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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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 거침없고 속 시원한 그래서 위험하게까지 느껴진 그런 책을 만났다.

여지껏 세상살이가 고된 사람들에게 한동안 힐링과 위안의 책들, 그리고 말들이 넘쳐흘렀다면 이젠 이런 세상과 사회를 똑바로 보고 직시하는 현명함과 조금은 냉정한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저자인 노명우 교수는 우리 삶의 여러 단면들을 포착하여 금세 끓고 식는 냄비뚜껑 기질과도 같은 인간의 속성을 지적하거나 때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삶의 리얼리티를 파헤치는 한편,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그 세태에상처입은 개인, 그리고 사회를 위한 치유법을 제시한다.


대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럭셔리와 명품을 추구하며 지적인한 삶을 살기 위해 박사학위나 높은 지위같은 명예욕 또한 만만치 않다그러나 그만큼 트렌디한 세태의 흐름을 읽는 센스가 필요하다. 다녀온 해외여행지와 유행하는 브랜드 제품이 수다의 주화제로 떠오르고 그 곳에서 남긴 추억은 사진으로 고이 간직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역사의 오랜 기억이나 참사가 주는 침울함따위는 자리잡을 새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전불감증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타국의 전쟁과 남의 죽음을 tv 생중계로 봐도 정작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 게 딴 세상 이야기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 라는 생각은 배운것들이 더 해쳐먹는 고위층 부정비리사건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범죄 등 '배운 괴물'들이 판치는 사회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너무나 합리적이게 보이는, 모든 것들의 일사천리를 부르짖음은 종국에는 '맥도날드화'로 귀결되는 불합리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기이함은 더이상 이상한 것이 아닌게 되버렸다. 모든 것이 표준화된 거리의 간판과 의례 절차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줄지어진 제품들처럼 우리 인간마저도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이런 획일적인 도시에서 오타쿠라 불리는 '혼자 놀기'는 은밀하지만 알고 보면 솔직한 취미 즐기기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평범한 삶 속에서 자유스럽게 이루어지는 성(性)이야기와 고공행진을 멈출줄 모르는 자살률의 원인에 대해서도 사회학적으로 접근한다. 예전에 비해 개방적인 성문화가 자리잡은 지금 그 심적불안은 커지게 된 아이러니와 경제는 성장하는데 그에 대한 기대에 못미치는 자신을 자살로 이끄는 인구는 점차 많아지는, 경제성장과 자살률의 반비례적인 아노미적 상황. 그 속에서 기구한 팔자타령에 진지하게 귀기울여 들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학자'의 무감정한 언어와는 사뭇 다른 듯 하다.

월급쟁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넥타이부대를 위해 가끔은 자신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함당함을 시사하고 항상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처받은 영혼 하나하나에게 '인정투쟁'이라는 사회로의 자기 존엄 되찾기를 멈추지 말라 함은 사회와 집단, 그리고 국가에 예속된 우리 모두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해주는 흔치않은 주장인 것이다. 


책에는 3챕터별로 가지를 뻗은 소(小)주제들이 달려 있는데 너무 학문적이지 않은 말투로 사회학 고전 몇권과 함께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사실 사회학은 어렵다고 생각들 하지만 우리가 선술집에서 안주거리로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잡담들을 이론이라는 거창한 틀로 바로잡아 어렵게 꼬아 놓은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한 강의에서 마주친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았던 노인을 떠올리며 이론으로서의 사회학과 '세상으로서의 사회'인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낀 경험을 전하는데 이런 학문과 현실사회가 조우할 때 공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학은 의미를 얻는다고 말한다. 현실을 회피하고 위로와 팔자타령으로 점철된 자신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용기있게 '콜드 팩트'를 부르짖는 삶의 리얼리스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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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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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전 개그프로에서 "누려~"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많은 뜻이 있겠지만 여태껏 갖은 고생 많이 했으니 현재의 편리함과 혜택을 맘껏 누리라는 졸부의 한 맺힌 얘기를 담은 코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몸이 고생을 기억하고 반응한다" 며 맞받아치는 상대 개그맨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불과 5-60년전만 해도 전쟁 후 폐허가 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고 제일인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아직도 근검절약과 성실함이 몸에 배여 자녀와 손주들의 소비문화에 적응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는 요즘 시내에 잘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쁘고 저렴한 게 보이면 갖고 싶고 친구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명품 가방이며 화장품 자랑질에 진저리가 처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다지 성실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의식주와 의약품외엔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가스비랑 전기, 수도세도 아끼려고 별짓을 다한다. 극성이라고 하지만 이런 게 당연했던 시대가 존재했다. tv와 세탁기가 귀하고 전화기도 드문 시절, 사람들은 눈 뜨면 일터로 향하기 바빴다. 돈 쓸새도 없던 때였다.

이 책의 저자 히라카와씨의 모국 일본 역시 한국같은 전쟁을 겪었고 종전이후 70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 돈의 흐름에 따라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자본주의가 대세로 군림하면서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원래 공동체와 혈연, 지연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전통적이었으나 갈수록 자본주의의 근원지인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동경하고 닮아가는 현상 역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생산자에서 소비자가 중심인 사회로 바뀌면서 점차 사회 구성원들의 개성은 없어지고 삶의 의미와 가치관은 돈에 따라 모든 걸 재고 매기는 시대가 되었다. 급기야는 사람의 가치까지 수입에 따라 줄을 세우고 예전처럼 아껴쓰고 다시쓰는 절약정신은 캐캐묵은 사상이 되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렇게 사람들 구석구석 소비문화가 판치게 된 이유로 저자는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주5일제 근무도입으로 여가시간 증가, 미국기업의 일본시장 침투로 가격이 싼 제품과 대형마트들이 대거 들어선 점, 물밀듯한 tv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업의 행태등등.

그렇지만 저자 히라카와씨도 한 때는 이런 기업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이 좋고 사람이 좋아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10년만에 투자금을 모두 탕진한 채 빚만 떠안은 채 지금은 소상업의 일종으로 차(tea)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당시의 호황과 지금의 소비문화 그리고 심한 거품경제로 한 때 휘청거렸던 일본경제를 되짚어 본 결과 이 모든 물질만능주의와 사람들의 소유욕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각 개인들의 소비 마인드 전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오늘도 평소에 자주 가던 인터넷 상점 몇 군데를 둘러보며 최저가를 비교해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각종 쿠폰을 적용해 소위 온갖 '할인신공'을 무지하게 펼친 끝에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신용카드로 결제 한 후 만족감에 젖어있었다. 각종 차, 화장지, 반찬재료와 간식거리등등. 사실 동네에서 조금만 가면 멀지 않은 곳에 슈퍼가 있고 시장도 있어서 그 곳에서 구매해도 되지만 웬만한 것들은 원클릭으로 택배주문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집안까지 갖다주는 편리함과 이왕에 살거면 더 싼 곳에서 사는 게 당장은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라카와씨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소상인을 배려하지 않는 구매행태가 결국엔 동네상권을 죽이고 높은 소비자가격을 매길 수 밖에 없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의식주를 제외한 사치품이나 기호품, 레저, 여가, 취미용품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건들이다. 우리집은 진작에 tv를 없앴다. 가족간에 대화도 없어지고 쓸데없는 광고와 습관적으로 tv를 켜놓는 버릇 때문에 과소비와 게으름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아주 효과적이다. 전기료와 수신료 절약은 물론 가족간에 대화도 늘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경제신조어로 '어플루엔자'란 말이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기준으로 그 정의는 풍요로워질수록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무력감 등의 질병을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흡사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의 비만과 성인병과도 비슷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치료법 역시 과잉구매(섭취)를 제한하고 필요한 만큼만 혹은 덜 사고 안 쓰면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끝없는 경제성장을 원하지만 현재로썬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더 많은 소비, 환경파괴가 필요한 악순환일 뿐이다. 돈이란 건 일본이라는 지리적으로 비춰봤을 때 재해등으로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탈소비'의 삶을 하나씩 실천하며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예전으로 뒷걸음질치는 것, 잃어버렸던 우리 개개인의 얼굴을 찾기 위해선 그렇게 조금씩 소비하는 생활을 떠나 여유롭고 정말 가치있는 게 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나부터가 신중하고 현명한 소비습관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다. 오늘도 어떤 물건을 싫증나서 버리고 남들이 사니까 따라사고. 월급통장에서 모조리 로그아웃해버린 돈들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 더 멋진 물건들을 선망하고 남들과 뒤쳐지는 않는 생활을 견디지 못한 나의 욕구에 의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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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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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단 한번 정독을 하고 서평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른 소설과는 달리 극 중 화자가 딱 정해져서 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진술하는게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 만수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드러내고 각각의 입장에서 가족들과 주변상황을 비판하고 좌절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기법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헷갈려서 단락이 바뀌어 다음 인물로 넘어가는 첫 한두줄은 누구의 말이고 시선인지 단박에 알아채기 힘들었다.


이야기는 만수의 조부모와 어머니, 아버지, 그 형제들이 살아지나온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만수의 조부는 다방면으로 유식한 인물이지만 독립운동혐의로 온가족을 개운리 산골짝으로 숨어들어가게 한 원흉이라며 아들과 손자에게 틈틈이 원망을 듣는다.

장남 백수는 착하고 영특해 대학까지 일사천리 들어갔으나 자원입대한 군에서 병사하고 막내 석수는 어릴적 부터 윗형 만수를 무시하고 형 취급도 안하는 이기적인 아이였다. 장녀 금희는 맘씨가 고와 항상 집안에서 천덕꾸러기인 만수를 감싸주고 남몰래 어려운 사정 불사하고 죽기 전까지 가족을 위하던 큰 오빠에게도 지극했다. 그런데 뭔 놈의 평지풍파가 이 집안을 그렇게도 들쑤시는지 하루도 바람 잘날이 없다. 간호조무산지 뭔지 되겠다던 둘째 딸 명희는 연탄가스중독으로 바보가 되고 석수는 어느 날 집을 나가 소식도 없다가 군입대를 안하려 별 수를 다 쓴 끝에 오영주라는 여자와 엮여 아들 태석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춘다. 금희는 식구들의 못마땅함을 뒤로 하고 일찍이 깜둥이 트럭기사와 결혼을, 어린 시절 앞길 하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식구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만수는 공전 졸업 후 어느 새 세차장과 자동차부품공장, 세탁소, 가사일, 목욕탕청소, 음식과 신문배달등 안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식구들과 부모를 먹여 살리기 바쁜 가장이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이런 만수 같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사람 좋고 믿음직하고 서글서글하니 누가 봐도 성실하고 티끌하나 없이 맑은 인물인데 다른 시선으로 보면 참 바보같고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다. 자신의 공장이 다른 채권단이나 투자자들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도 공장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장기농성을 하고 투쟁하느라 '최후의 7인'의 치닥거리를 자처하는 모습은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옥희를 비롯한 가까운 지인과 식구들의 입장에선 미칠 노릇일 것이다. 옥희 눈에 가시 같았던 진주도 만수와 결혼 후 버릇없는 태석과 앞가림 못하는 시누이, 끝도 없는 집안일에 신장병까지 겹쳐 하루가 다르게 짜증이 나고 사람 좋은 남편 만수에게조차 정이 다떨어질 지경이다.


소설 속에선 열심히 살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란 없는 것 같다. 착한 만수 주위에도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서로의 속마음을 철저히 감춘 채 방어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식구들과 사람들의 희생의 발판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종국엔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슬프고 씁쓸한 일이지만 이건 결코 소설 속에 국한된 허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날 더 괴롭게 한다. 좋은 취지로 사람들을 돕고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자가 되고.. 그것들의 댓가는 과연 무엇으로 돌아올까.


나는 1980년대생으로써 이 책에 기술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정권시대등을 관통하는 지난 세기의 역사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할머니와 아빠의 이야기로 어렴풋이 그 시절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얼마나 치열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산 이들이 많았는지 몰랐다. 전후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뒤 그들의 갈 곳은 없어진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남았다. 투명인간. 참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고 모두에게 버려진 듯한 운명에 처한 이들을 일컫는 말 치곤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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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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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를 알게 된건 즐겨듣던 팟빵 이동진의 '빨간책방'때문이었다. 말을 조리있게 잘해서 뭘하시는 분인가 했더니 에세이와 소설을 주로 쓰시는 작가분이셨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언어의 연금술사같아서 소설을 안쓰셨으면 뭐했을까 싶다. 감상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잡설 그만하고;; 이번에 나온 책 <메이드 인 공장>은 제목만 보면 얼추 내용이 짐작가는 듯하다.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고 가지고 다니는 문화, 음식, 패션등등의 생활전반에서 우리가 쓰고 이용하는 상품에 대해 저자가 궁금증을 가지고 이 공장 저 공장을 탐방하며 1년간의 그 기록을 엮어낸 공장탐방기다. 나도 공장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가끔 떠올려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깨끗하지 못하고 냄새나고(어째서?)아무튼 위생적이지 못한 어떤 것을 막연히 생각한 것이었는데 책에 나온 공장의 얘기를 듣고 그건 나의 완전한 편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은 은밀한 콘돔과 브래지어 생산 공장에서의 민망한 취재기도 웃기고 라면과 간장공장 부분을 읽을 때는 짭짤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그다지 수요가 많을 것 같지 않다고 여겼던 지구본의 제작과정은 정말 세계를 창조하는 기분으로 만들지 않을까 싶은 장인 정신이 돋보이고 나름 가방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가죽을 위주로 제조하는 가방공장 이야기도 재밌었다. (한마리의 소가죽에서 나오는 가방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에 그 많은 가방을 생산할려면 얼마나 많은 소가 도축될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공장 각각의 특색이 있었지만 만드는 제조공정과 그에 따른 일사분란한 직원들의 손놀림과 대부분 몇십년을 한 직업에 종사한 분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았다. 사람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세월과 시간이 요구되는 간장공장과 도자기 공장, 기계가 너무나 많은 일을 도맡아 하기에 사람이 할일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도 든 곳도 있는 반면 엘피나 가방 공장은 기계로 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한정되 있어 사람이 일일이 수공으로 작업해야 하는... 아직은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공장도 있음이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그런 공장은 없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대장간(이라는 말조차 촌스럽게 느낀 나지만)이 아직도 건재하게 돌아가고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에 평소 대장간 일을 아직도 배우려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나의 오산인 걸 알았다. 그리고 평소 피아노 가진 친구들을 보면 되게 부럽고 옆집에서 누가 이사를 올 때 피아노가 있으면 아.. 잘사는 집이구나..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피아노에 대한 제조 공정 역시 단순히 제품이 아닌 소리를 만드는 직업이라고 표현한 저자의 말이 정말 공감이 갈 정도로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인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은 책들이 처음 물질로써 태어나는 곳 제지 공장은 꼭 한번 나도 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소설가 겸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처음에 넣으셨다.


요즘엔 tv를 잘 안봐서 모르겠는데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거기 보면 온갖 종류의 직업군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직업엔 귀천도 없고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고 빠르고 디지털적인 시대가 와도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한 부분은 어딘가 있을거라는, 없어지면 안된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앞으로 어떤 물건이나 상품을 보면 그 자체만 보지 말고 그 상품에 거쳐간 사람들의 노력들과 시간을 생각하며 귀중하고 고맙게 쓰고 입고 먹고 마셔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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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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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가망이 없는 한 중년의 여인이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을 담은 외국 동영상을 접한 적이 있다. 본인과 가족의 엄격한 동의를 거쳐 촬영과 함께 진행되는 이 죽음의 의식은 현재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되는 어느 나라 출처의 것으로, 매년 이 나라를 찾아 편안한 임종을 맞기 원하는 이방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우린 일상에서 종종 잊고 있다가 사고나 질병등으로 병원 문턱을 넘어서면 한시도 끊이지 않는 죽음의 행렬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허망함과 인생무상의 심리를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노령의 부친이 병석에 들 당시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곁에서 오랜 시간 간병을 하며 느꼈던 현실적인 한계, 의료서비스 현장에서의 부조리함, 늙고 병든 육체의 추하고 무기력함에 대하여 간접체험자로서 사실적이고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흔을 목전에 둔 주인공의 아버지는 신체 곳곳이 수명을 다해 잘 듣지도 보지도 거동하기도 힘들다. 한때 그 증세가 심했던 섬망과 요도폐색은 숨가빴던 1254일의 기록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환자와 간병인의 입장을 모두 겪어본 나로써는 이 글을 읽을 때 양자의 심리에 번갈아 공감해가며 당시의 내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긴 병에 효자없다'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효성 지극한 자녀라도 오랜 세월 지속되는 부모의 투병생활에 천사가 아닌 이상 때때로 짜증도 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일 게다. 또 어쩔땐 무심한 듯 연락도 없는 지인들한테서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거나 반대로 가벼운 친절에도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건 생사의 기로에 선 악조건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을 느끼게 되는 인간의 간사하고도 나약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개개인의 고독한 여정이다. 아무리 대단한 철학자나 대통령일지라도 죽음 앞에선 초연해지기 어렵다. 사후의 세계 존재여부를 떠나 그것을 그 누구에게서도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망자는 말이 없다. 


 고통없이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반면,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구조는 아직 빈틈이 많다. 환자를 기계적으로 다루는 의료인들과 맘 편히 죽지도 못하는 말기 질병의 노인들을 보면 새삼 존엄사라는 것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작가는 아버지가 병이 깊어짐에 따라 남들처럼 요양병원행을 고려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좀 고되더라도 정든 집에서 마지막을 함께 해드리는 쪽을 선택한다. 낯설고 차가운 병실침대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인생을 마감하는 게 그나마 덜 힘겹게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혼자는 힘에 부쳐 그 동안 거쳐간 간병인만도 예닐곱명. 초고령의 중증 노인 환자를 대하는 그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충격과 스트레스는 배출구없는 응어리로 똘똘 뭉쳐 가슴 속 깊이 남을 것이라 짐작한다. 허나 결코 많지 않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뛰어든 간병인 각자의 사연 또한 오죽할까. 

 생사의 사투를 벌이는 도심지의 병원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세상인 듯 태연한 시간이 흘러간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병원비와, 병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야 하는 귀찮음 따위는 어쩌면 이런 소외감과 고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아버지를 긴 시간 간호하며 중년의 나이인 작가는 다시금 죽음과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인들을 직시하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날'에 대비해 자기 주변과의 부분적인 작별을 서재정리로써 시작한다. 


 커다란 천체와 수많은 별들이 나고 사라지는 우주의 섭리 속에, 지구라는 행성안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인간이 죽고 사는 일은 지극히 사소하고 티끌같은 일이라고 혹자는 얘기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유하고 기억하는 존재다. 우주 만물의 근원과 허무주의 사상이 공허한 마음을 들쑤셔도 본인이 생을 살아온 의미와 추억을 되새기고 가급적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을 것이다. 유쾌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몸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엔 생각이 많아진다. 저 건물 안에서 누군가는 오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희망 없는 나날에 지쳐 그저 살아 숨쉬고만 있겠지. 나와 내 부모, 동생과의 작별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혹여나 그 모습이 추하고 보기 역겹진 않을런지.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한번의 입원생활과 또 한번의 간병 생활. 다시 나를 살게 했고 그 감사함을 돌려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 때 돌아가신 작가의 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일깨움과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돌아오는 내년 봄에는 묻히신 그 곳에 새생명 기운 가득 깃든 햇살이 들겠지. 그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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