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뿐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반성마저 별반 없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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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가가 장서가인 이유는 장서가가 책을 읽는 독서가와는 사뭇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장서의 괴로움》의 발문을 부탁받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한글 파일을 읽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기까지가 독서가다. 그렇지 않은가?
원고를 읽었을 뿐 아니라, 보통 독자에게는 기회가 오지도 않을발문까지 썼으니 누가 《장서의 괴로움>을 나보다 더 잘 읽었다고 하리오(번역자와 편집자는 제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독서가 이상인 나는 이 책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무척 궁금한 데다 형태를 가진 그것을 만져보고, 갖고 싶다. 이 감정을오카자키 다케시는 이렇게 말한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여기서 지은이는, 전자서적(전자책 • e-Book)이
‘정보‘일 수는 있어도 책이랄 수는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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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장서가와 독서가가 완전히 다른 존재며 확연하게 분리되는 양태인 양 말했지만, 실제로는 두 부류가 확연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다른 존재라고 할 수도 없다. 많은 독서가가 장서가요, 장서가가 곧 독서가다(또 이 책의 지은이가 그런 것처럼, 독서가와 장서가는 많은 경우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 P10

장서가가 그랬던 것처럼, 숱한 장서가의 시초가 독서가였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의 물질성 때문이다. 책이 물질인 한,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거기에 어떤 가치나 감정을 부여하거나 읽고 난책을 곁에 쌓아두기만 해도 자연히 장서가가 되는 구조가 성립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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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높은 사람들, 그 무슨 자리깨나 앉아 있는사람들, 자기가 하는 일이 바른지 삐뚠지도 모를 뿐만아니라 두려움마저 없으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백두산, 한라산도 그 높이의 기준점을 하늘의 별이 아닌바다의 수평으로 정한 옛사람의 뜻을 헤아려 부단히 원점으로 회귀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P118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방어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물 이야기가 억세고 착한 사람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사람이다 보니 사람 문제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형, 잘 있으소.
1991.12. 마지막 날.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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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때마다 미칠 듯이 떠오르는 건 신동엽 시인의 4월은 갈아엎는 달이란 시입니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산천은 껍질을 찢고속잎은 돋아나는데4월이 오면내 가슴속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우리네 조국에도어느 머언 심저, 분명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1966년 4월)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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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십오륙 년 전 가을, 외가에 갔다가 외가 뒤안에 빨갛게 익은 수유를 처음 보고 정이 쏠려 심어 보겠다고마음먹었습니다. - P31

스님, 밭에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까 잡초, 독초가 기를 쓰고 자랍니다. 곡식이 자리 잡고 제대로 크면 잡초가 맥을 추지 못합니다. 세상도 그런 게 아닌가여겨 봅니다. - P36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 P37

한시간에 한 치쯤 매니까 일곱 자매자면 일흔 시간.
•걸리는데 옛날은 물론 지금도 자리 매면서 시간 따질라면 안 매는 게 좋지요. 날 건 다음 틈틈이 매다 보면 어느 틈에 손 뗄 때가 되는 게 일이지, 눈에 쌍심지 돋우고분초 다투며 살아봤자 고달파 나가자빠지지 별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일에 몰두하는 것과는 다르지요.
스님, 시류 타다 보면 안달하고 달달 볶이고 말 것 같아요. 그거 타지 말았으면 해요.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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