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코시 레지던트가 되고 5년 차였던 것 같은데요. 어느 순간 ‘아, 몰라도 괜찮구나‘ 싶었습니다. 서서히 느낀 것이아니라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좀 더편해졌어요. 자의식 과잉이었다는 걸 깨달은 거지요. 제가인간이 덜 되었다거나, 세상에 공헌해야만 한다거나, 제몫을 해내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부 과민한 자의식에서 나오는 이기주의이니까요. 저는 갑자기 떠오른 감각에 순종했습니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요. 왠지 힘이 슥빠졌다고 해야 하나요. 어느날 당시제지도교수인 다치바나 선생님과 당직을 섰는데 구겨진 의사 가운을 입고 건물을 잇는 복도를 걷는 제 뒷모습을 보시고서 "나코시 군, 정신과 의사의 뒷모습이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P39
"제가 강연을 할 때 종종 이야기하는 겁니다만 ‘아, 뭔가 좀 이상하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으라고 말해요. 납득하지 않고 의문을 계속 품는 게 중요하지요. 그 당시에는 풀지 못하더라도 ‘이상하다‘는 감각은 기억해둬요. 그러면 3년이나 5년, 어쩌면 10년, 20년 정도 지난 후에 갑작스럽게 풀리기도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감각을 잊어버려요. 해결하지 못한 채로 머리에 남아 있으면 불쾌하기 때문이지요. 그 불쾌함을 없애려고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고납득해버려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 P40
그렇지요. 결국 그게 가장 성가실지도 모르겠네요. 상대방이 억지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이미 내선의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걱정하는 마음의 대부분은 인정욕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불안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는 경우가 많아요. 요컨대 불안한 사람은 자신입니다. 상대방이 아니에요. 자신의 부모님이나 자녀, 형제 등가족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실패하지 않을까‘라든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에서 불안이 생겨요. - P44
맞습니다. 불안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을 알고 싶다는 건 뒤집어보면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이에요.
상대방을 알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상대방을 모르는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걸까요?
알 리가 없지요. 이 또한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런 인간이다‘라는 생각은 자신을 틀에 가두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변해요.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 없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 P47
마치 선생님이 제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면 그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마음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거든요.
깨닫지 못하면 지나쳐버리고 그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는가는 어떤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아요. 여행지에서 길을 물어볼 때 되도록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찾으려 하잖아요? 사실 그게 중요한 능력입니다. 내 편을 찾아내는 감성 말이지요. 그 감성이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안다‘라든가 ‘깨닫는다‘를 논하기 이전에 그런감성을 연마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타인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내 편을 찾아내는 감성 - P53
번뜩 깨달음이 오는 것처럼 무심결에 말한 게 들어맞는다든가, 예기치 못하게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맞힐 때가 있지요. 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나‘와는 다른, 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떤 감각이 그렇게 만든다는 생각이듭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바탕으로 이론을 구축하고 어떤논문에 나오는 이론에 따라 열심히 고민한 다음, ‘자, 이러면 상대방도 알아주겠지‘라는 순서로 일어나는 일과는다르다고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순간입니다. 깨달음 또한 한순간에 찾아와요. 그 순간을 내면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 젊은 시절에는 이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지만나이를 먹으면 점점 알게 돼요.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의 문제는 바꾸어 말하자면 상대방에 대한 내 인식의 문제거든요. 젊은 사람은 종종 상대방에 대해 자기가 인식한 내용만 가지고 이 사람은 분명 이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방을 그렇게 인식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태도가 정해진다는 거예요. 또는 행동이 정해지지요. - P56
인식의 중요성이랄까 위험성은 이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어떤사람인가 때문이 아니고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하는가가 정해지는군요. 자신이 인식한 바, 내가 멋대로 만들어낸 인식 그자체에 빠져 있달까, 튜브 안이 다 차 있어 대류하기만 할뿐 그 바깥쪽, 즉 사실이 보이지 않는 상태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 인식만으로 상대방을 다 안다고 판단한다면......
이와 비슷한 것이 ‘오해‘ 입니다. 이것도 참 흥미로워요. 종종 "저 사람은 오해하고 있다",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이건 ‘정답‘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하는 말이에요. 저는 늘 그게 이상하다고 이야기해요. 오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오해는 오해인 채로, 오해라는 걸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놔둘 수밖에 없어요. - P57
오해가 있기 때문에 보다 심오한 정답에 다다르거나, 정답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겠지요.
불교에 ‘신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과 행위는 크게 세가지 ‘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몸으로 짓는 ‘신업‘, 입으로 짓는 ‘업‘,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업‘을 말합니다. 이 ‘신구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딱 일치할 때가 있습니다. 명상이 바로 그런 상태인데요.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어서 이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구‘의 일치는어쩌면 숱한 오해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생겨나는 한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건 너무나 얻기 힘들기 때문에 오해를다 배제해서 틀린 것은 이 세상에서 없애고 의미 있는 정답만 세상에 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세상에는 의미가 없는 건 필요 없다고 말하니까요. 하지만 오해는 오해인 채로 놔두면 됩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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