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가가 장서가인 이유는 장서가가 책을 읽는 독서가와는 사뭇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장서의 괴로움》의 발문을 부탁받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한글 파일을 읽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기까지가 독서가다. 그렇지 않은가?
원고를 읽었을 뿐 아니라, 보통 독자에게는 기회가 오지도 않을발문까지 썼으니 누가 《장서의 괴로움>을 나보다 더 잘 읽었다고 하리오(번역자와 편집자는 제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독서가 이상인 나는 이 책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무척 궁금한 데다 형태를 가진 그것을 만져보고, 갖고 싶다. 이 감정을오카자키 다케시는 이렇게 말한다. "책은 내용물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여기서 지은이는, 전자서적(전자책 • e-Book)이
‘정보‘일 수는 있어도 책이랄 수는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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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장서가와 독서가가 완전히 다른 존재며 확연하게 분리되는 양태인 양 말했지만, 실제로는 두 부류가 확연하게 분리되지 않으며 다른 존재라고 할 수도 없다. 많은 독서가가 장서가요, 장서가가 곧 독서가다(또 이 책의 지은이가 그런 것처럼, 독서가와 장서가는 많은 경우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 P10
장서가가 그랬던 것처럼, 숱한 장서가의 시초가 독서가였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의 물질성 때문이다. 책이 물질인 한,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거기에 어떤 가치나 감정을 부여하거나 읽고 난책을 곁에 쌓아두기만 해도 자연히 장서가가 되는 구조가 성립한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