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사랑

성 민(윤찬준)

​

어스름

산그늘 지자

농익은

감 떨어지고

외로운

허수아비의

사윈 슬픔

이슬 되어 내린다

​

날개 꺾인

기다림

부질없는

목마름

언제 접힐지 모르는데

허기진 사랑은

오늘도

달빛에 젖어

꺼이꺼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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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물 켜기(5)




유니폼이야 모두 같으니 누가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지는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석규의 눈에 그녀는 다른 주유 여직원과 다르게 보였다.

아니 다르게 느껴졌다.

 

자그마한 키에 하얀 장갑을 끼고 하얀 스포츠화를 신고 있는 그녀는 긴 생머리를 치렁대며 하얀 치아를 살포시 드러내며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석규의 가슴을 뛰게 하였던 것이다.

 

그녀를 보는 순간 석규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계속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묘책을 떠올리기도 전에 석규의 차는 주유기에 도착하게 되었다.

 

드디어 석규 차례가 되었다.

그녀가 운전석 옆 창문으로 다가왔다.

 

“얼마 넣어드릴까요?”

 

풋풋한 비누 내음이 맡아졌다.

진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비누 내음이었다.

석규는 그런 내음을 좋아했다.

 

간혹 너무 진하거나 강렬한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여성들이 있는데 석규는 그런 여성에게서 우아함을 느끼기보다 천박함을 느꼈다.

 

“아...”

 

석규는 원래 5만 원 정도 주유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입에서는 예상하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1만 원만 넣어주세요.”

 

석규의 입에서 1만 원이라는 수치가 나오자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1만 원이라구요?”

 

그녀의 표정은 전혀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요구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었기에 주유를 해주었다.

석규는 주유소를 나와 회사까지 가는 내내 그녀만을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중고차이지만 오너 드라이버가 된 석규를 축하해주며 축하주 한 잔 내라며 난리였지만 석규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매일 볼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묘책을 알아내는 것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와 가까워지려면 일단 그녀를 자주 보아야 했다.

자주 보면 친근해질 것이고 그때쯤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신청하겠다는 것이 석규의 생각이었다.

 

일단 그녀를 보고 만나려면 주유소로 가야 했다.

주유소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무작정 주유소에 가서 멀찌감치에서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친해지기는커녕 경계심만 키울 뿐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석규가 생각해 낸 것은 일단 매일 주유소에 가서 주유를 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주유하는 양이었는데 그 주유량이 어느 정도 충분한 양이 아니라 최소한 양만 주유하자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해 낸 주유량은 하루에 1만 원의 주유였다.

석규가 출퇴근 거리는 왕복 50km 정도였다.

그 정도 거리면 1일 5L면 충분했고 그 양 만큼만 주유하겠다는 것이 석규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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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래요

​

성민(윤찬준)

그래 그런 것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기쁨조차 없었기에

슬픔도 있을 수 없겠지요.


기다리고 기다렸던

당신과는 달리

아예 기다림조차도

없었을지 모르는 나이기에

그저

우연히 만났다는 것만으로

꿈이

비상할 수는 없겠지요.

하긴 그래요

짧디 짧은 시간속에서

무엇을 낚아올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장난이 아니길 바랄뿐이지요.

오늘도 떨며 도는 세상에서

버려지지 않길 바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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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물 켜기(4)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더니 바로 그 꼴이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운 석규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승용차는 마련했으니 이제는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석규는 그 여자 친구와 경춘가도를 드라이브하여 닭갈비를 먹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동해에 가서 바다를 본 후 커피 거리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음미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캠핑을 가서 차박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석규의 상상은 무한했으며 그 무한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승용차를 끌고 나온 석규는 주유소로 향했다.

승용차에는 아직 휘발유가 남아 있었으나 석규는 일부러 주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석규는 서서히 주유소를 향해 승용차를 몰았다.


석규의 차가 주유소 입구에 접어드는 순간 석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동안 석규가 오가며 보았던 것은 그 주유소에서 주유를 헤주던 사람들은 모두가 남자였다.


그런데 그날 주유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나이가 지극한 여자가 아니라 석규와 거의 동년배의 나이인 것으로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그때 석규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국제 유가 폭등을 미소로 서비스하겠습니다’


흰 천에 빨강 글씨가 인쇄되어 있는 현수막이 춤을 추듯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아마 주유소 측이 국제 유가 폭등으로 감소할 고객을 잡으려는 영업책 같았다.


‘한푼이라도 싸게 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얄팍한 술책을 쓰는군.’


주유를 하는 여직원들은 초미니스커트를 입지는 않았으나 무릎은 살짝 넘긴 스커트를 입고 있어 하체의 곡선미가 완연히 드러나 있었다.

주유소 사장의 영업전략이 주효했는지 주유소는 주유하려는 차량으로 밀렸다.

그 주유소가 성황인 것은 맞은 편에 있는 주유소보다 배는 많은 차량이 줄지어 대기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승용차가 주유기에 거의 가까이 가자 석규는 별안간 핸들을 틀어 옆 라인에 승용차를 댔다.

옆 라인 3호 주유기에서 주유하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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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지 않는 잠에 빠져들어

​

윤 찬 준(성민)

​

치유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깨어나지 않는

잠에 빠져들고 싶다.

육체의 활력이 멈춰버리고

영혼의 난도질이 멈춰버리고

그러는 가운데

시간마저 멈춰버렸으면.

더 보태면 무엇하겠는가

보탠 만큼 빼지는 것을

밀면 무엇하겠는가

당긴 만큼 끌려가는 것을.

보태고 빼고 밀고 당기는

혼자만의 몸부림이여

그러나 남에게 틀키지 않으려

가슴속에 꼬옥 품고

나는 미끄러져만 간다.

그 미끄러짐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당위정 같은 사랑

아니면 영원한 이별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후자가 기다리고 있다면

차라리 지금 이 순간

불투명한 사랑의 화염에

타 죽는 것이 낫으리.

아!

나는 오늘도 그대 향한

그리움의 금사(金絲) 한올 한올 풀어

애의(愛衣)를 짜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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