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 켜기(7)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고 그다음 날은 일요일이어서 그녀가 쉬는 날이다.

석규는 이제 그녀와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도 된다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여 그녀가 받아준다면 일요일에 그녀와 데이트하려는 것이 석규의 속셈이었다.

그녀에게 데이트를 승낙받으려면 그녀에게 환심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연료 참가제를 1개가 아니라 2개나 구입한 것이었다.


그날 퇴근 후 귀가한 석규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석규는 그녀와 같이 경춘가도를 달리는 상상을 했고, 호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했다.


석규가 그런 상상에 빠져있을 때 밖에서는 연신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 소음이 석규의 상상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석규는 그 상상의 여운은 안은 채 여느 때처럼 주유소로 갔다.


저만치 그녀가 보이자 석규의 심장은 벌렁대기 시작했다.

석규는 승용차를 3호 주유기에 바짝 댔다.

이제 곧 그녀가 다가와 주유를 할 것이었다.


석규는 어제 밤 수도 없이 연습했던 그녀에게 할 데이트 신청 문구를 되뇌였다.

그런데 그녀는 석규의 승용차로 다가오지 않고 사무실 쪽으로 갔다.

석규는 서비스로 생수를 주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 뒤로 사내 둘이 따라왔다.


두 사내는 석규 승용차로 오더니 차창 문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석규는 의아해 하며 차창 문을 내렸다.


차창 문이 내려가는 동안 두 사내 중 한 사내가 점퍼 안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석규에게 디밀었다.

그것은 경찰관 신분증이었다.


“G경찰서 B형사입니다.

이 아가씨 말로는 매일 여기서 1만 원어치를 주유했고 사용하다 남은 휘발유는 빼놓았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어제 두 곳에서 방화가 있었는데 이 아가씨가 댁을 용의자로 신고해서요.

경찰서에 가셔서 진술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데이트 신청은 개뿔, 석규는 단단히 헛물을 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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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몫까지 아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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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민(윤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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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빛 노을이 사그라진 하늘에

떠있는 초록별 하나

어둠이 스러지는 길목을 지키는

촉광 흐린 수은등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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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발을 내디뎠을 때

허공을 밟을지도 모르는 만남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물빛 숨결로 토해낸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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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실려 떠도는

잿빛 아련한 기다림

그러다 기어이 나를 성곽에

가두고야만 잔인한 이별

​

​

그래 사랑은 아픔이 있기에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나만 홀로 괴로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이의 몫까지 아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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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물 켜기(7)




석규에게는 오로지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날 석규는 하루 종일을 콧노래를 부르며 보냈다.

그런 그를 주위사람들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석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석규의 심장을 더욱 뛰게 하는 일이 생겼다.


석규는 매일 출근하듯이 주유소에서 주유만 한 것이 아니라 그외에 얻은 것도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 회사에 다녔는데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 그만두게 되었고 놀기도 뭐해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까지 주유소 아르바이트한다고 

했다.


또 그녀는 3호 주유기를 담당하고 있으며 근무는 오전에만 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에는 쉰다고 했다.

석규가 주유소에 출근한 듯한 지 보름 정도 됐을 때였다.


석규의 승용차로 다가오는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은 B브랜드의 연료 첨가제였다.

그녀는 B제품이 연비를 개선해주고, 엔진을 깨끗이 해준다며 제품선전에 노력했다.


석규는 B브랜드에 관심도 없었고 그 제품을 선전하는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연신 B브랜드 설명에 집중했고 석규는 그녀의 입술에 집중했다.

석규는 그녀가 말을 걸어온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물건 구입까지 권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친숙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그러니 그게 좋으니까 구입해 달라는 것이군요.

알았어요.

2개 주세요.”


“2개 나요?

1개만 구입하셔도 되는데.

무리 하시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석규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석규는 그런 그녀가 고맙기도 했다.


“무리하는 것 아니예요.

하나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요.”


석규는 연료 첨가제를 줄 친구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를 핑계로 삼았다.

석규가 연료 첨가제를 1개만 구입해도 됐으나 2개를 구입한데

는 다 속셈이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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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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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민(윤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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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보다

더 슬픈 바람에

가을 풀잎 눕고

별빛보다

더 아픈 이슬에

가을 꽃잎 지고

​

​

우연이듯

필연이듯

만남의 끝이

이별이라면

사랑은 가슴앓는

피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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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물 켜기(6)




다음날 석규는 주유소로 갔다.

그가 승용차를 정차시킨 곳은 주유소 건물 앞의 주유기가 있는 라인이었다.

그 라인에 3호 주유기가 있었고 그녀가 3호 주유기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다른 라인은 비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규는 3호 주유기가 있는 라인에 정차했다.


석규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석규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석규는 3호 주유기가 있는 라인에 승용차를 정차했다.

그녀가 오자 석규는 차창 문을 내렸다.

그녀에게서 어제 맡았던 비누 내음이 났다.


“1만 원이요.”


석규의 주문에 그녀는 어제와 같이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3일째 되는 날도 석규는 1만 원의 주유를 주문했고 그녀는 같은 표정을 지으며 주유했다.

4일째 되는 날 석규가 차창 문을 내리며 주문을 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오늘도 1만 원이지요?”


“네.”


그녀는 하얀 이를 살포시 드러내며 주유를 했다.

워낙 양이 적어 주유는 금방 끝났다.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은 석규의 심장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 하루에 1만 원만 주유하는 거예요?”


느닷없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대비하지 않았던 석규는 당황이 되었다.


“그 정도면 하루 소비하고도 남아요.”


“그러면 번거롭게 매일 오시지 말고 한 번에 많이 주유하시면 편하잖아요.”


석규는 ‘당신 보려고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돈이 없어서요.”


정말이지 얼토당토않는 대답이었다.


“아까 하루에 1만 원을 주유하면 하루에 사용하고도 남는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며치레 하루 정도는 주유를 안 하셔도 되겠네요?”


석규는 또 말이 막혔다.


“아니요.

그래도 매일 주유해야 합니다.”


“아니 왜요?

아까 하루에 1만 원을 주유해도 하루 사용하고도 남는다면서요.

그러면 며칠 모아지면 하루 사용할 양이 되잖아요.”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루 쓰고 남는 것은 별도로 빼놓아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아니 대답할 말이 궁해져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왔으리라.


“별도로 빼놓으신다고요.

연료통 속에 있는 휘발유를 어떻게 빼요.

그리고 어디에 쓰시려고요?”


“자바라로 빼요.

그리고 다 쓸데가 있어서 빼놓는 거예요.”


석규는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는 대답을 했다.

연료통 속의 휘발유는 왜 빼며, 그것을 또 어디에 사용한단 말인가.

그녀는 석규가 한 말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갸우뚱했고 그런 그녀를 백미러로 보며 석규는 주유소를 떠났다.


석규에게는 그녀의 질문과 자신이 한 대답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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