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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 고종석의 언어학 강의
고종석 지음 / 로고폴리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어떤 사람의 특이사항 가령,
외모의 준수함이나 성격을 우리는 흔히 특정 단어로 구분지어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착함과 나쁨의 기준은 뭐고 잘생김과 못생김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선을 그어 말하는 언어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책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는 언어학자
고종석님이 이러한 세계와 언어의 관계, 서로 다른 언어의 섞임과 스밈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요. 구어체로
구성되어 가독성이 좋고 중간 중간 보이시는 위트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 정리로 마치 현장에서 강의를 직접 듣고 있는 것 같은 실제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가 있어 언어가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허나 지금의 현실은 언어와 세계가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가 되어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죠.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해 왔을까요. 책의 주장을 빌리자면 결코 아닙니다. 미세한 언어의 변화속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언어를 습득하고 발화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시간적, 사회적 방언이란 개념이 나오는데요. 화자의 말투를 보고 그
사람의 지식 및 출생등을 짐작할 수 있다는 건데 이것은 언어의 위계와도 이어지는 대목일거에요. 일례로 세계 공용어가 영어가 된 지금 타국에 가서
한국어만을 쓰고 생활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학창시절 일본어를 배우면서 유난히
우리나라 말과 어순과 음이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이 번역의 선두주자로 서양의 언어를 일찍이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뒤 한국어에 지대한 영향을 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양의 불어, 독일어, 영어 역시 라틴어, 게르만어등에 뿌리로 두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가지의 다름 아닌 예라는 걸 알려주고 있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어는 고아언어로 그 뿌리가 묘연하다는 것에
있겠지만요. 여기서 언어가 감염되는 이유는 주로 정복을 위한 전쟁이나 문물의 개방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설명함에 있어서 저자의 폭넓은 역사,
철학, 문학적인 박식함이 돋보여 정말 감탄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번역에
관한 이야기였는데요. 평소에 저도 생각해 봤던 이론이라 흥미로웠어요. 어떤 작품의 번역본이 있다면 그것은 번역자의 것이다, 라는
지극히 개인적 주장임을 강조하며 밝힌 이론인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어요. 해당작품을 창작한 원본의 소유자에겐 과격한 반론으로 여겨지겠으나
언어학적으론 의미있는 지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국문학과 한국어문학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우리나라 문학 역사의 깊이와 그 혈통을
중시하는 저자로써는 가능한 가치있는 견해같았구요.
요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고양이들의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주는 사람이나 기계가 있다면 참 재밌으면서도
끔찍하겠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 말이죠. 동물들이나 글자를 따로 쓰지 않는 원시 부족, 시청각 행위를 할 수 없는 장애인조차도 사고는 할
수 있습니다. 또, 세계는 언어를 만들지만 언어 역시 세계를 점차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죠. 이러한 언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얽히고 감염시키며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언어엔 '순수'란 개념이 가능하지도 않고 중요성을 띠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불순'이란 말 자체는 단어부터가
거부감이 들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고 이산, 노마드가 성행하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순수에의 집착은 속죄양이나 호모
사케르라는 희생양을 낳으며 점차 우리 사회의 배척 문화를 키울 뿐입니다. 결론에 다다르며 저자는, 윤리적 관점에서 언어와 인간를 비교하고
있는데요. 우리 모두는 감염된 문화의 부속물이며 스스로를 불순한 개체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소수문화나 민족, 언어등의 옳지 못한 포식 관계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기존의 이론적 언어학에서 탈피해 가치 포용의 의미로써 다양한 세계관과 민족문화를 존중하고 불순함의 인정을 통해
존재의 평등함을 환기시키는 면에 있어 생각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