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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개그프로에서 "누려~"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많은 뜻이 있겠지만 여태껏 갖은 고생 많이 했으니 현재의 편리함과 혜택을 맘껏 누리라는 졸부의 한 맺힌 얘기를 담은 코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몸이 고생을 기억하고 반응한다" 며 맞받아치는 상대 개그맨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불과 5-60년전만 해도 전쟁 후 폐허가 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고 제일인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아직도 근검절약과 성실함이 몸에 배여 자녀와 손주들의 소비문화에 적응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는 요즘 시내에 잘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쁘고 저렴한 게 보이면 갖고 싶고 친구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명품 가방이며 화장품 자랑질에 진저리가 처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다지 성실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의식주와 의약품외엔 돈을 잘 쓰지 않는다. 가스비랑 전기, 수도세도 아끼려고 별짓을 다한다. 극성이라고 하지만 이런 게 당연했던 시대가 존재했다. tv와 세탁기가 귀하고 전화기도 드문 시절, 사람들은 눈 뜨면 일터로 향하기 바빴다. 돈 쓸새도 없던 때였다.
이 책의 저자 히라카와씨의 모국 일본 역시 한국같은 전쟁을 겪었고 종전이후 70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 돈의 흐름에 따라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자본주의가 대세로 군림하면서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원래 공동체와 혈연, 지연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전통적이었으나 갈수록 자본주의의 근원지인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동경하고 닮아가는 현상 역시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생산자에서 소비자가 중심인 사회로 바뀌면서 점차 사회 구성원들의 개성은 없어지고 삶의 의미와 가치관은 돈에 따라 모든 걸 재고 매기는 시대가 되었다. 급기야는 사람의 가치까지 수입에 따라 줄을 세우고 예전처럼 아껴쓰고 다시쓰는 절약정신은 캐캐묵은 사상이 되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렇게 사람들 구석구석 소비문화가 판치게 된 이유로 저자는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주5일제 근무도입으로 여가시간 증가, 미국기업의 일본시장 침투로 가격이 싼 제품과 대형마트들이 대거 들어선 점, 물밀듯한 tv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업의 행태등등.
그렇지만 저자 히라카와씨도 한 때는 이런 기업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이 좋고 사람이 좋아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10년만에 투자금을 모두 탕진한 채 빚만 떠안은 채 지금은 소상업의 일종으로 차(tea)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당시의 호황과 지금의 소비문화 그리고 심한 거품경제로 한 때 휘청거렸던 일본경제를 되짚어 본 결과 이 모든 물질만능주의와 사람들의 소유욕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각 개인들의 소비 마인드 전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오늘도 평소에 자주 가던 인터넷 상점 몇 군데를 둘러보며 최저가를 비교해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각종 쿠폰을 적용해 소위 온갖 '할인신공'을 무지하게 펼친 끝에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신용카드로 결제 한 후 만족감에 젖어있었다. 각종 차, 화장지, 반찬재료와 간식거리등등. 사실 동네에서 조금만 가면 멀지 않은 곳에 슈퍼가 있고 시장도 있어서 그 곳에서 구매해도 되지만 웬만한 것들은 원클릭으로 택배주문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저렴하기도 하지만 집안까지 갖다주는 편리함과 이왕에 살거면 더 싼 곳에서 사는 게 당장은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라카와씨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소상인을 배려하지 않는 구매행태가 결국엔 동네상권을 죽이고 높은 소비자가격을 매길 수 밖에 없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의식주를 제외한 사치품이나 기호품, 레저, 여가, 취미용품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건들이다. 우리집은 진작에 tv를 없앴다. 가족간에 대화도 없어지고 쓸데없는 광고와 습관적으로 tv를 켜놓는 버릇 때문에 과소비와 게으름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아주 효과적이다. 전기료와 수신료 절약은 물론 가족간에 대화도 늘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경제신조어로 '어플루엔자'란 말이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기준으로 그 정의는 풍요로워질수록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무력감 등의 질병을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흡사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의 비만과 성인병과도 비슷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치료법 역시 과잉구매(섭취)를 제한하고 필요한 만큼만 혹은 덜 사고 안 쓰면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끝없는 경제성장을 원하지만 현재로썬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더 많은 소비, 환경파괴가 필요한 악순환일 뿐이다. 돈이란 건 일본이라는 지리적으로 비춰봤을 때 재해등으로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탈소비'의 삶을 하나씩 실천하며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예전으로 뒷걸음질치는 것, 잃어버렸던 우리 개개인의 얼굴을 찾기 위해선 그렇게 조금씩 소비하는 생활을 떠나 여유롭고 정말 가치있는 게 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나부터가 신중하고 현명한 소비습관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다. 오늘도 어떤 물건을 싫증나서 버리고 남들이 사니까 따라사고. 월급통장에서 모조리 로그아웃해버린 돈들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 더 멋진 물건들을 선망하고 남들과 뒤쳐지는 않는 생활을 견디지 못한 나의 욕구에 의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