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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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가망이 없는 한 중년의 여인이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안락사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을 담은 외국 동영상을 접한 적이 있다. 본인과 가족의 엄격한 동의를 거쳐 촬영과 함께 진행되는 이 죽음의 의식은 현재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되는 어느 나라 출처의 것으로, 매년 이 나라를 찾아 편안한 임종을 맞기 원하는 이방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진리를 우린 일상에서 종종 잊고 있다가 사고나 질병등으로 병원 문턱을 넘어서면 한시도 끊이지 않는 죽음의 행렬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허망함과 인생무상의 심리를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노령의 부친이 병석에 들 당시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곁에서 오랜 시간 간병을 하며 느꼈던 현실적인 한계, 의료서비스 현장에서의 부조리함, 늙고 병든 육체의 추하고 무기력함에 대하여 간접체험자로서 사실적이고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흔을 목전에 둔 주인공의 아버지는 신체 곳곳이 수명을 다해 잘 듣지도 보지도 거동하기도 힘들다. 한때 그 증세가 심했던 섬망과 요도폐색은 숨가빴던 1254일의 기록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환자와 간병인의 입장을 모두 겪어본 나로써는 이 글을 읽을 때 양자의 심리에 번갈아 공감해가며 당시의 내 기억이 저절로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긴 병에 효자없다'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효성 지극한 자녀라도 오랜 세월 지속되는 부모의 투병생활에 천사가 아닌 이상 때때로 짜증도 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일 게다. 또 어쩔땐 무심한 듯 연락도 없는 지인들한테서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거나 반대로 가벼운 친절에도 마음이 동하게 되는 건 생사의 기로에 선 악조건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을 느끼게 되는 인간의 간사하고도 나약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단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개개인의 고독한 여정이다. 아무리 대단한 철학자나 대통령일지라도 죽음 앞에선 초연해지기 어렵다. 사후의 세계 존재여부를 떠나 그것을 그 누구에게서도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망자는 말이 없다. 


 고통없이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반면,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구조는 아직 빈틈이 많다. 환자를 기계적으로 다루는 의료인들과 맘 편히 죽지도 못하는 말기 질병의 노인들을 보면 새삼 존엄사라는 것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작가는 아버지가 병이 깊어짐에 따라 남들처럼 요양병원행을 고려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좀 고되더라도 정든 집에서 마지막을 함께 해드리는 쪽을 선택한다. 낯설고 차가운 병실침대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인생을 마감하는 게 그나마 덜 힘겹게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혼자는 힘에 부쳐 그 동안 거쳐간 간병인만도 예닐곱명. 초고령의 중증 노인 환자를 대하는 그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충격과 스트레스는 배출구없는 응어리로 똘똘 뭉쳐 가슴 속 깊이 남을 것이라 짐작한다. 허나 결코 많지 않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뛰어든 간병인 각자의 사연 또한 오죽할까. 

 생사의 사투를 벌이는 도심지의 병원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세상인 듯 태연한 시간이 흘러간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병원비와, 병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야 하는 귀찮음 따위는 어쩌면 이런 소외감과 고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아버지를 긴 시간 간호하며 중년의 나이인 작가는 다시금 죽음과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인들을 직시하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날'에 대비해 자기 주변과의 부분적인 작별을 서재정리로써 시작한다. 


 커다란 천체와 수많은 별들이 나고 사라지는 우주의 섭리 속에, 지구라는 행성안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인간이 죽고 사는 일은 지극히 사소하고 티끌같은 일이라고 혹자는 얘기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유하고 기억하는 존재다. 우주 만물의 근원과 허무주의 사상이 공허한 마음을 들쑤셔도 본인이 생을 살아온 의미와 추억을 되새기고 가급적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을 것이다. 유쾌한 나날을 보내다가도 몸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엔 생각이 많아진다. 저 건물 안에서 누군가는 오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희망 없는 나날에 지쳐 그저 살아 숨쉬고만 있겠지. 나와 내 부모, 동생과의 작별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혹여나 그 모습이 추하고 보기 역겹진 않을런지.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한번의 입원생활과 또 한번의 간병 생활. 다시 나를 살게 했고 그 감사함을 돌려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 때 돌아가신 작가의 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일깨움과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돌아오는 내년 봄에는 묻히신 그 곳에 새생명 기운 가득 깃든 햇살이 들겠지. 그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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