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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평점 :
오랜만에 참 거침없고 속 시원한 그래서 위험하게까지 느껴진 그런 책을 만났다.
여지껏 세상살이가 고된 사람들에게 한동안 힐링과 위안의 책들, 그리고 말들이 넘쳐흘렀다면 이젠 이런 세상과 사회를 똑바로 보고 직시하는 현명함과 조금은 냉정한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저자인 노명우 교수는 우리 삶의 여러 단면들을 포착하여 금세 끓고 식는 냄비뚜껑 기질과도 같은 인간의 속성을 지적하거나 때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삶의 리얼리티를 파헤치는 한편,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그 세태에상처입은 개인, 그리고 사회를 위한 치유법을 제시한다.
현대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럭셔리와 명품을 추구하며 지적인한 삶을 살기 위해 박사학위나 높은 지위같은 명예욕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만큼 트렌디한 세태의 흐름을 읽는 센스가 필요하다. 다녀온 해외여행지와 유행하는 브랜드 제품이 수다의 주화제로 떠오르고 그 곳에서 남긴 추억은 사진으로 고이 간직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역사의 오랜 기억이나 참사가 주는 침울함따위는 자리잡을 새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전불감증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타국의 전쟁과 남의 죽음을 tv 생중계로 봐도 정작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 게 딴 세상 이야기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 라는 생각은 배운것들이 더 해쳐먹는 고위층 부정비리사건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범죄 등 '배운 괴물'들이 판치는 사회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너무나 합리적이게 보이는, 모든 것들의 일사천리를 부르짖음은 종국에는 '맥도날드화'로 귀결되는 불합리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기이함은 더이상 이상한 것이 아닌게 되버렸다. 모든 것이 표준화된 거리의 간판과 의례 절차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줄지어진 제품들처럼 우리 인간마저도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이런 획일적인 도시에서 오타쿠라 불리는 '혼자 놀기'는 은밀하지만 알고 보면 솔직한 취미 즐기기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평범한 삶 속에서 자유스럽게 이루어지는 성(性)이야기와 고공행진을 멈출줄 모르는 자살률의 원인에 대해서도 사회학적으로 접근한다. 예전에 비해 개방적인 성문화가 자리잡은 지금 그 심적불안은 커지게 된 아이러니와 경제는 성장하는데 그에 대한 기대에 못미치는 자신을 자살로 이끄는 인구는 점차 많아지는, 경제성장과 자살률의 반비례적인 아노미적 상황. 그 속에서 기구한 팔자타령에 진지하게 귀기울여 들어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학자'의 무감정한 언어와는 사뭇 다른 듯 하다.
월급쟁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넥타이부대를 위해 가끔은 자신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함당함을 시사하고 항상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처받은 영혼 하나하나에게 '인정투쟁'이라는 사회로의 자기 존엄 되찾기를 멈추지 말라 함은 사회와 집단, 그리고 국가에 예속된 우리 모두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해주는 흔치않은 주장인 것이다.
책에는 3챕터별로 가지를 뻗은 소(小)주제들이 달려 있는데 너무 학문적이지 않은 말투로 사회학 고전 몇권과 함께 대중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사실 사회학은 어렵다고 생각들 하지만 우리가 선술집에서 안주거리로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잡담들을 이론이라는 거창한 틀로 바로잡아 어렵게 꼬아 놓은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한 강의에서 마주친 역사의 산 증인과도 같았던 노인을 떠올리며 이론으로서의 사회학과 '세상으로서의 사회'인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낀 경험을 전하는데 이런 학문과 현실사회가 조우할 때 공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학은 의미를 얻는다고 말한다. 현실을 회피하고 위로와 팔자타령으로 점철된 자신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용기있게 '콜드 팩트'를 부르짖는 삶의 리얼리스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