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역시 감각을 중시하는 인간 ‘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습니다. 의식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상사니까 말을 들어야지‘라고 생각하겠지요. 이는 의식 중심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감각을 중시한다면존경할 수 있는 인물인가 아닌가가 먼저일 것입니다. 게다가 그 감각은 지속되는 게 아니라 매 순간마다, 상황마다 달라집니다. ‘아, 괜찮은 이야기네‘라든가, ‘역시 이사람은 감각이 좋아‘ 하고 생각했다가도 이튿날에는 시시한이야기를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겠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냥 바보였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고요. 이건 감각이라서 끊임없이 갱신되지요. 저는 이 부분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사나 윗사람에게 "자네가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말을 듣는다면 견딜 수없을 거예요. - P64
제가 곤충 표본을 보고있으면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고 물어요. 저는 거꾸로 "당신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물어보고 싶지만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당신을 나는 순순히 허용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진지하게 대답하자면 곤충은 논리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셔요. 즐거우니까 관찰하는것이고 딱히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나코시 의미를 묻기에만 급급한 것 같네요. - P64
두꺼운 학술서 같은 걸 보면 두께만 봐도 "아, 이책을 쓴 사람은 역시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잘난 체하려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너무 길면 누가 읽겠어요? 그런 책은 구성이 뻔하지요. 처음에 어려운 주제를제시하고, 그 다음에 지식과 정보만 줄줄이 늘어놓아요. 하지만 지식과 정보보다 인식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이 더 중요해요. 그과정과 시간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이러이러한 답에 도달한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지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요. - P74
마침 오늘 이 대담을 끝낸 뒤에 하코네(箱根 쪽 집에가서 곤충 표본을 보려고 해요. 생각만으로도 벌써 들떠요. 곤충을 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원고가 빨리 쓰여요. 의욕이 생기지요. 거꾸로 곤충을 관찰하지 않고 도쿄에만있으면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곤충을 한마디로 말하면 ‘쓸데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어요.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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