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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눈을 부릅뜬 채 봐야할 때가 있다.
내 나이 열살 무렵, 나는 무엇을 겪었고 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조각 짜맞추듯 몸이 이끌리는대로 발로 뛰어가며 소설을 써내려간 작가가 여기 있다.
1980년 5월 18일. 그 날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건 사건이 터지고도 몇 년후, 내가 태어나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사춘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 믿기 어렵고도 잔혹한 열흘간의 일지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미 죽은 이가 되어버린 슬픈 영혼들의 입장에서, 죄책감에 젖어서 한편으론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으나 결코 소설일 수 없는 가엾고도 처참한 이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한참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임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곤 했다.
담담하고도 차가운 어조로, 작가는 한 자 한 자 꾹꾹 써내려간 듯 단어와 문장 사이 여백에도 깊은 고민과 조심스러움, 슬픔이 엿보인다.
열다섯살 동호와 그의 친구 정대는 그 날 군중의 시위현장에서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려 서로를 애타게 찾았다. 썩은 살덩어리와 짓이겨진 여러 구의 시체 속에서 이미 영혼이 되어 허공을 떠도는 한 소년은 이미 시신이 된 자신의 몸뚱아리를 마주하며 절망하고 다른 한 소년은 그 소년을 끝까지 지키고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에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 걸 이런 아비규환을 두고 일컫는 말일까. 총을 가지고도 미처 쏘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민군과 학생들을 향해 도시인구의 두배나 되는 총알을 장전한 채 수시로 저격을 멈추지 않는 살인병기같은 그들.
시인이기도 작가의 문체가 아름답고 고결하면서 한편으론 그 아름다움이 잔인하고 생생했던 그 날의 현장을 더욱 날카롭고 무섭게 파고든다. 예리하고 디테일한 그녀의 필력이 마치 스크린위에서 상영되듯이 내 잔인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만약 정대 남매에게 세를 주지 않았다면 우리 동호가 그렇게 되진 않았을까. 상무관에서 집에 가기 싫다던 그 아이를 억지로라도 데려와야 했던 것일까. 후회와 한탄섞인 한숨속에 이어지는 동호어머니의 독백이 왜이리 가슴이 사무치도록 다가오는지.
내가 여태껏 접했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의미의 사건, 평면적인 도면같은 것에 불과한 서술형식이었다면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시간을 되돌려 그 때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하나 하나를 불러 모아 숨을 다시 불어넣고 지금 여기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그날을 재현하여 전해 주는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는 기분은 독자도 썩 좋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작가 또한 여러날을 앓듯이 이야기를 완성해 나갔을 것 같다.
언젠가 읽었던 '도가니'라는 소설도 그랬는데 언제나 이러한 시대의 그림자와 음지의 역사, 사건을 다룬 책은 한 동안 여운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잊지 말아야 할 의무인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국민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