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요. 곤충을 어떻게 관찰하느냐는 내 마음대로예요. 관찰 방법이 정답인가 정답이 아닌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오해와 착각 때문에 곤충 표본이 나에게 화를 낸다든가 곤충과 내가 어색한 사이가 되지도 않지요.어린 시절부터 이런 것들을 좋아했어요. 이런 작업이 내게 가장 잘 맞고 즐겁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한편 인간에대한 행동은 다양한 반응이 돌아와요. 젊은 시절에는 생각이 많았어요. ‘내가 이런 곳에 있어도 괜찮을까?‘, ‘세상사람들이 받아들여줄까?‘ 하고요. 그래서 거꾸로 ‘세상을 - P88
이해하자‘라든가 ‘사람을 이해하자‘라는 동기가 나오지요. 어떻게 보면 그 동기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닐까 싶어요. 또 곤충의 좋은 점은 오래 관찰하고 나면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는 거지요. 전에 일주일 정도 곤충을 관찰했더니 사람이 그리워졌어요. 역시 반응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고, 전철역 매점의 직원이건 누구건 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속세를 벗어난 사람이 못 되니까요. - P89
그 행위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사람 때문에 지쳤다면사람이 아닌 것을 상대하라 - P91
나코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큰 나머지 이야기에 연출이들어가고 자신이 믿고 있는 ‘또 다른 나‘를 표현하려고 하거든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런 장대한 연출에 저자신도 말려들어가요.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말의 의미를 순수하게 이해하려고 할수록 결과적으로는 현실에서 격리되어갑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빠셔버려요. - P95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역시 감각을 중시하는 인간‘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습니다. 의식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상사니까 말을 들어야지‘라고 생각하겠지요. 이는 의식 중심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감각을 중시한다면존경할 수 있는 인물인가 아닌가가 먼저일 것입니다. 게다가 그 감각은 지속되는 게 아니라 매 순간마다, 상황마다 달라집니다. ‘아, 괜찮은 이야기네‘라든가, ‘역시 이사람은 감각이 좋아‘ 하고 생각했다가도 이튿날에는 시시한이야기를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겠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냥 바보였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요. 이건 감각이라서 끊임없이 갱신되지요. 저는 이 부분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사나 윗사람에게 "자네가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말을 듣는다면 견딜 수없을 거예요. - P64
제가 곤충 표본을 보고있으면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고 물어요. 저는 거꾸로 "당신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물어보고 싶지만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당신을 나는 순순히 허용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지요.그렇게 말하고 싶네요.진지하게 대답하자면 곤충은 논리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데요.그렇게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요. 즐거우니까 관찰하는것이고 딱히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나코시 의미를 묻기에만 급급한 것 같네요. - P64
두꺼운 학술서 같은 걸 보면 두께만 봐도 "아, 이책을 쓴 사람은 역시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잘난 체하려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너무 길면 누가 읽겠어요? 그런 책은 구성이 뻔하지요. 처음에 어려운 주제를제시하고, 그 다음에 지식과 정보만 줄줄이 늘어놓아요.하지만 지식과 정보보다 인식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이 더 중요해요. 그과정과 시간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이러이러한 답에 도달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지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요. - P74
마침 오늘 이 대담을 끝낸 뒤에 하코네(箱根 쪽 집에가서 곤충 표본을 보려고 해요. 생각만으로도 벌써 들떠요. 곤충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원고가 빨리 쓰여요.의욕이 생기지요. 거꾸로 곤충을 관찰하지 않고 도쿄에만있으면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곤충을 한마디로 말하면 ‘쓸데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어요. - P87
나코시 레지던트가 되고 5년 차였던 것 같은데요. 어느 순간 ‘아, 몰라도 괜찮구나‘ 싶었습니다. 서서히 느낀 것이아니라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좀 더편해졌어요. 자의식 과잉이었다는 걸 깨달은 거지요. 제가인간이 덜 되었다거나, 세상에 공헌해야만 한다거나, 제몫을 해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부 과민한 자의식에서 나오는 이기주의이니까요. 저는 갑자기 떠오른 감각에 순종했습니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요. 왠지 힘이 슥빠졌다고 해야 하나요. 어느날 당시제지도교수인 다치바나 선생님과 당직을 섰는데 구겨진 의사 가운을 입고 건물을 잇는 복도를 걷는 제 뒷모습을 보시고서 "나코시 군,정신과 의사의 뒷모습이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P39
"제가 강연을 할 때 종종 이야기하는 겁니다만 ‘아,뭔가 좀 이상하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으라고 말해요. 납득하지 않고 의문을 계속 품는 게 중요하지요. 그 당시에는 풀지 못하더라도 ‘이상하다‘는 감각은 기억해둬요. 그러면 3년이나 5년, 어쩌면 10년, 20년 정도 지난 후에 갑작스럽게 풀리기도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감각을 잊어버려요. 해결하지 못한 채로 머리에 남아 있으면 불쾌하기 때문이지요. 그 불쾌함을 없애려고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고납득해버려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 P40
그렇지요. 결국 그게 가장 성가실지도 모르겠네요.상대방이 억지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이미 내선의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걱정하는 마음의 대부분은 인정욕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불안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는 경우가 많아요. 요컨대 불안한 사람은 자신입니다. 상대방이 아니에요. 자신의 부모님이나 자녀, 형제 등가족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실패하지 않을까‘라든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에서 불안이 생겨요. - P44
맞습니다. 불안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을 알고 싶다는 건 뒤집어보면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이에요.상대방을 알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상대방을 모르는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걸까요?알 리가 없지요. 이 또한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나는 이런 인간이다‘라는 생각은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변해요.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 없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 P47
마치 선생님이 제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그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마음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거든요.깨닫지 못하면 지나쳐버리고 그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가는 어떤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아요. 여행지에서 길을 물어볼 때 되도록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찾으려 하잖아요? 사실 그게 중요한 능력입니다. 내 편을 찾아내는 감성 말이지요. 그 감성이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안다‘라든가 ‘깨닫는다‘를 논하기 이전에 그런감성을 연마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타인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내 편을 찾아내는 감성 - P53
번뜩 깨달음이 오는 것처럼 무심결에 말한 게 들어맞는다든가, 예기치 못하게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맞힐 때가 있지요. 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나‘와는 다른, 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떤 감각이 그렇게 만든다는 생각이듭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이론을 구축하고 어떤논문에 나오는 이론에 따라 열심히 고민한 다음, ‘자, 이러면 상대방도 알아주겠지‘라는 순서로 일어나는 일과는다르다고 봅니다.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순간입니다. 깨달음 또한 한순간에 찾아와요. 그 순간을 내면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이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지만나이를 먹으면 점점 알게 돼요.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의 문제는 바꾸어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내 인식의 문제거든요. 젊은 사람은 종종 상대방에 대해 자기가 인식한 내용만 가지고 이 사람은 분명 이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을 그렇게 인식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태도가 정해진다는 거예요. 또는 행동이 정해지지요. - P56
인식의 중요성이랄까 위험성은 이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어떤사람인가 때문이 아니고요.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하는가가 정해지는군요. 자신이 인식한 바, 내가 멋대로 만들어낸 인식 그자체에 빠져 있달까, 튜브 안이 다 차 있어 대류하기만 할뿐 그 바깥쪽, 즉 사실이 보이지 않는 상태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 인식만으로 상대방을 다 안다고 판단한다면......이와 비슷한 것이 ‘오해‘ 입니다. 이것도 참 흥미로워요. 종종 "저 사람은 오해하고 있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정답‘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하는 말이에요. 저는 늘 그게 이상하다고 이야기해요.오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오해는 오해인 채로, 오해라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놔둘 수밖에 없어요. - P57
오해가 있기 때문에 보다 심오한 정답에 다다르거나, 정답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겠지요.불교에 ‘신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과 행위는 크게 세가지 ‘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몸으로 짓는 ‘신업‘, 입으로 짓는 ‘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업‘을 말합니다. 이 ‘신구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딱 일치할 때가 있습니다. 명상이 바로 그런 상태인데요.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어서 이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구‘의 일치는어쩌면 숱한 오해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생겨나는 한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건 너무나 얻기 힘들기 때문에 오해를다 배제해서 틀린 것은 이 세상에서 없애고 의미 있는 정답만 세상에 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네요.요즘 세상에는 의미가 없는 건 필요 없다고 말하니까요. 하지만 오해는 오해인 채로 놔두면 됩니다. - P61
그래서 요즘 내가 심리학책을 사모으는구나.나는 남도 나도 모르겠다.남은 됐고, 나에대해서 알아봐야겠다.
‘사람은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라고생각하면 편하다.요로하지만 저도 젊은 시절에는 사람을 알려고 했었지요. 남들처럼 말이에요. 좀처럼 잘되지 않았지만요. 왜 내가 이 사람을 알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 필연적으로 심리학이나 정신과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 P36
재미있는 건 부모는 아이를 적당히 봐주지만 아이는 부모를 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훈련이 되겠지요.어린아이가 아니더라도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은나를 알아서 헤아리거나 적당히 봐주지 않아요. 힘 있는사람이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어요.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