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성 민(윤 찬 준)

 


겨울의 끄트머리이다.

은빛 호수에 실타래 같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잎진 빈 숲을 바람이 흔드니

사그라드는 별빛도 애처롭다.


살아가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번지는 유리창가에 앉아

혹은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 음악에 묻혀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못하고

내리막길 위에서

기어가 풀린 자동차 마냥

마구 내달려만 간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유곽속에 갇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익명의 시간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오늘같이

슬픔보다 외로움이 더 깊은 날엔

잠 안오는 별 하나 떠 있어


나

들꽃아씨 맑은 목소리 이정표 삼아

길 떠나네.

절망의 밑바닥에는 희망이 있고

그렇기에 삶은 살아갈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쩔 거나 어쩔거나(2)




상규의 요즘 퇴근 후 시간 보내기는 서울 인근의 소규모 땅을 알아보는 것과 각종 채마의 농사기법을 알아보는 것으로 일관되었다.


상추는 서늘한 기후에 잘 자라며 물 빠짐이 좋은 땅에서 물을 잘 주어야 풍성하게 수확을 할 수 있으며, 오이는 모종을 심어 직사광선을 받게 하는 것이 좋으며 열매를 잘 맺게 하려면 순치기를 잘해주어야 하며, 고추는 햇볕이 충분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잘 자라고 정기적으로 물을 주되 과습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정보 등은 그통안 상규가 틈틈이 알아낸 정보였다.


상규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텃밭에서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어 그 수확물로 지인들과 옛 이야기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상상에 젖어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퇴직자가 노후에 꿀 수 있는 소박한 꿈이었다.


상규는 어느 날 그 소박한 꿈을 아내에게 넌지시 제시했다.

그동안 상규 아내는 상규의 말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그랬기에 상규는 별다른 고민이 없이 아내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때만 해도 상규는 자신의 제의가 아내의 별다른 저항이 없이 통과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상규의 착각이었다.


“퇴직하게 되면 퇴직금으로 서울 인근에 작은 땅을 매입하여 텃밭 일구며 노후를 보내려고 해.”


상규는 저녁 식사 후 후식으로 아내가 깎아 낸 참외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아내가 알아서 하세요 하고 대답할 것으로 여유가 있었다.


“당신이 먼저 말 잘 꺼냈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 있다고.

무슨 말인데 해봐.”


“나 성형수술 할까 해요.

나 성형수술 시켜줘요.”


상규로서는 전혀 예상해 보지도 않았던 뜻밖의 말이었다.


“그리고 저 농촌 생활 안 해요.

아니 못 해요.

콩나물도 키워보지 않은 제가 채소를 키운다는 것이 말이

돼요.

농사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하게 놔둬요."


상규 아내는 단호했다.


“누군 태어날 때부터 농사짓는 사람이 있나.

배우면서 하는 것이지.”


“그래도 난 못 해요.

하려면 당신이나 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공 허



성  민(윤찬준)



모두가 떠나간 간이역

매표구의 불도 꺼졌고

개찰구도 닫혔다.


흐려지는 형광등 불빛 만큼이나

식어가는 난로를 껴안고 있던

한 사내가 말을 건다.


-어디로 가우.

-글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네요

-하긴 살아가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사내는 난로에 더욱 바짝 다가서고

나는 달빛이 하얗게 내리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쩔 거나 어쩔거나(1)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싹이 트고 꽃을 피우던 봄이 가면 숲은 더욱 짙어지고 매미 울음소리 요란한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찬바람에 잎이 우수수 지는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흰 눈이 장독대에 소복히 쌓이는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개나리꽃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이는 봄이 다시 찾아 온다.


계절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만물만 어디 그런가.

인간이 지니는 부귀영화나 권세도 마찬가지이다.


한때는 풍족하게 누렸던 부귀영화도 세월이 가면 덧없어지고, 한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리던 권세도 화무십일홍이다.


인간의 외형도 다르지 않다.

젊었을 때는 젊다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움이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아름다움은 서서히 퇴색이 되어간다.

머리가 희어지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허리가 굽어진다.


어디 외모만 그런가.

힘도 약해지고 그 팔팔하던 용기도 수그러든다.

외형에 대한 관심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강하다고 하겠다.

여성은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존감을 잃기도 하고 심하면 대외 기피증이나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규는 얼마 전에 뜻하지 않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상규는 올해 50대 후반이 되었고 아내는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다.


결혼한 지 25여 년.

그동안 상규도 자리를 잡느라 앞만 보고 살아왔고 아내도 풍족하지 않은 가운데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옆을 볼 겨를이 없었다.

부부의 그런 절약과 소박 덕분에 상규가 정년퇴직을 1년 앞둔 현재 가정도 안정되었고 아이들도 모두 성장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상규는 정년퇴직하게 되면 서울 인근에 소규모로 땅을 매입하여 텃밭을 가꾸며 노후를 보낼 생각이었다.


상추나 오이를 심고 그것들을 무농약으로 길러 지인들을 불러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는 것을 상상하노라면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별 감추기

​

​

​


성 민(윤찬준)

​

​

​

구름이 영원히

하늘에 머물겠는가

바람이 영원히

땅에 잠들겠는가


계절을 같이 지켰던

겨울이 떠나가면

눈은 이별의 아픔은

슬픔으로 녹아내리듯

순수한 사랑일수록

배신의 상처는 커

하늘 향해 번져나는 애닯음만큼

증오도 땅속 깊이 뿌리내리네

만남은 키워야할

내 안의 기쁨이지만

이별은 내 밖에서

감춰야 할 슬픔이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