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정글 1
캔디스 부쉬넬 지음, 서남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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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기 드라마 『섹스 앤 시티』의 원작자로 유명한 캔디스 부쉬넬의 새로운 소설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칙릿 붐은 소설의 인기만으로 끝나지 않고 영화와 TV 드라마 등으로 확대되어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데, 립스틱 정글 또한 올 9월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큰 트렌드로 자리 잡은 칙릿 열풍이 더욱 뜨거워질 것 같다.




40대 초반의 성공한 3명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본파이어> 잡지의 편집장인 니코 오닐리

패라도 영화사의 사장인 웬디 힐리

일류 패션디자이너인 빅토리 포드




서른 여덟에 <본파이어> 잡지의 50년 역사상 최연소 편집장이 된 후부터 6년 내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니코.

「 불행히도 성공은 아름다움 같아서, 더러운 양말을 신고 닷새 내내 집에만 박혀있다보면 전혀 즐겁지 않은 법이다 - p52 」

존경하는 남편 ․ 애지중지하는 열한살짜리 예쁜 딸과 안정적이지만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젊고 유명한 남성 모델에게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잘생긴 연하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해 영화사 사장이 된 웬디.

자신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것이 자신과 가족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정에서 점점 멀어져버린 웬디에게 남편은 어느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다.




랄프 로렌이나 캘빈 클라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큰 회사는 아니지만 자신의 회사를 가진 빅토리.

일, 사랑 모두 정확하고 균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웬디가 3살 연하 남편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비균등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화장품계 억만장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와 만날 시간에 내 일을 했으면 더 나았을거라고 말이야.  자기 손과 머리로 뭔가 해내는데서 생기는 만족감에 비할 건 하나도 없어. - p115 」

「비지니스에서 이것만은 꼭 기억해.  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드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해. - p166 」




     여자는 남자처럼 성공해서는 안되는가?

     성공하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여자는 성공을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오버랩된 이유도 저 질문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립스틱 정글 1」에서는 20, 30대를 치열하게 보낸 후 화려한 직장 경력을 가지게 된 3명의 여자 주인공이 위기를 맞게 되는 스토리까지 진행된다.

너무 많은 분량이 「발단, 전개, 위기」에만 집중되어 있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 그래서 립스틱 정글 2를 빨리 읽고 싶기도 하다 - 캔디스 부쉬넬은 경쟁체제의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3명의 주인공은 일과 사랑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캔디스 부쉬넬이 어떤 방식으로 주인공들에게 닥친 위기를 풀어나갈지, 결말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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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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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깨어나서 사랑하라...
 

 

 

제목을 보고, 언젠가 무심코 읽었던 한 편의 시를 통해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를 통해 다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기대를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1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리고 각각의 시에는 아주 상세한 해석이 덧붙여져 있다.  그것은 작가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다른 시 구절이나 경구가 인용되어 지기도 하며, 저자가 체험한 상황과 연결되어 지기도 하는데, 저자의 삶에서 체험으로 터득한 지혜로부터 나온 해석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고 느꼈다. 

이 시들은 지금까지 접했던 자기계발서가 주지 못한 무언가를 가슴에 던져준다.  계속 시 구절을 곱씹게 만들며, 나를 묶은 편견의 밧줄을 풀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 실려있는 10편의 시 모두가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적절한 장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시를 읽는다면 지금까지 자신을 기다려온 인생과는 다른 인생에 발을 담그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한  저자의 말처럼, 10편의 시 모두가 나의 상황에 적절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처음 읽었을 때는 저자의 시에 대한 해석이 조금은 어지럽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고, 이해하기엔 어렵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지만, 두번 세번...몇 번을 다시 읽고 난 후에는 내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이 책에 대한 어색함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시는 굳이 자기계발이라는 목적으로 다가서지 않아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런 시가 자기계발의 도구로 쓰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 뿐...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자기계발서의 결론과 이 책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깨어나서 사랑하라. p.204 
살아있는 동안 경험 속으로 뛰어들어라.  p.144 
그리고 그대의 인생을 살라.  p.111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정리해서 순번을 매겨 놓은 듯한 자기계발서에 실망한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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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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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시다 슈이치는 작년 1월 중순 즈음에 <악인>으로 처음 만난 후 이번에 <사랑을 말해줘>로 다시 만났으니 거의 1년 만에 만난 셈이다.  예전에 알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사실은 단조로운 삶에서 잠시나마 가질 수 있는 희소식이다.  다시 만날 사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설렘과 기대감은 더 크리라.  요시다 슈이치는 내게 그런 잠깐의 설렘을 허락한 작가이다. 

 

소설을 소설, 즉 허구의 이야기로 읽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악인>은 내게 소설을 넘어서 더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왜냐하면 <악인>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져 많이 안타까웠던 기억 때문이다.  <악인> 이후 요시다 슈이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랑을 말해줘>를 통해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다.

 

이 소설 <사랑을 말해줘>는 사랑 이야기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은 작가에 의해 이 소설에서 특별하게 창조되었다.  작가가 그들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소통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시다 슈이치의 전작 <악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 한 번 쯤은 겪어보았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슌페이와 교코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들 각자에게 익숙한 세상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다.  슌페이는 소리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고, 교코는 소리 있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상이기에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만나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 나가는지를 작가는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정답인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 혹은 각자가  해결할 문제이다. 

 

<사랑을 말해줘>에서 요시다 슈이치는 슌페이와 교코, 두 인물을 통해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연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에 대해서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는 연인 사이로 관계가 좁혀져 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주제는 현실에서 맺고 있는 무수히 많은 관계 역시 포함될 것이다.  <악인>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두드러졌던 것과 같이 <사랑을 말해줘>에서도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것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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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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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그 땅을 밟은 경험은 없지만 전혀 모르는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이라는 부정적인 매개체와 연결되어 이미 오래 전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살아가는, 즉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게 존재하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바보 같은 말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사람이 살지 않는 나라, 아니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전쟁만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왔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혀져 있었기에, 나와 다르지 않은 나약하고 평범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내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란 사람들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 나는 모른다.  전쟁으로 인하여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나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불행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들이 처한 실상에 관심이 없었다.  내게 일어난 불행이 아니란 이유로 잠시 안타까워만 하고 지나쳐버렸던 내 모습이 나를 이토록 창피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한 가운데는 마리암과 라일라라고 불리는 두 여성이 있다.  두 여성이 겪었던 불행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사람들이 겪은 불행과 다르다고,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작가가 허구로 창조해 낸 소설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단순히 허구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여자가 남자의 재산에 불과했던 때는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소설 안에서 그려진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잔인한 전통과 그보다 더 잔인한 전쟁이 합쳐져 마리암과 라일라는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두 여성은 서로 의지하고, 희생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두 여성의 마지막은 그리 나쁘지 않다.  마리암은 죽는 순간에 하라미(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죽는 순간에 자신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라일라는 마리암의 희생 덕분에 타리크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쉬운 행복, 고통이 없는 행복(p515)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행복이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남편의 폭행과 폭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희망은 마리암과 라일라만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처럼 놀라운 작품을 쓴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궁금해진다.  그는 무엇을 희망하면서 살아갈까.  내 마음도 희망으로 꽉 채워야겠다.

 

"안됐군요."  라일라는 아프간에 관련된 얘기마다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죽음, 상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지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라일라는 자신의 삶과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자신이 살아서 이 남자의 이야기를 택시 안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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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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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무남독녀이십니다.  그래서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셨지요.  어릴 때부터 한 집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제게 외할머니는 항상 어렵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섭던 외할머니도 세월이 흐르면서 눈에 띄게 약해져 가셨습니다.  하지만 저와 외할머니의 사이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의 왼쪽 손바닥에 큰 상처를 입으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는지 거의 사경을 헤매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와 외할머니와의 사이로 짐작해 볼 때는 제가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외할머니가 혹시 잘못되실까봐 전전긍긍하더란 말입니다.  그 사건 이후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제 시선은 180도 바꿨습니다.  이빨도 빠지고 쪼글쪼글한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더란 말이죠.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감정으로 외할머니 곁으로 다가섰더니 외할머니도 달라지셨습니다.  그 후 우리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딱 5년을 지냈습니다.  그 5년은 제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 즈음이었던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집이 발칵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집에 안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 얼굴이 하얘져서는 집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외할머니 혼자서 밖을 나가실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의 부축 없이 걸으시는 게 힘들 뿐 더러 정신이 맑으셔서 혼자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저는 외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부자리에는 외할머니가 누워계셨던 흔적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옆을 슬쩍 보았더니 욕실 문이 슬며시 열려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거실에 있는 욕실까지 나오기 곤란할 때 할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욕실을 사용하시곤 하셨습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사실, 바로 앞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는 게 더 빠르니까요.  열려있는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을 슬쩍 밀어보았지요.  변기에 앉아 계시는 외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외할머니가 활짝 웃어주셨어요.  아주 환하고 예쁘게.  ^^  저는 기세등등하며 가족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우리 할머니는 혼자서 말도 없이 나가실 분이 아니라니까.'라고요.  그 사건은 그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엄마가 제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모시다 보내드릴 수 있어서 엄마 마음이 편하다고요.  아주 오랜 시간 냉담했던 딸과 친정어머니 사이를 아프게 바라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목이 따가워왔습니다.  제가 외할머니를 더 빨리 사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이 부끄럽고 후회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른 후 생각이 조금 바꿨습니다.  늦었지만 그때라도 사랑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엄마를 부탁해>는 내가 무관심했던 때의 외할머니의 모습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그리운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나의 엄마가 아팠던 때, 나의 변화로 인해 나의 엄마가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많은 감정 중에서 후회라는 감정만큼 몹쓸 것이 또 있을까요.  후회라는 감정만큼 지독하게 아픈 것이 또 있을까요.  <엄마를 부탁해>에서 그려내는 엄마의 갑작스런 실종 그리고 다시 찾을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는 후회할 행동은 하지말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신경숙은 엄마의 모습을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는 엄마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고 털어놓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붙박이장처럼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계셨던 엄마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탓이었겠지요.  그들의 후회는 그동안 모른 채 지냈던 엄마의 모습 아니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줍니다.  그들이 엄마를 추억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안타깝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이 따가워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마를 대상으로는 후회되는 점을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렇거든요.  오늘부터라도 좀 더 다정하게 불러드리고, 좀 더 따뜻하게 안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는 다른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세상의 모든 엄마를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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