는 나라고 인식하는 거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째서 나는 나라고 인식할 수있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세요. 눈을 뜨면 동시에 의식은 ‘나‘라는 정보를 꺼내옵니다. 만약 그 정보가 없으면어떻게 될까요. ‘나는 누구지? 여기는 어디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릴 테죠. 그래서 누구나 ‘나‘라는 정보를 계속 보존하는 겁니다.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건 ‘나는 정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보화 사회란 IT기술이 발달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죠. 당치도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정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예요. 자신이 정보라고 생각한다는 건,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정보는 불변이니까요. 그로써 가장 곤란한 건 교육 아닐까요. 인간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무언가를 안다는 건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게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이 변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 P106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죠. 만약 변한다는 걸 알면, 아이가 변하는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있겠냐며 야단법석을 떨겠지요. 아이도 아이대로 ‘변하지 않는 나‘를개성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개성이란 건 대체 뭘까요. 나한테는 그게뭔지 명확합니다. 사람을 보면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체형을 하고 있잖아요. 혈액형도 그렇고요. 그건 틀림없는개성이 아닌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개성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개성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즉 개성은 바로 의식에 있다고 믿는 거죠. 개성이란 나만의 생각과기억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는 의미가없어요. 개성이 마음이나 머릿속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의사 면허를 딴 뒤 정신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음의 개성이 뭔지 통절히 깨달았죠. 병실의흰벽에 자기 똥으로 이름을 쓰는 환자가 있었던 거예요. 그게 마음의 개성입니다. 인상적이었어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봤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 P107
"남의 마음을 아는 마음을 교양이라고 한다." 대학생시절 은사님의 잊을 수 없는 말입니다. 지식이 많은 것보다 타인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무턱대고 "개성을 키워"라고 말하면서 이런교양은 등한시하는 게 아닐까요. 이러다 오히려 남의 마음은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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